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배고픔을 이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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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모무스에 돈 많은 정부를 거느리고 등장하는 무제타. 1977년 스트라스부르 오페라 극장 공연.▶

파리, 사랑, 크리스마스 이브. 이런 말들의 조합은 낭만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지만, 파리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작되는 사랑 이야기를 담은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은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가슴저린 비극이다.

'사회규범이나 세속적 성공에 얽매이지 않으며 가난하지만 자유롭게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이르는 말, 보헤미안. '보엠'은 이 보헤미안을 프랑스어로 옮긴 단어다. 푸치니는 젊은 시절에 밀라노의 다락방에서 작곡 공부를 하며 이가 갈리도록 춥고 배고픈 크리스마스와 겨울을 견뎌야 했는데, 훗날 오페라 <마농 레스코>로 부와 명성을 얻은 뒤 그 시절을 추억하며 1896년에 <라 보엠>을 발표했다. 파리 뒷골목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엮은 앙리 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 삶의 풍경>이 대본의 토대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작가 로돌포는 불도 안 땐 추운 방에서 화가 마르첼로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철학도인 친구 콜리네가 들어오자 자기가 쓴 연극대본을 장작 대신 난로에 넣고 때 버린다. 친구들이 나가고 혼자 방에 남아 있던 로돌포.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려 나가보니 이제까지 한 번도 마주친 일이 없는 위층 다락방에 사는 처녀가 촛불이 꺼져 불을 얻으러 온 것이었다. 연애에서 가장 멋진 부분은 뭐니뭐니 해도 상대에게 자신을 알리고 또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되는 과정의 설렘. 이렇게 서로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노래가 바로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두 아리아 '그대의 찬 손'과 '내 이름은 미미'다. “내가 누구냐구요? 시인이죠. 무슨 일을 하냐구요? 글을 써요. 어떻게 사느냐구요? 그냥, '사는' 거죠. 이 행복한 가난 속에서 저는 제왕처럼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작품 속에서 사랑을 노래하며, 꿈과 환상의 궁전에서 백만장자로 사는 거예요 ….”

'그대의 찬 손'에서 남자는 이렇게 허풍 섞이고 치기 어린 방식으로 자기 소개를 하지만, “이제 당신 얘기를 해 주세요”라는 남자의 말을 받는 여자의 자기 소개는 마냥 소박하고 꾸밈이 없다.

“제 이름은 미미예요. … 비단에 수놓는 일로 벌이를 해 살아갑니다. …”

푸치니의 마술적인 선율은 이 대목에서 듣는 사람에게 갑자기 눈물을 쏟게 만든다. 발작적인 기침을 하는 병약한 처녀가 추운 다락방에서 생계를 위해 수를 놓으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얼마나 간절한 것일까. 그리고 마침내 4월의 첫 햇살이 비좁은 다락방에 스며드는 순간의 그 감격! 푸치니의 음악은 우리가 눈을 감은 채 그 광경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만들어준다. 이제 두 사람은 로돌포의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낸다. 풋풋하고 수줍게 시작된 사랑은 동거로 이어지지만, 로돌포는 자신이 불 땔 돈도 벌지 못해 천식으로 고생하는 미미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쓰디쓴 가책에 괴로워한다. 마침내 서로를 위해 헤어지기로 작정하는 두 사람.

둘이 다시 만나게 됐을때 미미는 이미 죽어가고 있다. 미미를 위해 불을 때고 약을 사고 의사를 데려오려고 로돌포의 친구들은 단벌 외투를 벗어 팔고, 매춘부나 다름없는 무제타도 아끼던 장신구를 판다. 애인과 친구들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언제나 차가운 두 손을 무제타가 준 따뜻한 토시 안에 넣은 채 숨을 거두는 미미. 그는 오페라 속 '청순가련형'의 대표적인 여주인공이긴 하지만, 맑고 소박한 마음 하나로 극중에서 모두의 사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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