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7화. 혹독한 보릿고개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일제강점기 백미 포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최규화
일제강점기 백미 포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최규화

농사도 지을라 해도 땅이 없지. 논밭을 사야 농사를 짓잖아. 그때는 농토를 망글(만들, 개간할) 그런 생각을 몬했어. 돈도 없지러, 기계도 없지러. 요새같이 기술 좋고 약 치고 하면 생산 마이 내지만, 그때는 농사가 잘 안 돼. 부잣집, 농토도 많고 이런 사람은 그래도 자기 양식 할 게 되고, 제와(겨우) 맻 마지기 짓는 사람들은 마카(전부) 봄에 양식이 모자래는 거야.

들에 일하러 먼 데를 가면 밥을 싸가야 되거든. 옛날에 초배기라고 있어. 대(대나무)로 가지고 아래위 짹(쪽)으로 요래 만들었는 거. 쉽게 말하면 요새 도시락이야. 고 초배기 한쪽에 밥을 싸고, 장은 짱아찌 같은 거하고 종바리(종지)에다 담아서 한쪽 옆에 옇고(넣고), 물 한 비(병) 옇고.

들 멀리는 점심 무러(먹으러) 왔다 갔다 하면 일할 시간이 없잖아. 그러면 고래 싸서 바소구리(바소쿠리 : 싸리로 만든 삼태기) 담아서 [지게에] 지고 가는 거야. 지고 가서 일하고 오고. 올 때 또 보리 비서(베어서) 오면 비배서(비벼서) 또 그래 밥을 해서 묵고.

보릿고개 말 다 몬한다. 곡석(곡식)을 몬 얻어무 가지고 통통 벘는(부은) 사람도 있고. 그래도 좀 낫게 사는 집에는 쌀이라도 쪼매 있으면 고걸 섞어 묵는 사람들은, 이래 나왔는 거 보면은 얼굴에 기름기가 있고 눈방울도 똘똘하고 그래.

삼통(항상) 나물 찌재묵고[끓여먹고] 그런 사람들은 봄에 보릿고개 될 때는 걸음도 옳게 못 걷는 거야. 기룸기룸 이래 걸어가고. 농사를 지을라면 논으를 갈어야 되잖아. 써레질(써레로 논바닥을 고르거나 흙덩이를 잘게 부수는 일)을 할라 하면, 소인데(한테) 몬 따라가 가지고 훌찡이(쟁기) 안고 넘어지는 사람도 많다니까. 그래그래 농사를 짓는 거야.

그때도 도가(술도가)가 있어서 파는 술이 있어. 있는데, 제사 음식은 일단 다 손수 장만어야(장만해야) 된다꼬 생각했거든. 그러이 손으로 다 하는 거야. 참 예전 사람 미련치. 도가에 술이 있는데, 그거 받아다가 쓰면 사람도 수월코 할 텐데, 제사 음식은 다 해서 무아야(먹어야) 된다꼬…….

누룩은 해놓으면 모르게 감직어야(감춰야) 되거든.[일제강점기에는 가양주가 금지됐다] 한 달에 한 번씩인가 두 번씩인가 소문도 없이 디배러(뒤지러) 오는 거야. [작가 : 면서기들이요?] 어. 술 하는 재료니까. 도가서 술이 안 팔리면 이 사람들이 발고를 하는 거야. 마카 밀주를 해묵고 도가 술이 안 팔리니까, 한번 디배러 나오라꼬 고발을 하는 거지.

그래 놓으면 [면에서] 나와가지고 디배서, 누룩 그것도 자기네가 가가뿌고(가져가버리고), 술도 다들래면(들키면) 술단지를 이고 동장 집꺼지 이어다 줘야 되는 거야. 이어다 주고 다 뺏기는 거야. 그런데도 그거를 해묵는다니까. 왜 그래 미련시리 그걸 해묵았을꼬? 사람 사는 기 참…….

일제강점기에는 가양주가 금지됐다. 사진은 술을 만들 때 쓰는 소줏고리(맨 오른쪽)와 근대의 주병들. 부천시립박물관 소장. ⓒ최규화
일제강점기에는 가양주가 금지됐다. 사진은 술을 만들 때 쓰는 소줏고리(맨 오른쪽)와 근대의 주병들. 부천시립박물관 소장. ⓒ최규화

오새(요새)는 맘대로 해무도 앤 되나. 자기네 집에서. 할 줄 몰래서(몰라서) 몬 해묵지. 할 줄만 알면은 다 해물 수 있잖아. 그때는 몬 해묵구로 하는데도 그래 해묵고, 어디 묻어놨다가 다들래면 벌금을 해야 되제, 누룩이고 술이고 다 뺏개야 되제, 그런데도 그거를 그래 했다니까. 참 미련받치도(미련하게도) 살았는 거야.

[작가 : 그때는 재봉틀이 되게 비쌌죠?] 어. 재봉틀, 일제로 나오는 거, 그때는 큰돈이지. 부잣집 애이고는 없다니까. 식구 많고 일 많은 이런 집에는 부인들이 바느질 깝채서[바빠서] 몬하거든. 식구 많은 사람들 입고 나갈라 클 때 [옷을] 척척 내놓을라면 여간 바쁘게 해서는 몬한다.

그래서 [남들] 모르게 바느질 하는 집에 맽기는 거야. 쌀 같은 것도 모르게, 망글어주는 값에 갖다주고, 모르게 더러 해서 가는 거야. 그라니까 재봉틀만 하나 있으면 한 세네 식구는 실컨 묵고사는 거야. 재봉틀 하는 사람이 귀하니까.

명주옷하고 노방주[중국산 명주의 하나로, 주로 여자들의 여름 옷감으로 쓴다] 같은 보드라운 거는 틀에 가야[재봉틀로 해야] 좀 편케 하고, 안 그라면 집에서 다 손으로, 인두로 쳐서 이래 해야 되니까 [힘들지]. 일제시대 났기 때문에 재봉틀이 났지, 조선시대는 재봉틀도 없었다. 죽으나 사나 손으로 했지.

재간도 있고 좀 짭질받은(야무진) 사람은 옷도 좀 깔끔하이 해서 입고 댕기고, 가진 것도 없고 머시한[어설픈] 사람은 추리해서(추레하게) 행펜없이 댕겼지.

아(아이)가 이마이(이만큼) 커도 베가 없어가지고 옷을 몬 해입해는(해입히는) 사람도 많은 거야. 속옷을 몬 입해고 겉에 치마만 하나 가루코(가리고), 우에 적새미(적삼 : 윗도리에 입는 홑옷으로, 모양은 저고리와 같다) 하나 입해고 그렇게 키았으니까. 다서여섯 살 묵을따나(먹을 때까지는) 그래 입해서 키았으니까.

속속도록(속속들이) 갖차 입힐 베가 없는 거야. 베도 없고 솜씨도 없고 이런 거야. 마카 자기네 솜씨대로 쪼매쪼매(조금조금) 해서, 옷이고 말고 맹글어서(만들어서) 아(아이)들 입히고, 재산이 좀 있고 이런 사람들은 쫌 깨끗하이 간조롭게(단정하게) 채리(차려) 입고 다니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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