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고와야지>와 <희망사항>
<마음이 고와야지>와 <희망사항>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b2-3.jpg



최근 외모에 대한 집착은 꼭 여성만의 현상이 아니다. 남성용 색조화장품, 남성의 성형수술 등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만은 남녀평등이 실현된 것일까? 아직은 그 양상은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아직은 여성에 대한 외모지상주의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여성의 색조화장은 화장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라면, 남성의 색조화장은 두 꽃미남이 출연하는 컬러로션 광고에서도 드러나듯(“와, 피부 죽이는데!”, “로션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를 기억하는가), 색조화장을 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원래 예쁘고 잘 생긴 외모처럼 보이는 방식을 택한다.



최근 그 광고가 남녀 두 명이 출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여자 모델이 '공식적으로는' 색조화장이 금지된 '중고딩' 분위기이니 결국 그 상품은 드러내놓고 색조화장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목표로 광고하고 있음이 확증된 셈이다.



유독 여자에게 외모를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는 현상이 얼마나 부당한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가끔 우리집 강아지를 보면, 그 신세나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든다는 말로 족하지 않을까. 애완동물은 확실히 외모를 중심으로 평가되고 선택된다. 그러나 애완동물의 주인이 애완동물에게 외모로 평가받을 일은 없다. 설사 우리집 강아지가 내 외모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나의 삶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강아지의 외모를 불만스러워하면 그 강아지는 참 살기가 괴로울 것이다.



많은 여자들은 외모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자를 선택하는 위치에 놓인 남자들은 적어도 공식적 자리에서는 '외모보다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남자들은 자신이, 예쁜 여자가 마음도 착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 이런 노래도 아마 그런 착각의 소산이 아닐까 싶다.



새까만 눈동자의 아가씨 겉으론 거만한 것 같아도 / 마음이 비단같이 고와서 정말로 나는 반했네 /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 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 (하략)

남진 <마음이 고와야지>(1967,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이 노래의 뉘앙스는 참 묘하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분명 외모보다는 마음 쪽에 점수를 두고 있는 노래인 듯하다. 그러나 가만히 뜯어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 여자는 얼굴이 예쁠까 안 예쁠까? 새침하고 차가워 보이기는 해도 밉상은 아닌 것 같다. '얼굴만 예쁘다고'의 '만'이란 조사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얼굴'은' 당연히 예쁜 여자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노래의 주인공이 바라는 것은 그저 마음만 고운 여자가 아니라,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고운 여자인 셈이다. 얼굴 못생긴 여자에 대한 호감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더라도 이 노래는 1960년대다운 순진함을 지닌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외모보다는 마음'이라는 도덕적인 결론에 충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자면 20여년 후의 노래는 외모 집착이 훨씬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 (중략) / 머리에 무스를 바르지 않아도 윤기가 흐르는 여자 /(중략) / 웃을 때 목젖이 보이는 여자 / (중략) /뚱뚱해도 다리가 예뻐서 짧은 치마가 어울리는 여자



변진섭 <희망사항>(1989, 노영심 작사·작곡)



욕망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다는 솔직함의 미덕이 없는 것은 아니나, 상식적 솔직함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 미덕의 수준은 낮은 편이다. 자신의 미감(美感)이 무스 바르고 말끔하게 다듬어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으로 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솔직히 인정하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사보다 나를 훨씬 더 열받게 만드는 것은, 이 노래의 말미에 달린 노영심의 목소리다. '희망사항이 너무 거창하군요 / 그런 여자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 / 난 그런 남자가 좋더라'라는 가사 말이다. '그런 여자'가 멋진 여자라는, 이 남자의 편견과 가치평가 기준을 고스란히 내면화하여 인정한 상태에서, 그런 남자와 어울리는 정말 멋진 남자가 좋다는 것이다.(그 멋진 남자란 또 어떤 기준에 의한 것일까?) 왜 이 여자의 목소리는, 여자가 아랫배가 약간 나온 것이 생리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고, 박세리처럼 튼튼한 무 다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노래하지 못하는 것일까?





대중예술평론가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인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