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청법’ 일부개정법률 공포
성 착취 위해 유인하는 그루밍
“SNS→게임으로 피해 플랫폼 변동”
디지털 성범죄 위장 수사 가능해졌지만
피해자 중 아동·청소년 없다면
신분 위장 수사 불가능 '한계'

온라인 그루밍이 소셜미디어에서 게임까지 번지고 있는 가운데 오는 9월부터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에 위장수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아동·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도 위장수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유인·권유하는 그루밍(Grooming·길들이기) 행위를 처벌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 일부개정법률이 지난달 23일 공포됐다.

요즘 온라인 그루밍…“SNS→게임 피해 플랫폼 변동”

온라인 그루밍은 보통 채팅앱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 게임 내에서도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지난 3년간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 지원 현황을 살펴본 결과 온라인 그루밍 피해 플랫폼 변동을 포착했다. 박성혜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팀장은 지난달 31일 열린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 성과와 과제’ 세미나에서 “아동·청소년 피해 현황에서 일시적 관계는 28.8%였고 친밀한 관계는 1.9%였다”며 “온라인 그루밍 피해는 소셜미디어에서 게임 내 일시적 만남으로 플랫폼이 변동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례로는 게임 아이템 제공을 빌미로 신체사진 요구하는 것이 있다”고 덧붙였다.

플랫폼은 바뀌었어도 피해 양상은 SNS와 유사했다. 박 팀장은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가해자들이 반감을 가져 플랫폼을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게임이라고 밝힐 수 없지만 채팅방과 비슷한 피해 형태”라며 “게임 내에서도 채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대화하다가 온라인 그루밍이 일어나고 신뢰관계가 쌓였을 때 성착취물을 요구하는 등 유형이 상당히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안으로 향후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위장수사가 도입된다. 경찰은 아동·청소년성착취물 혹은 아동·청소년 대상 불법촬영물과 관련된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신분을 밝히지 않고 범죄자에게 접근해 범죄와 관련된 증거 및 자료 등을 수집할 수 있다. 또한 범죄의 혐의점이 충분히 있는 경우 중 수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득이한 때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신분을 위장해 수사를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신분 위장수사를 위한 문서와 도화, 전자기록 등의 작성, 변경 또는 행사까지도 허용될 수 있다.

텔레그램 ‘박사방’ 위장수사 잠입과정.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 성과와 과제’ 세미나 자료 발췌.
텔레그램 ‘박사방’ 위장수사 잠입과정.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 성과와 과제’ 세미나 자료 발췌.

“피해자 중 ‘아동·청소년 없다면 신분 위장 수사 불가능”

위장수사에 대해 전문가는 아동·청소년뿐 아니라 성인 대상 범죄도 신분 위장수사가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나겸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 경감은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하며 위장수사 법제화 이전 텔레그램 ‘박사방’ 위장수사 잠입과정 애로사항을 밝혔다.

2019년 11월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을 공유하고 판매하는 ‘박사방’ 수사팀을 이끈 유 경감은 위장 수사를 결심했다. ‘박사’ 조주빈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 확보, 범행증거 수집, 공범 확인, 새로운 피해여성 확인과 보호를 위해 ‘박사방’에 경찰관임을 밝히지 않고 잠입해 수사할 필요성이 컸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가상화폐 10만원을 박사에게 송금하고 채팅방에 입장했다. 그러나 박사는 위장 입장한 수사관에게 아동성착취물 유포 행위를 요구했으나 수사관은 차마 유포할 수 없어 퇴장 당했다.

텔레그램 ‘박사방’ 위장수사 잠입과정.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 성과와 과제’ 세미나 자료 발췌.

유나겸 경감은 2차 위장수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2020년 1월 담당 수사관은 70만원의 가상화폐를 박사에게 송금했다. 박사는 수사관에게 유출, 기자 및 형사 때문에 사상 검증을 해야 한다며 채팅방 입장 전 신분 확인을 요구했다. 수사관은 지인의 신분증을 보냈으나 박사는 ‘새끼 손가락을 들고 얼굴 인증 사진’을 다시 요구했다. 수사관은 지인을 설득해 사진을 전송했다. 그러나 박사는 끝내 입장을 불허했다.

유 경감은 다시 수사를 할 수 있다면 “2차 위장수사 상황에서 수사팀은 긴급으로 가상 인물의 신분증을 제작한 후 이를 박사에게 전송하고, 가상인물의 셀카 사진을 통해 인증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일련의 과정은 사후 법원의 허가를 받는 ‘긴급 위장수사’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 경감은 “피해자 중 ‘아동·청소년이 없다면 신분 위장 수사는 불가능하다”며 성인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 신분 위장수사가 가능하도록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랑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성인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 신분 위장수사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서랑 대표는 “성인 대상 성착취물 유통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에 (위장수사) 필요성은 있다”면서도 “그러나 성인에 대한 그루밍법이 논의되지 않은 지점에서 구체적으로 위장수사를 어떤 처벌법과 관련해 수사가 가능하게 할 것인지 등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는 아동·청소년 대상 온라인 그루밍 정의를 꼽았다.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 제15조의2에 따르면 온라인 그루밍은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유발할 수 있는 대화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하거나 그러한 대화에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참여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서랑 대표는 “수치심과 같은 용어는 피해자 중심적이지 않은 잘못된 표현”이라며 “촬영물의 경우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표현은 성폭력처벌법 제13조와 제14조 제1항 등에 아직도 쓰이고 있으며 신설 법률에도 적용되고 있다”며 “대체용어를 찾는 것이 과제이며 21대 국회에서는 이 문제를 입법 과제로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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