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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봄은 왔지만 마음속까지 봄은

아니라는 의미일 게다. 실제로 절기로 따져 대동강얼음이 풀린다는

우수(雨水)나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후 춘분

을 지나서도 ‘꽃샘추위’ 때문에 외투를 걸쳐입는다.

그러나 이번 봄은 유난히 봄같지 않다. 다 알다시피 IMF시대의 대

랑실업에서 오는 겨울추위가 세다. 소위 외환위기로 빚어진 ‘환

풍’(換風)이다. 이들 실업자에겐 공원의 벤치나 가까운 산자락에서

쬐는 봄볕이 오히려 여름햇빛보다 더 따갑게 느껴질 것이다.

컴컴한 지하방에서 낮술 퍼마시고 나왔을 때 아직 해가 남아있으면

더욱 머쓱해지는 것처럼, 아직은 뼛속까지 에일만치 매섭지 않은 바

람이고 정권초기여서 불만이 개인적인 수준이지만 이 미풍들이 모여

고기압이 되면 언제 ‘광풍’으로 변할지 모른다. 양대 노총에서도

프랑스 독일등에서 조직되어 있는 ‘실업자동맹’조직건이 논의가

되고 있다. 이에대한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하지 않으면 사회보험이

나 국가적 구제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불안

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정치권에도 아직 하늬바람이 사라지지 않았다. 찬 대륙성

고기압의 ‘북풍’이 언제 다시 돌풍으로 변할지 모른다. ‘총리인

준’ 문제로 여야가 한바탕 붙더니 ‘서리’로 몸을 낮추고 있는 사

이 이젠 안기부쪽에서 강풍이 불고 있다. 워낙 중요한 사안이고 자

칫하면 정치권의 판을 뒤흔들 수도 있어 국민들도 싸늘한 눈초리로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치적 공방의 장에서 검찰수사로 방향이 바뀌

고 있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조작인지를 밝혀내야 한다. 국민의

세금을 들여 ‘적과의 동침’이나 ‘내통’을 했다던 그 책임자들을

문책하는 것이 당연하다. 최고책임자가 조사도중 자살기도인지 자해

소동인지로 난리가 났다. 일본 무사들이 하던 할복의 방법이었다. 정

말 억울한 무엇이 있어서 그런지, 여론의 동정을 얻어보려는 심산인

지, ‘부하들을 보호하기 위한’ 의리인지 모르겠지만 과격한 행동

에 동정이 안간다.

시중에서는 미국영화 타이타닉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러브 스토리를 낳아 할리웃적인 재미를 붙여놓았

다. ‘미풍’(美風)이 너무 강하다. 있는 사람들이 외제차를 타고 다

니기가 무섭다는 말들을 한다. 미국은 아직도 한국소비자들이 외제

를 무조건 배척하고 있는 분위기라며 ‘공정거래위반’이라고 볼멘

소리를 한다. 아직도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에서는 우리쪽이 적자다.

그렇게 몰아부칠 일이 아니다. 기름, 농산물, 무기부터 캘리포니아산

포도주까지 무차별 수입을 하고 있는데다 비싼 달러이자까지 주고

있는게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더러 비싼 무기와 자동차 시장을 더

개방하라고 하니.

이런 강풍이 몰아치고 있는데도 남북한간에는 ‘통풍’도 잘 안되

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바람은 솔솔 불고 있지만 정작 남북간

에는 바람이 잘 안통하고 있다. 항상 정권초기에 너무 섣부른 통일

정책을 내놓아 오히려 여론의 비난을 받곤 했지만 ‘국민의 정부는

여소야대의 취약성때문에 움직일 여력이 없는 것 같다. 문민때 시작

된 4자회담이 열리기는 했지만 분과위구성문제때문에 설왕설래하다

가 그냥 끝났다. 농사에 필요한 비료를 조금 지원해준 정도가 전부

다. 대선때 연결됐던 여러 통로가 이중간첩통로로 쓰였다는 의혹때

문에 북한쪽에서는 오히려 남쪽과의 기존 경협창구도 폐쇄하려는 움

직임이다.

남한이 경제위기를 맞아 북한을 도와줄 마음마저 얼어붙었는데 최

근의 정황으로 보아 북한의 식량난이 더욱 심각한 모양이다. 지난

가을 대대적으로 보리와 밀을 심어 올해 보리고개는 함께 넘겨야 했

는데 대선정국을 맞아 누구 하나 신경을 못썼다. 김영삼대통령의 지

적중 하나가 남북간의 소득격차를 줄여 통일기반을 조성한 것이라는

농담도 있었지만 오히려 북한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졌다.

그래도 따뜻한 봄날이 왔다. 시골동네 문설주엔 새로쓴 입춘대길

(立春大吉)이 나붙었을 것이다. 환풍, 북풍, 미풍의 찬바람을 이 훈훈

한 춘풍으로 덮어버릴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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