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놀이 <이춘풍> VS <어을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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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에 가보면 엄청나게 많은 족발집들이 '원조' 간판을 달고 늘어서 있다. 그냥 원조로는 모자라서 '진짜 원조', '원조의 원조'를 내세우며 족발 애호가들을 유혹한다. 족발에 비교하는 것이 좀 민망하지만 요즘 장충동 언덕 위와 아래서도 원조가 궁금한 두 편의 마당놀이가 동시에 공연되고 있다.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 이춘풍>과 MBC <마당놀이 어을우동>이 그것이다.

장충동 원조를 찾아서…

사실 당사자들보다 언론에서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원조 싸움이다. 그러나 MBC와 미추는 1981년부터 함께 마당놀이를 만들다가 갈라섰다고 최근 3년 동안 법정투쟁까지 불사하며 '마당놀이' 용어를 사용하기 위해 분투했다. 결국 마당놀이란 '상품명이 아니라 장르일 뿐'이라는 판결에 따라 올해부터는 사이좋게(?) 시기와 장소까지 겹쳐서 공연하고 있다. 여러 측면에서 마당놀이는 확실히 세인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게다가 조선시대 유명한 바람둥이 남녀를 각각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니 성과 사랑과 결혼에 대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본처와 기생의 대결

국립극장 마당놀이 전용극장에서 공연중인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 이춘풍>(14일까지)은 마당놀이의 스타 김성녀, 윤문식, 김종엽과 연출가 손진책을 비롯한 최고 스태프들이 총출동한 작품이다. 부잣집 아들 춘풍(春風)은 이름에 걸맞게 주색잡기로 가산을 탕진했으나 조강지처의 힘으로 기사회생한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마누라에게 폭력을 휘두르다가 급기야는 융자받은 '공적 자금'을 평양 기생에게 갖다 바치기에 이른다. 춘풍 처 김씨는 관리로 변장하고 춘풍을 구하러 평양으로 떠나는데….

춘풍(윤문식)은 기존의 바람둥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신 춘풍 처(김성녀)와 기생 추월(김성애)의 성격 대조가 흥미롭다. 실제 자매인 두 배우가 보여주는 두 여성인물은 사회적으로 정반대 위치에서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한다.

춘풍 처는 부모의 가르침대로 일부종사 절대복종의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안정된 가정생활을 누리고 싶다. 따라서 남편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남편을 속이기 위한 남장도, 남편을 벌하기 위한 곤장도 서슴지 않는다. 반면 기생 추월은 남성들로부터 재산을 긁어모으는 게 목표다. 그녀가 돈 많은 남성을 유혹하는 방법은 매우 상투적이며 반복적이다. 그런데도 속아넘어가는 춘풍과 그 일당은 어리석은 희극의 주인공에 다름아니다.

한편 장충체육관에서 공연하는 MBC <마당놀이 어을우동>(15일까지)은 텔레비전 드라마 <다모>의 정형수가 대본을 쓰고 영화 <노랑머리>의 이재은이 주연했다. 왕가의 종친으로 시집간 한 여인(이재은)이 왕가를 이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갖지 못해 쫓겨나고, 남편의 육촌에게 보쌈당한다. 울분을 참지 못한 그녀는 기생 어을우동이 돼 뭇남성들을 유혹하기에 이른다. 이유는? 이것이 상당히 애매하다. 대사로만 보자면 “남녀평등 이룬 세상 위해” 혹은 “남자 없는 세상에서 살고파서” '복수'를 감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렇다면 남자를 한눈에 '뻑 가게' 할 수 없는 못생긴 여성은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해봤자 소용없다는 얘기인가?

꼴값 하는 여성의 아리송한 사연

무엇보다도 개막 이틀 전에 연출과 구성 재정비에 긴급 투입됐다는 개그맨 서승만의 캐릭터가 수상하다. 그가 맡은 역할은 일종의 꼭두쇠다. 마당놀이에서 꼭두쇠란 작품 전체의 해설자로서 극에 대한 기본 정보를 알려주고 진행을 돕는 인물이다. 그가 맨처음 관객에게 건네는 말은 “포스터에도 이름이 없는 제가 나와서 놀라셨죠? … 여자는 예뻐야 하죠 … 한편으로는 꼴값, 얼굴값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 여기 얼굴값으로 고생한 여인이 있습니다 … 지금부터 섹시하고 감칠맛 나는 마당놀이를 시작하겠습니다”. 꼭두쇠의 첫 대사로 이 작품은 '꼴값하는 여인의 섹시한 사연'으로 정리된다.

관객들이 나와 고사상에 절하는 순서에서 꼭두쇠는, 돈 내고 들어가려는 아저씨 관객의 손을 앞에 앉은 여배우의 손과 맞잡게 하고 함께 춤추게 한다. 그의 대사는 전혀 준비된 것이 아니고 튀어나오는 대로 내뿜어진다. 무엇보다도 그의 허리를 비트는 기이한 움직임은 전통 춤사위와 무관하다. 꼭두쇠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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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을우동>

쉽지 않은 마당이구나!

두 편의 마당놀이는 모두 '마당'이라는 전통적 연희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마당은 서양 근대극의 무대와는 달리 사면에 관객을 배치하고 연희자들이 그 안에서 놀게 한다. 마당놀이전용극장과 장충체육관 모두 '사면관객'이라는 마당의 요소는 일단 갖추고 있다. 전자는 객석의 뒷면에도 십장생 그림을 걸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없앴다. 후자는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조명을 위한 큰 기둥 네 개를 세워 시각적 사각지대가 형성됐다. 의상의 경우 <이춘풍>은 삼베를 주된 소재로 한복 고유의 실루엣을 강조한 반면, <어을우동>은 얇은 비단을 겹쳐 입음으로써 원색을 강조했다.

<이춘풍>의 마당에서 신나게 노는 배우들을 보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데, 그들이 춤과 노래에 능하고 움직임 하나하나가 양식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사방의 관객들에게 일일이 눈을 맞추면서 전통 춤사위를 응용한 움직임을 선보인다. 미추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군무는 조형적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한다.

마당놀이는 뭐니뭐니해도 풍자가 생명이다. 고전을 현재로 끌어와 '지금'의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이춘풍>이 카드를 긁어대다 망한다거나 춘풍 처가 “따따따. 매맞는 여자. com”을 찾는다거나 하는 점은 웃음을 자아낸다. 작품 전체에 자잘한 현대적 풍자가 가미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무엇을 풍자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어을우동>은 몇 가지 '정권비판적' 대사를 제외하곤 풍자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두 작품의 결말은 꽤 대조적이다. <이춘풍>은 결국 본처에게 돌아온다. 그러나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알고 화를 내고 춘풍 처는 당황한다.

그녀는 관객에게 묻는다.

“이제 이 이야기는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조선시대 폭력남편과 매맞는 아내는 현대의 관객들이 직접 결말을 선택하도록 한다. <어을우동>은 풍기문란 죄로 사형당해 제2대 삼신할미가 된다. 내 궁둥이를 때리며 나를 세상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어을우동이라니 만감이 교차하는 바다.

최예정 기자shoooo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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