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 발행인

수능사상 처음으로 복수 정답이 인정됐다며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정답이 두개라니, 'OX사회'가 경천동지할 만한 일이다. 올해 수능시험의 언어영역 17번 문제의 정답이 두개임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이종승 평가원 원장이 책임지고 사퇴할 의사까지 밝혔다고 한다. 정답이 두 개인 시험문제를 내어 수십만, 아니 수백만 국민들을 헷갈리게 했으니 마땅히 책임을 질 일이다. 가뜩이나 송모라는 '경계인'이 사회 전면에 등장하는 등 국가적으로 OX가 헷갈리는 마당에 수능 시험문제까지 헷갈리게 한 죄는 심히 크다 하겠다. 어느 초등학교 3학년 국어 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

“옛날에 한 나쁜 사또가 한겨울에 이방에게 산딸기를 구해 오라고 했습니다. 이방은 걱정을 하다 병이 났습니다. 이방의 아들이 그래서 꾀를 냈습니다. 아버지가 독사에게 물렸다고 사또에게 고한 것입니다. 사또가 거짓을 고한다고 화를 내자, 아들이 말했답니다. 겨울에 독사가 없는 것처럼 산딸기도 없습니다.”

[문제] 위의 전래동화를 읽고 다음 괄호 안에 적당한 말을 넣으시오.

이방은 병이 났습니다. ( )

겨울에는 산딸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출제자가 요구한 정답은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왜냐하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학생이 괄호 속에 이렇게 썼다. '이 추운'. 아마도 이 아이는 문제를 출제한 교사보다 언어감각이 더 뛰어난 것 같다. 사실 접속사를 쓰지 않고도 뜻을 전할 수 있는 문장이 더 좋은 문장이다.

저 괄호 속에도 '왜냐하면'보다 '이 추운'이 들어가는 편이 문장이 더 매끄럽다. 사실 저 문제의 정답은 두개가 아니라 수없이 많을 수 있다. 왜냐하면, 왜냐면, 그 까닭은, 추운, 이 추운…. 조금 더 상상력이 있는 아이라면 '얼음이 어는 한'이라고 써넣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저 문제를 보자마자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를 써넣을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모범생을 추켜세우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다행히도 이 시험문제를 채점한 어느 선생님은 출제자가 의도한 정답이 아닌 '또 하나의 정답'도 맞는 답으로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검찰도 이런 선생님 밑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더라면, 그리고 정답이 두 개일 수도 있는 수능시험을 봤더라면 송두율 사건의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정답이 하나뿐인 사회에서 저 나름대로 또 하나의 정답을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노릇이다. 출제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서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니까.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는 이 사회가 언제쯤 바뀔까. '백 마리 원숭이 법칙'처럼 한 사람 한 사람 의식이 바뀌다가 어느 임계점에 이르면 전체 사회가 환골탈태를 하게 될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백 마리 원숭이 대열에 합류할 것인가. 입맛이 먼저 깬 사람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 바닷물에 씻은 짭짤한 고구마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이 대열에 합류할 일이다. 정답이 하나뿐인 세상이 얼마나 '밥맛 없는'세상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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