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vegan)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은 '6월5일 세계 환경의날을 맞아, 지구를 살리는 '비건' 채식 촉구 퍼포먼스'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비건(vegan)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은 '6월5일 세계 환경의날을 맞아, 지구를 살리는 '비건' 채식 촉구 퍼포먼스'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010년 3월 2일, 내 생일이었다. 점심 메뉴를 고르기 전 친구에게 말했다. “나 오늘부터 채식하려고.” 평생에 걸쳐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단호함은 없었다. 그저 내 삶을 돌아봤을 때, 너무나도 많은 것을 누리며 욕심을 가지고 지낸 것 같아 줄일 수 있는 것들을 줄여보고자 하는 마음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일을 맞이한 나에게 채식주의를 선물로 주었다.

채식을 선언하자 주변 친구들의 반응은 ‘믿지 못하겠다’는 의심과 놀림이었다. “삼겹살을 제일 좋아하는 네가 어떻게 채식을 해.”, “해산물까진 먹는다고? 그게 무슨 채식이야.”, “파닭을 시켜서 혜민이는 파랑 무를 주면 되겠네.”

이런 말들을 마주한 나는 그저 좋은 사람이 된 것 마냥 허허 웃었다. 불편하긴 했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랑 어울리기 위해서라도 웃으며 지나가야 할 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꿨다. 한 식당에서 억지로 삼겹살을 먹는 꿈이었다. 악몽이었다.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그 때서야 알았다. 채식주의는 존중받아야 할 내 권리라고.

이후 말레이시아에서 한동안 지낼 기회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식당을 둘러보니 채식 메뉴가 있었다. 무슬림 국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런 조건은 사람들 앞에 내가 나답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나를 채식주의자라고 소개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았고 잇따른 질문이나 놀림을 마주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다.

그렇게 채식을 이어가던 나는 5년차에 그만두었다. 대학원 생활과 함께 가난의 회전문을 돌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이랑 어렵지 않게 어울리기 위해서 내 페스코는 우선적으로 포기해야 할 가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국회 식당을 이용하는데 채식 식단을 보게 되었다. 완전한 비건 메뉴는 아니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운영되었지만 정말 반가웠다. 정책을 만드는 이들이 모인 국회에서 채식 식단이라는 메뉴가 등장한 것은 이 사회에 채식주의자 역시 존재하며 존중받아야 함을 보여주는 신호인 것만 같았다.

변화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많은 지자체에서 채식급식을 도입하거나 도입을 앞두고 있다. 또한 군은 채식주의자와 무슬림 병사 규모를 평가해 채식 위주의 식단 제공하기로 결정했고 올해 2월부터 병역판정검사 때 작성하는 신상명세서에 ‘채식주의자’ 여부를 표시하도록 했다.

채식이 기본값이 되는 사회가 머지않아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다양한 이유들로 채식주의를 실천하며 일상을 바꿔나간 이들의 노력과 정치권의 실천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어달리기에 우리 역시 동참해보는 건 어떨까.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
조혜민 정의당 전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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