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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피버>, 서울문화사, 2003.▶

글 싣는 순서

① 아이들에게 어떤 만화를 읽히나

② 추억의 만화가게

③ 내게 힘을 주는 만화

④새로운 만화가 오고 있다

조금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쯤에서 한번 물어보자. 대저 '순정만화'란 무엇인가? 일단 '순정(純情)'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은 대단히 퀴퀴하다. 순정이라 함은 순수한(純) 느낌, 감정(情)이란 뜻일텐데, 어째서 딱 정반대의 느낌이 올까? 아마도 그 동안 이 단어가 세상사에 무관심한 여자가 특정 남자에게 몸과 마음을 바치기 위해 불태우는 감정으로 쓰여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측면으로만 보자면 순정만화란 순결을 바칠 남자를 찾아헤매는 여자 이야기에 불과하다.

물론 순정만화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순정만화는 사랑에 목매지 않아 왔다. 사랑이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형성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이겠지만 인간사에는 사랑말고도 수많은 사건과 사고, 감정이 존재한다. 순정만화는 이미 이런 사실을 간파하고 삶의 온갖 어귀들을 작품으로 형상화해 왔다. 우선 순정만화는 다양한 장르로 분화되었다. 소녀들의 운명의 아지트인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학원물뿐만 아니라 SF, 추리, 공포, 역사물 등으로 공간을 확장했고 리얼리즘과 표현주의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학원물이라고 해도 단순히 여학생이 남학생을 만나 사랑하는 스토리('순정'이라는 단어를 한영사전에서 찾아보면 'a boy-meets-girl story'라는 숙어가 나온다)가 아니다. 얼마전 출간된 두편의 학원물은 이를 반증한다. 박희정의 <피버>와 김미영의 <왔다!>가 그러하다. <피버>는 학교로부터 배척당한 아이들의 보금자리며 동시에 아이들이 앓고 있는 사춘기라는 열병이다. 이 작품은 입시, 부모와 교사와의 갈등, 왕따, 나아가 대안교육에 이르기까지 교육문제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왔다!>는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처럼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이 뒤바뀐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멋지고 잘생기고 만능 스포츠맨인 '소녀'를 사랑하는 수줍은 '소년'을 기존 순정만화의 문법으로 보여주면서 낭만적 사랑의 신화를 맹공격한다.

나아가 순정만화는 순정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정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임주연의 <소녀교육헌장>과 박소희의 <궁>은 각각 청와대와 궁궐에 들어가게 된 소녀의 이야기다. 두 작품은 '홀아비인 우리 아버지가 대통령이 된다면' 혹은 '우리 나라가 입헌군주제인데 내가 세자빈이 된다면'이라는 다소 황당한 설정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적 영역이 공적으로 확장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 권력 암투에서 결국 진실이 살아남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두 작품 모두 국가권력을 희화화시키고 비꼬면서 소녀-여성의 관점에서 세계를 새롭게 해석한다.

결국 순정만화란 '여성에 의해 생산 혹은 기획된, 여성에게 읽히기 위한, 여성의 삶에 대한 만화'라 할 수 있다. 즉 여성적 감수성을 가지고 여성적 말하기를 시도하는 만화의 장르가 바로 순정만화다.

최예정 기자shoooo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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