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각시의 소풍] ②

이른 아침 일곱 시 볼 일 보러 읍내 나가는 길.

왕복 2차선 지방도로 가에 커다란 보따리 세 덩어리가 놓여 있다. 

아니다. 가운데 한 덩어리는 사람이다. 그 보따리 만한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할머니..

"아, 오늘이 장날이지."

나는 할머니 앞에 차를 세웠다.

"할머니... 장에 가세요? 제가 태워다 드릴께요."

"잉? 날? 이걸 워쩌케..."

"오늘 안장이죠? 그쪽으로 가는 길이에요."

나는 커다란 보따리와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었다. 상당히 무겁다.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며 차에 오르신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데가...어휴...

이걸 들고 버스 타려면 월매나 힘이 드는데..."

"할머니 뭐 해갖고 나가시는 거예요? 꽤 무겁네."

"냉이하고 쑥... 옛날에는 십 키로 가지고 나가면 금새 팔았는데 요샌 안 사먹어."

"할머니 자리 있어요? 어디 앉으세요?"

"응, 꼬꼬통닭 앞"

"아, 거기까지 태워다 드릴께요."

"아녀 아녀... 장 근처에 세워주고 가. 태워준 것만 해도 월매나 고마운데..."

"가는 길인데요 뭘."

"그래도 누가 태워 주남?"

"할머니 연세가 몇이세요?"

"일흔 여섯."

"잉? 일흔 여섯 같지 않아요. 얼굴에 주름이 하나도 없어. 난 예순 일곱 쯤 되셨나 했는데..."

"그려? 호호호"

할머니가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워디 살어?"

"대흥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할머니가 뒷좌석에서 뭔가를 내미신다.

"이거 받어."

"뭐야? 웬 돈이어요?"

할머니는 팔을 뻗어 천원 짜리 한 장을 내 무릎에 올려 놓는다.

"버스 타도 천 원 내야 혀."

"아냐. 난 돈 안 받을 거야."

"태워준 것만 해도 고마워 죽겄는디..."

"할머니, 나 돈 많은 사람이야. 돈 안 받아도 돼요."

"돈 많아? 워치케 해서 돈을 그렇게 많이 불었어?"

내가 정말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할머니가 귀여웠다.

그런데 할머니 고집도 만만치 않다. 좀체 돈을 거두시지 않는다.

"할머니, 돈 내려면 여기서 내려요. 다시는 안태워줄 거야."

그 말에 할머니는 슬며시 뒤로 물러나 앉으신다. 꼬꼬통닭 앞에 도착하여 트렁크에서 짐을 내렸다.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며 어쩔 줄 몰라 하신다.

"할머니, 오늘 많이 많이 파세요."

"고마워."

다시 차에 올라 볼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차 문을 닫는데 뒷좌석 시트에 뭔가 있다.

할머니가 끝내 놓고 간 꼬깃꼬깃 천 원 짜리 한 장.

오늘 아침 나는 처음으로 천 원 짜리에 퇴계 이황 선생의 그림이 있다는 걸 알았다.

뒷면에는 도산서원이 그려져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천 원 짜리를 이렇게 앞뒤로 한참을 들여다 본 것도 처음이니까...

박효신<br>
박효신(풀각시)

 

*'풀각시'는 글쓴이 박효신의 블로그 닉네임입니다. 이번에 연재하는 [풀각시의 소풍]에서 소풍은 '박하지만 요롭게 살기'의 줄임말로, 필자가 마을가꾸기 사업을 이끌며 경험하고 느낀 농촌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 도시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삶과 정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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