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말과 경험, 성적인 부분만 부각되고 수용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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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뒷얘기에 열 올려봤을 연예인들의 사생활. 소소한 스캔들에서부터 결혼과 이혼, 불륜, 사고, 죽음, 출생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왠지 들으면 들을수록 '호기심'을 유발한다. 내가 사는 세상과 멀어 보일수록 그들의 삶은 화제이고 동경이다. 마음껏 익명의 욕설과 비난을 퍼부어 댈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왜일까.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너무나 깊숙이 우리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다.

스포츠 일간지에 오르내리는 연예인 누구의 이름과 전날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고 듣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이 됐다. 더욱이 여자 연예인이라면? 천박한 언론 풍토에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통념이 합세해 그들을 만신창이로 만들어온 지 오래다. 그녀들의 말과 삶은 성적인 부분만 부각된 채 언론지상에 오르내린다. 그녀들의 '몸'과 연애담과 성 경험, 이혼, 도피 등의 이야기를 지하철을 기다리며, 출퇴근하며, 인터넷을 접속하며 수없이 접하지 않는가.

'더 자극적으로 드러내라'

비슷한 시기에 두 여자 연예인의 이야기가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탤런트 서갑숙(43)의 두 번째 에세이집 <추파>(디어북)와 펄시스터즈의 멤버로 활동했던 가수 배인순(55)의 자전 소설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잔>(찬섬). 공교롭게도 이 책들은 성경험에 대한 이야기와 누구의 섹스 스캔들을 '폭로'했는지로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추파>는 1999년 외설 논쟁을 부르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의 저자인 서씨가 4년 만에 공백을 깨고 펴낸 책이다. 당시 주변에서 보인 책에 대한 반응과 이후의 이야기들, 달라진 자신의 생각, 어머니와 두 딸과 생활하게 된 사연 등을 담담한 어조로 쓰고 있다.

노골적인 성경험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당시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성경험만 부각된 채 출판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듯 저자는 제목 '추파'('가을의 잔잔하고 맑은 물결', '은근한 정을 보이는 여자의 아름다운 눈짓') 만큼이나 절제되고 은근한 향기가 배어나는 에세이로 자신의 경험들을 풀어냈다. 그는 당시 책을 내고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경험, 생각들을 편하게 썼는데, 1,400매 가량이던 원고가 교열을 보는 과정에서 성경험만 부각된 채 800매로 나오게 됐어요.”

그는 고통을 나누고자 몸과 마음을 벗고 악수를 청했는데, 사람들은 옷으로 중무장한 채 그에게 '더 벗어봐', '더 까발려봐' 라고 말했다고 한다.

“책을 내고 난 이후 사람들은 내 이미지를 성과 연결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생각하기 힘든 것 같았어요.”

모 여성지와의 인터뷰가 전체 맥락은 빠진 채 자극적인 내용만 기사화 된 것이 화가 나 펴낸 책이 그토록 사회적 반향을 몰고 올지 몰랐다고 그는 말한다.

'폭로', 행위성과 상업성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추파>는 그가 새롭게 관심 갖게 된 아로마 세라피에 대한 이야기와 향기에 대한 그의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는 방식이다. 그는 “글을 쓰고 나면 엉킨 삶이 교통 정리가 되고 앞으로 달려나갈 힘을 얻어 또 다시 삶을 단단히 붙잡게 된다”면서 “내 딸들에게 가부장적인 한국의 사회제도에 얽매여 순종하며 사는 것만이 미덕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도 말한다.

배인순씨의 자전 소설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잔>은 최근 모 탤런트와 재벌 3세의 결혼이 파경에 이르면서 함께 묶여 인구에 오르내리는 책이다.

펄시스터즈로 활동하던 당시 품었던 세계적인 가수에 대한 희망, 신혼 초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결혼생활, 시댁과의 갈등,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남편 최씨에 대한 애증 등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관음증적인 욕망을 부추기면서 성에 대한 폭로만을 부각시키는 언론의 보도는 다분히 문제적이다. 여느 연예인의 자서전과 다를 것이 있을까 싶지만 그의 책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은 전남편의 섹스 스캔들을 '폭로'했다는 사실에만 모아진다.

하지만 폭로는 다분히 약자들의 말하기 방식이다. 권력을 쥔 자는 단순히 말할 뿐 무언가를 폭로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가 정말 무언가를 폭로하고 싶었는지 그저 말하고 있을 뿐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이 책은 20년 동안의 삶을 정리하고 재기하고 싶어하는 저자의 한풀이 분위기가 강하다. 그는 서두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때부터 결혼을 하는 순간까지 나를 따라다니던 매스컴의 관심, 사람들의 눈빛과 입이 두려웠다”면서 “그 동안 숨통을 조이고 있던 옷을 한 겹 한 겹 벗고자 한다”고 쓰고 있다.

또한 “체어맨스 와이프라는 칭호에 도취되어 산 적도 있었다”면서 “오랜 세월, 내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먹는 것, 입는 것, 미소를 짓는 것, 걸음을 걷는 것까지 남을 의식해야 했던 시간들이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말한다.

임인숙 기자isim123@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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