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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집에 이사온 너무너무 잘생긴 남자애가 첫눈에 반했다고 말한다. 친구처럼 이름으로 부르는 엄마는 그 남자애 괜찮다고 한번 사귀어 보란다. 순정만화 같은 이야기라고? 맞다. 영화 <…ing>는 순정만화 같은 이야기 정도가 아니라 순정만화를 위한 이야기다. 이 순정만화적 상황은 엄마가 딸을 위해서 연출해낸 것이다. 왜냐하면 딸은 곧 죽을 것이고 엄마는 딸이 조금이라도 행복한 삶을 경험하길 바라기 때문에.

<…ing>의 인물들은 모두 순정만화의 주인공들을 연기해낸다. 엄마는 즐겁고 발랄한 엄마인 척하는 슬픈 여자다. 아랫집 남자애는 한눈에 반한 척하는 알바생이다. 그럼 주인공 소녀는? 처음에는 두 사람에게 속다가 진실을 알아챈다.

그리고 행복하게 웃는 순정만화의 공주님으로, 두 사람이 만들어놓은 무대의 주인공으로 애써 연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배우들은 빛난다. 엄마 이미숙과 남자애 김래원과 소녀 임수정은 각각 순정만화의 주인공인 척하는 현실의 인물들을 연기하기 때문이다.

<…ing>가 순정만화를 위한 영화인 것은 카메라가 사물과 인물을 응시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남자만화주의자들은 순정만화, 일명 여자만화를 가리켜 “지루해서, 글씨가 너무 많아서 싫다”고 말한다. 실제로 순정만화는 좀처럼 인물들의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은 가만히 혹은 멍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모조리 글로 드러난다. 그러다 보니 글씨가 많아지고, 날고 기는 액션만화보다 지루해 보일 수밖에.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순정만화 독자들, 즉 여성들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당신은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일 수 있는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가? <…ing>가 선택한 것은 바로 순정만화의 독법이다.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대상을 바라본다. 오래도록 지속되는 순간을 즐긴다. 사랑의 시간이 영원하듯, 사랑의 기억이 우리를 멈추게 하듯.

영화 속에서는 만화의 독백을 생략하고 대신 영화적 이미지로 보여준다. 남자애가 혼수상태에 빠진 소녀에게 팔찌를 끼워주는 장면이 있다. 남자애는 처음에 장난으로, 괜찮은 일자리로 소녀에게 접근했지만 이제는 진짜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곧 떠나 보내야 하는 것이 슬프고, 처음부터 진심이 아니었던 것이 미안하다. 팔찌를 끼워주는 남자애의 손가락은 바들바들 떨리고 카메라는 이 떨림을 오랫동안 클로즈업한다.

<…ing>를 보면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데 슬프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기존 '눈물의 멜로 영화'와는 대별된다.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려 반드시 죽는 것은 운명이라 치자. 그러나 눈물의 전제인 행복한 시간, 사랑하게 되는 시간은 운명이 아니라 조작 혹은 의도적인 선택이다.

소녀가 사실을 알게 되기 전(사실 관객들도 소녀와 함께 비로소 눈치채게 되는데)에 보여지는 모든 낭만적 사랑의 시간은 진실이 드러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즉 너무 예쁜 순정만화의 세계는 고통과 의무를 가리는 장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정만화의 시간은 주인공들과 우리를 잠시나마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작품은 스물 여덟 살 젊은 여성감독 이언희가 연출했다. 그녀는 이미 세계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순정만화의 예쁜 세상이 반드시 무용하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최예정 기자shoooo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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