[29년생 김두리] “세 살 먹어서 같이 아파가지고… 그게 없어졌다”
[29년생 김두리] “세 살 먹어서 같이 아파가지고… 그게 없어졌다”
  • 최규화 작가
  • 승인 2021.08.13 09:48
  • 수정 2021-08-13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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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14화. 첫째 딸을 잃고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한국전쟁 당시 문 앞에서 우는 아이를 찍은 사진. 뒷면에 미군의 인천상륙 과정 중 전투 소리에 놀라 우는 아이에 대한 설명 등이 적힌 신문기사가 부착됨.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e뮤지엄(국립민속박물관)
한국전쟁 당시 문 앞에서 우는 아이를 찍은 사진. 뒷면에 미군의 인천상륙 과정 중 전투 소리에 놀라 우는 아이에 대한 설명 등이 적힌 신문기사가 부착됨.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e뮤지엄(국립민속박물관)

느그 할배[남편] 형무소에서 풀래나고, 꼴짝(산골)에 드가서(들어가서) 새로 한 해 농사지었나? 한 해 농사도 몬 지었다. 고해(그해)에 느그 할아버지 영장 나와가지고 군대 갔잖아. 느그 증조모[시어머니]캉 내캉(나랑) 느그 큰아버지[첫째 아들]캉 사는데 얼매나 고생했겠노.

느그 큰아버지 밑에 또 고모[첫째 딸]가 하나 있었다. 있었는데 나캉 지캉 같이 아파가지고, 그것도 없애뿌렀잖아[죽어버렸잖아]. 느그 할매[본인]가 살 생각이 있었겠나.

[작가 : 고모가 또 한 분 계셨다고요?] 그래. 느그 큰아버지 밑에 고모 하나 있었다. 세 살 먹어서, 느그 할아버지 군대 가셔뿌고, 지하고 내하고 같이 아파가지고…… 그게 없어졌다[죽었다]. 말도 다 하고, 느그 할배 담배 심부름도 하고 그랬다. “담배 쌈지 가온느라(가져오너라).” 하면 가주(가져)가고 뽈뽈 돌아댕기고 했다.

그래 하다가 지하고 내하고 같이 아팠어. 느그 큰아버지 아이(아직) 어리지러, 내꺼정(까지) 아파놓이 누가 물 끼래줄(끓여줄) 사람이 있나. 한 사날 아파서, 옳게(제대로) 먹지도 몬하고 그래서 그게 죽았다.

느그 할아버지 군대 가서 연락도 없지, 그것도 죽았지, 그래 느그 할매가 살 생각이 있었겠나. 그제? 느그 큰아버지 따문에 목숨 보전한 거지.

느그 할아버지 군대 안 갈 직(적)에는, 느그 증조모도 마카(모두) 한테(한데) 안 살았어. 작은할아버지[시동생] 학교 댕길 때 밥 해준다고 살림을 따로 빼서 거기 있고, 한테도 안 왔어.

육이오사변 나가지고 느그 할아버지 군대 가셔뿌고, 내한테 한테(한데) 와셨다. 죽으나 사나 한테서(한데서) 벌어먹어 살아야 되니까, 그래 와서 같이 살았다.

느그 할부지 군대 가뿌고 일곱 달로 소식도 없었다. 갔는 사람 다 죽었잖아. 난리판에 갔으이. [작가 : 전쟁 터지고 나서 군대 가신 거예요?] 그래. 총소리 따당땅 따당땅 여(여기) 듣기는데 군대 갔다니까. 논실[경북 영천시 고경면 논실리] 거 있을 직에(적에). 총소리가 막, 멀리 대포 떨어지는 소리 막 쾅쾅 났거든.

한국전쟁 당시 국군 보급품. 배낭과 전투화. 전쟁기념관 소장. ⓒ최규화
한국전쟁 당시 국군 보급품. 배낭과 전투화. 전쟁기념관 소장. ⓒ최규화

그랄 때 갔는데, 그때 남은 게 부산하고 울산, 밀양, 고 남아 있었어. 밀양 삼당진(삼랑진,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이라든가? 고 가가지고 일주일로 국군 훈련 받아가지고 그래 전방으로 갔다 하대. 전방으로 가서 고생을 고생을 얼매나 하고…….

저 표창장 받을 때[1953년]는 전라도 [인민군] 토벌작전 거 가가지고 받았다 하더라. 느그 할아버지는 좀 배았으니까, 글로 아니까, 총 놓고 이런 거는 밸로 안 했다 그래. 그때는 글 아는 사람이 마이 없었어. 마카 사지 몬해서 머 하니까[사는 게 어려워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뜻].

느그 할배는 만날 뒤에 사무실에 그래 있었거든. 보급창고 물건, 군인들 물 거 가지고 오면은 받아 들루코(들여놓고) 또 대주고 그런 거 했지. 대신 [주둔지를] 옮기면 빨리 군인들 오기 전에 머여(먼저) 옮겨가야, 어디 가도 군인들을 미개(먹여)살릴 수 있으니까 더 바쁜 거야.

총 놓고 그래는 안 했다 해도, 군대에서 맻 분(번)이나 죽을 고비를 당했단다. 그래도 그래 사더란다. 햇수로는 아매 한 오륙 년 될 거야. 그마이 될 거야.[실제 복무기간은 6년 반 정도]

나제 전쟁 끝나고 제대하기 전에, 작은할배[시삼촌]도 머시라 하더라꼬. 거서 나와봐도 밸로 할 것도 없고, 농사도 마이 없고 하니까 제대하지 마고 마 말뚝 박아서 있으라꼬. 말뚝 박겠다 하면 그래 있을 수가 있었거든. 그래놨디 느그 할아버지는 안 있을라 하더라꼬.

“사회 나가도 군대만치(만큼) 하면 몬 묵고살 택(턱)이 있겠나? 매여서 사는 게 너무 싫다.”

느그 할아버지는 군대생활이 그렇게 싫었다. 그래 가지고 제대를 안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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