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3화. 머시마로 났으면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동몽선습. 조선 중종 때 박세무가 쓴 어린이 학습서로, 천자문을 익힌 어린이들이 소학을 배우기 전에 공부하는 교과서로 널리 사용했다. 부천시립박물관 소장. ⓒ최규화
동몽선습. 조선 중종 때 박세무가 쓴 어린이 학습서로, 천자문을 익힌 어린이들이 소학을 배우기 전에 공부하는 교과서로 널리 사용했다. 부천시립박물관 소장. ⓒ최규화

[작가 : 친구분들 중에 학교 다닌 분 계세요?] 없었지. 큰집에는 있었지. 그 집에는 돈도 있고 머시니까[잘사니까], 큰집 아(아이)들은 학교 다녔지. 내보다 한 살 덜 문(먹은) 사촌은 지가 학교를 안 갈라 해서 못 갔고, 고 밑에는 아(아이)들 학교 다 가고. 우리는 아버지가 일찍이 돌아가셔뿌래 가지고 잘 몬살아도, 큰집 두 집은 잘살았다니까.

[작가 : 학교 보내달라는 말씀은 안 해보셨어요?] 가고 싶다고 해도, 살림살이가 형편이 없으니까 암만 가고 싶어도 몬 가잖아. 그때는 학교 갈 때 까만 치마, 흰 저고리, 책보 요래 메고 가는데, 그게 그렇게 부럽더라꼬.

덕암에 있는 느그 할배[할머니에겐 남동생]는 보낼라꼬 해도 몬 보냈지. 그때는 국민학교 일 학년 드가는 것도 시험을 쳐서 드갔는 거야. 그런데 육 학년 졸업할따나(졸업할 때까지) 공부 시길 만하다 싶으면은 합격을 시겨주고, 머 묻는 데 합격이 돼도 공부를 시길 능력이 없다 싶으면 불합격인 거야.

논밭 전지도 많고 육 학년 졸업 맡도록 공부를 계속 하겠다 싶으면 합격이 되는데, 우리는 없이 사니까, 아등바등 사는 그런 사람은 시험에 걸래도 앤 되더라꼬. 시험 치는 데는 다 걸랬는데 재산이 없는 거야. 재산이 없으니까 앤 되더라꼬.

그래가지고 학교는 몬 갔고, 한문을 배우러 다녔어. 건네 사장(훈장)질 하는 사람이 있는데, 거 가라꼬 천자책(천자문)으로 사서 공부하라고 보내놨지. 근데 공부로 그래 하기 싫어했어. [작가 : 서당이 있었어요?] 그때는 서당이 없어졌어. 그양 자기네 집안에 아(아이)들, 동네 아(아이)들로 모다놓고 한문 공부를 시겼지.

그때는 한문을 마이 썼잖아. 국문 이거는 암글(여자들이나 쓸 글이라는 뜻으로, 한글을 낮잡아 이르던 말)이고, 여자들이 통신하는 데 하는 거라꼬, 남자들은 밖에 일하는 데는 주로 한문으로 사용을 하잖아. 그렇기 따문에 국문 이런 거는 함부래(아예) 가르치지도 안 하고 그랬어.

그래 서당글, 천자책을 사가지고 한문 배아라꼬 보냈는데, 천자책 한 권은 다 끝냈지. 다 끝내고 동몽선습 배운다꼬 댕기다가 안 했지 싶으다. 죽어도 안 간다. 느그 덕암 할배가 쫌 보기에는 야살시리(야살스럽다 : 보기에 얄망궂고 되바라진 데가 있다) 생겼는데 머리는 좀 둔한 편이야. 배아서(배워서) 와가지고는 이양은[한 번은] 읽어. 나는 지 읽는 거를 듣고 내가 암기를 하는데, 지는 다부(다시) 읽으면 그거를 몰라.

맻 자 읽어나가다가 “어…… 어……” 하고 있으면, 내가, 야 니 그거 뭐라 했잖아, 그래 갈채주고.

“누나 그거 어예(어떻게) 아노?”

“니 그거 배아와서 읽는 거 내가 들었잖아.”

지는 이래 글 읽는데, 내가 바느질로 하기나 뭐로 하기나 오메 가메 들은 귀에 아는 거지. ‘하늘 천’, ‘따 지’ 그라면 글자는 뭔지 몰라도 이름[소리]은 아는 거야. 글자는 이게 ‘따 지’ 잔지 ‘하늘 천’ 잔지 모르지. 지 읽는 소리만 들었으이, 고거 다음에는 고거라는 것만 알지.

그래가지고 “누나 니가 가서 배아라.” 하데. 딸아(여자아이)들은 한문 배우러 안 댕기는데. [작가 : 가겠다고 하시지요 왜.] 못 가, 여자들은. 여럿이 배우고 하면은 또 가보겠는데 내 혼차 갈 수도 없지. 아예 엄마도 보내줄 생각도 안 하지. 딸아(여자아이)들은 한문 배아봤자 소용없다, 써물 데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지.

동몽선습 배울 땐데, 글 배우러 가라 해놓으니까, 아(아이, 남동생)가 점심 때 돼도 안 오는 거야. 책을랑 지 수건에다 싸가지고 짚동(짚단을 모아 한 덩이로 만든 묶음) 구녕에 갖다 여(넣어)놓고, 나무하러 가뿌렀는 거야.

그때는 자기 산 애이면(아니면) 나무를 몬해. 소나무 같은 거 비고는(베고는) 몬해. 그냥 깔비(솔가리 : 말라서 땅에 떨어져 쌓인 솔잎), 솔 이퍼리 널쪘는(떨어진) 거 그런 거는 끌(긁어갈) 수가 있는데, 쏙깨비(생나무 가지)하고 둥거리(장작을 만들기 위해 베어놓은 나무토막)하고 [베어가면] 뺏긴다니까.

그라니까 먼 데 재를 넘어가야 돼. 깔비도 끌고, 소나무 젙가지(곁가지) 쳐서 밑에 깔어가지고 동 무꾼는(묶는) 거 그것마 해야 돼. 그거를 한 동 끍어오면 저녁 끼때(끼니때)가 돼야 오는 거야. 근데 그마이 애묵어도(애먹어도) 나무하는 게 낫대. 그것도 팔자에 있는 거 같애.

“니 그칠(그렇게까지) [공부]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하지 마고 일이나 해라.”

엄마가 포기한 거지. 내보다도 더 몬해. 나는 지 이르는 것만 듣고 배았어도 수분(쉬운) 자는 어디 나오면 알 수가 있는데, 내보다가 더 못해. 엄마가 “니가 머시마 됐으면 나을 꺼를.” 그라더라꼬. 그때는 머시마는 사회 나가서 써물 수가 있는데 딸아(여자아이)는 아무것도 몬했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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