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남성=잠재적 가해자’ 취급했다며
1년 전 성인지 교육 영상 논란
“누구나 권력자 될 수 있으니
시민으로서 역지사지 하자는 취지”

‘20대 남성’의 백래시의 원인
“제도권 교육이 끌어안지 못해
여성차별 이해 못하는 남성들”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홍수형 기자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은 논란이 된 영상에 대해 “영상의 지향점은 옳았고, 가치를 타협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상의 이야기로서는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홍수형 기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하 양평원)이 제작한 6분 남짓한 성인지 교육 동영상이 논란이다. 1년 전 공개된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라는 제목의 이 영상이 뒤늦게 논란이 된 것은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 영상이 “잠재적 가해자라고 못 박고 교육한다”는 게시물이 올라온 것을 한 매체가 보도하면서다. 이후 비판 기사가 쏟아지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관련자 징계를 촉구하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이 영상의 원고를 쓴 나윤경 양평원 원장을 직접 만났다. 그는 “영상은 ‘남성=가해자’가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고 시작한다”며 “성별, 세대, 인종에 따라 누구나 가해자 위치에 설 수 있고, 이런 의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달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인 양평원은 공무원에게 성인지 정책에 대한 교육과 성평등 교육 강사 양성을 담당한다. 지난 2018년 부임한 나 원장은 교육학과 여성학을 전공하고 2002년부터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해온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여성주의 교육학) 전문가다. 

현재 논란이 된 영상은 양평원 유튜브 채널에서 비공개 처리됐다. 나 원장은 “영상의 지향점은 옳았고, 가치를 타협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일상의 이야기로서는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전문가 자문을 거쳐 오해할 수 있는 용어를 삭제하는 등 수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나 원장과의 일문일답.

-영상은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

“일각에서는 이 영상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했다고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시작한다.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다’라는 말과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이 불편할 수 있지만, 분노하기 보다는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여성들이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해보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잠재적 가해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배려와 역지사지 하는 것이 의무라는 의미다. (오독을 막기 위해) 사회적 맥락에 따라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권력자처럼 비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80대 어머니과 중국동포 가사도우미 예시를 들기도 했다.”

-영상 내용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었나.

“영상을 공개하기 전에 20~30대 남녀 7명으로 구성된 시민 모니터링단에 의견을 물었다. (오독을 막고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당시 4명의 남성들에게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아 최근 비판이 제기됐을 때 당황했다. 이번 양평원 영상의 지향점은 옳았고, 가치를 타협할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모니터링을 거쳤는데도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더욱 대중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 신중하게 다양한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가사도우미 예시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가령 마스크로 예를 들면, A라는 사람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탔다고 생각해보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A를 보며 ‘감염 시킬 사람’이라고 의심할 수 있다. 평소 A가 아무리 마스크를 잘 쓰던 사람이라도 특정 상황에서는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럴 때 A가 ‘왜 가해자로 의심하느냐’고 화를 내기보다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등 배려하는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공동체 구성원의 의무 아닐까.”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홍수형 기자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이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홍수형 기자

-20대 남성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격렬한 백래시(backlash‧반발)를 보인다.

“제도권 교육 안에서는 대체로 남학생보다 여학생의 성적이 우수하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 교육 평가 방식 등에 여학생이 더 잘 적응하고 성과를 낸다. 반면에 남자아이들은 여성 교사가 많은 학교 안에서 버거운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똑똑한 여학생들은 기성 성평등 담론을 보며 자신이 현재 경험하지 않더라도 알고리즘을 통해 성차별에 예민할 수밖에 없고 사회과학적으로 단단해지는 반면에, 남학생들은 정반대 알고리즘을 갖는다. 여기서 확증편향이 일어난다고 본다. 여학생들이 1등을 하고 명문대에 진학하고 교환학생 기회를 얻는 모습을 봐온 남학생들에게 여성 차별은 억지 주장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성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20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반발하는 것은 결국 시스템의 실패다. 학교 교육 현장에 제도적으로 편입되지 못한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하는 것이다. 문제는 학교를 벗어나면 세상은 여전히 남성 중심 사회이고 여성들은 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 더 많은 남성들이 육아와 교육에 참여해야 한다. 과거 ‘일베(일간베스트)’ 논란이 처음 일어났을 때 일부 ‘골 때리는 사람들’로만 치부했다. 지금은 어떤가. 시스템이 말해온 가치와 윤리가 통하지 않는, 제도가 설정한 목표에 달성하지 않는 인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 증표가 ‘n번방’ 사건이다. 가해자 29.4%가 10대였다. 일각에선 가해자들만 악마화했지만 중요한 점은 왜 시스템은 이들을 끌어안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교과서는 생명 존중과 민주주의에 대해 가르치는데 이 아이들은 왜 그렇지 못했을까. 시스템의 완전한 실패인 것이다. 교사 양성 과정과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 내용에 무엇이 보완돼야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논란된 양평원 성인지 교육 영상 살펴보니>

여성 대상 범죄 일상화된 사회에서
남성 시민의 역할 제안하는 내용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nbsp;영상 캡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 영상 캡처.

지난해 2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 동영상 콘텐츠 플랫폼 젠더온과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영상의 제목은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다. 6분 남짓한 영상은 나윤경 양평원장의 설명 방식으로 진행된다.

나 원장은 영상에서 “한국 여성들은 ‘아빠 빼고 남자는 다 늑대·도둑놈이야’라는 소리를 아버지, 즉 남성에게서 듣고 자란다”며 “사회에 나와 남자인 친구·선배·상사를 의심하지 않고 따라 나섰다가 성폭력을 당하면 ‘네가 조심했어야지’ ‘꽃뱀인가’ ‘자기도 좋았던 거 아니냐’라며 피해 여성을 비난한다”고 했다.

이어 “여성들은 의심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다. 생존 확률을 높이기 때문”며 “남성들은 의심한다고 화를 내기 보단 자신은 나쁜 남성들과는 다른 사람임을 증명하는 노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시민적 의무’라고 정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변함없이 갑 또는 을의 위치에 있을 순 없다"며 "맥락에 따라 위치가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 원장은 갑의 위치에 있을 때 기분이 나빴다는 입장도 중요하지만, 을의 입장에서 상상해보고 합리적인 행동을 실천하는 것을 ‘시민적 의무’라고 설명하며, 자신의 80대 노모와 중국 이민 여성 가사도우미의 일화를 예시로 제시했다. 가사도우미가 일당을 선불로 달라는 말에 어머니가 ‘자신을 돈 떼먹을 나쁜 사람’으로 취급했다며 기분 나빠하자, 딸이 이전에 임금을 떼인 경험이 반복됐고, 생계가 달린 문제라고 설명하며, 임금을 월급처럼 먼저 주거나 명절 때 선물도 주는 식으로 돈 떼먹는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보라고 제시하는 내용이 나온다. 기분이 나쁘다고 화만 낼 것이 아니라 ‘나는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보여주는 노력’이 바로 시민적 의무라는 설명이다.

나 원장은 “특정 상황에서 남성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경계하려는 여성들의 노력이나 남성들에게 성인지적 태도와 감수성을 제시하려는 교육에 대해 ‘왜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느냐’라고 화를 내기 보다는 스스로가 가해자인 남성들과는 다른 사람임을 정성스레 증명하려는 노력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제안한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