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입을 권리 ②]
휠체어·보조기·위루관 등
장애인 특성별 맞춤 의류 늘어
지퍼·단추 떼고 벨크로·자석 달아
옷맵시도 살고 입고벗기 편해
‘5년 내 450조원 규모 시장’ 전망
특징·취향 따라 기성복 수선 서비스도

4월20일은 제41회 장애인의 날이다. 여성신문은 장애인들의 경우 옷을 선택하는 기본권마저 제한되고 있는 현실을 짚어보고, ‘장애인의 입을 권리’를 기획, 4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불편하다고 스타일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최근 패션업계는 이러한 기조에 맞춰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다양한 의류를 선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막스앤스펜서의 ‘쉬운 옷입기(Easy Dressing)’ 컬렉션 제품, 타미힐피거 ‘어댑티브 라인(Adaptive Line)’ 제품, 유니클로의 국내 장애인 의류 리폼 지원 캠페인 사진. ⓒ여성신문
몸이 불편하다고 스타일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최근 패션업계는 이러한 기조에 맞춰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다양한 의류를 선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막스앤스펜서의 ‘쉬운 옷입기(Easy Dressing)’ 컬렉션 제품, 타미힐피거 ‘어댑티브 라인(Adaptive Line)’ 제품, 유니클로의 국내 장애인 의류 리폼 지원 캠페인 사진. ⓒ여성신문

지퍼와 단추를 뗐다. 자석과 벨크로를 달았다. 옷맵시는 살리면서, 한 손으로도 입고 벗기 편한 셔츠와 바지가 됐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은? 외투의 앞뒤 기장을 다르게 했더니 오래 앉아 있어도 눌리지 않아 멋스러운 스타일이 완성됐다. 위에 관을 연결해 식사하는 사람은? 별도의 주머니를 달면 남들처럼 멋진 원피스와 티셔츠를 입을 수 있다.

몸이 불편하다고 스타일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최근 패션업계는 이러한 기조에 맞춰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다양한 의류를 선보이고 있다. ‘적응형 패션(Adaptive Fashion)’이라고도 부른다.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다양성의 가치가 떠오르면서 급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다. 미국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코히어런트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관련 세계 시장 규모는 2026년까지 4000억 달러(우리돈 약 45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나이키는 2021년 2월 손을 전혀 쓰지 않고도 신발을 신을 수 있는 고플라이이즈(GO FlyEase) 신발을 출시했다. ⓒ나이키
나이키는 2021년 2월 손을 전혀 쓰지 않고도 신발을 신을 수 있는 고플라이이즈(GO FlyEase) 신발을 출시했다. ⓒ나이키

세계적 패션 브랜드들이 먼저 이 흐름에 주목했다. 나이키는 2015년 ‘플라이이즈(FlyEase)’ 컬렉션을 출시했다. 신발을 신을 때마다 남의 도움이 필요한 16세 뇌성마비 장애인 매튜 왈저가 나이키에 보낸 편지가 계기가 됐다. 나이키는 왈저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쉽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연구했고, 꾸준히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였다. 지난 2월에는 손을 전혀 쓰지 않고도 신발을 신을 수 있는 고플라이이즈(GO FlyEase) 신발을 출시했다.

타미힐피거는 2016년부터 ‘어댑티브 라인(Adaptive Line)’을 선보이고 있다.  휠체어 이용자, 보조기 사용자 등 다양한 상황에 맞는 디자인을 제안한다. ⓒ타미힐피거
타미힐피거는 2016년부터 ‘어댑티브 라인(Adaptive Line)’을 선보이고 있다. 휠체어 이용자, 보조기 사용자 등 다양한 상황에 맞는 디자인을 제안한다. ⓒ타미힐피거

타미힐피거는 ‘어댑티브 라인(Adaptive Line)’을 선보이고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 ‘런웨이 오브 드림스(Runway of Dreams)’와 손잡고 2016년 장애아동 의류를, 2017년부터 성인 의류를 출시하고 있다. 휠체어 이용자, 보조기 사용자, 혼자 옷을 입고 벗기 불편해하는 사람 등 다양한 소비자에 맞는 디자인을 제안한다. 

막스앤스펜서도 장애아동을 위한 ‘쉬운 옷입기(Easy Dressing)’ 라인을 2016년 내놨다.  ⓒ막스앤스펜서
막스앤스펜서도 장애아동을 위한 ‘쉬운 옷입기(Easy Dressing)’ 라인을 2016년 내놨다. ⓒ막스앤스펜서

영국 의류·식품 소매업체 막스앤스펜서(Marks and Spencer)도 장애아동을 위한 ‘쉬운 옷입기(Easy Dressing)’ 라인을 2016년 내놨다. 바지에 지퍼와 버튼 대신 똑딱이 단추를 달고, 티셔츠 목 뒤에 부드러운 벨크로를 부착해 쉽게 입고 벗을 수 있게 했다. 위루관 튜브를 위한 별도의 주머니가 있는 티셔츠와 드레스도 선보였다. 지퍼, 버튼, 라벨을 없앤 교복 라인(셔츠, 치마, 바지)도 발표했다.

ASOS는 2018년 휠체어용 방수 점프수트를 출시했다.  ⓒASOS
ASOS는 2018년 휠체어용 방수 점프수트를 출시했다. ⓒASOS

영국 패션 브랜드 아소스(Asos)는 2018년 휠체어용 방수 점프수트를 출시했다. 영국 패럴림픽 선수이자 BBC 스포츠 기자인 클로이 볼 홉킨스의 제안으로 탄생한 옷이다. 비 오는 날이나 물기 있는 환경에서도 체온과 쾌적함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고 디자인했다. 가슴 부분에 방수 주머니를 달아 약이나 위급상황에 필요한 정보를 보관할 수 있고, 입고 벗기 쉽도록 조절 가능한 커프와 허리 지퍼를 달았다. 

에어리는 2020년 장애 여성을 위한 속옷 라인 ‘슬릭 칙스(Slick Chicks)’를 선보였다. ⓒ아메리칸이글/에어리
에어리는 2020년 장애 여성을 위한 속옷 라인 ‘슬릭 칙스(Slick Chicks)’를 선보였다. ⓒ아메리칸이글/에어리

아메리칸이글의 속옷 브랜드 에어리(Aerie)는 2020년 장애 여성을 위한 속옷 라인 ‘슬릭 칙스(Slick Chicks)’를 선보였다. 속옷 측면에 후크를 장착해 혼자서도 입고 벗기 편하게 디자인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하티스트’는 장애인 전문 패션 브랜드를 표방한다.  ⓒ하티스트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하티스트’는 장애인 전문 패션 브랜드를 표방한다. ⓒ하티스트

우리나라 기업들도 빼놓을 수 없다. 2019년 탄생한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하티스트’는 장애인 전문 패션 브랜드를 표방한다. 소매 접합 부분에 신축성 있는 원단을 덧대어 활동성을 높이고, 자석 버튼을 달아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셔츠와 티셔츠, 코트의 앞뒤 기장을 다르게 해 휠체어에 앉아도 옷이 눌리지 않고 멋스러운 코트 등을 내놨다.

이베이코리아가 2018년 선보인 장애인·비장애인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패션 브랜드 ‘모카썸위드’.  ⓒ모카썸위드
이베이코리아가 2018년 선보인 장애인·비장애인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패션 브랜드 ‘모카썸위드’. ⓒ이베이코리아

이베이코리아는 2018년 한국척수장애인협회, 국내 의류 제조업체 ‘팬코’와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패션 브랜드 ‘모카썸위드’를 선보였다. 옷에 벨크로를 붙여 입고 벗기 쉽다. 티셔츠는 기장이 길고 밑단 양 옆트임을 줘 움직이기 편하고 허리 속살이 드러나지 않게 했다. 휠체어를 밀 때 소매 오염을 막기 위해 이중 소매를 만들고 안쪽에 밴딩을 적용했다. 바지 솔기도 매만져 오래 앉아 있어도 피부에 쓸려 거슬리지 않게 했다.

신체 특징·취향 따라 기성복 수선 서비스도

기성 의류를 각자의 신체 특징이나 취향에 맞게 수선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있다. 신체 마비, 변형 등으로 인해 옷을 고쳐 입어야 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귀하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는 2019년부터 국내 장애인 의류 리폼 지원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유니클로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는 2019년부터 국내 장애인 의류 리폼 지원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유니클로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는 2019년부터 국내 장애인 의류 리폼 지원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뇌병변 장애인, 휠체어·보조기 사용자, 기저귀를 차거나 누워서 옷을 입혀야 하는 사람, 양손을 쓰기 어려운 사람, 몸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하체가 부은 사람 등 다양한 상황과 취향에 맞춰 옷을 고쳐준다. 서울시보조기기센터, 사단법인 한국뇌성마비복지회가 함께하며, 유니클로는 의류와 사업비를 지원한다. 장애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보조공학사와 경력 10년 이상인 재단사가 상담과 수선을 맡았다. 2년간 장애인 1200명 이상을 지원했다.

뇌병변·발달장애인을 위한 전문 의류 브랜드 ‘베터베이직(Better Basic)’ ⓒ베터베이직
뇌병변·발달장애인을 위한 전문 의류 브랜드 ‘베터베이직(Better Basic)’ ⓒ베터베이직

뇌병변·발달장애인을 위한 전문 의류 브랜드 ‘베터베이직(Better Basic)’도 있다. 뇌병변 장애인인 딸을 키우면서 직접 옷을 만들던 박주현 대표가 2018년 런칭했다. 각자의 체형과 몸이 구부러진 정도에 따라 옷을 입기 쉽도록 트임을 만들거나, 위루관 튜브에 맞게 옷에 구멍을 뚫는 수선 서비스도 제공한다.

전문가들은 장애인만을 위한 패션이 아닌, ‘모두를 위한 패션’이 다음 세대의 키워드라고 말한다. 장애인뿐 아니라 체형이 남다른 사람, 거동이 불편한 노인까지도 소비자로 흡수할 수 있어서 결코 좁은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갈 길이 아직 멀지만, 이렇게 누구나 편안하고 마음에 드는 ‘옷 입을 권리’를 누리는 세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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