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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교정, <정말로 진짜>, 재발행 2003, 시공사.▶

글 싣는 순서

① 아이들에게 어떤 만화를 읽히나

② 추억의 만화가게

③ 내게 힘을 주는 만화

④ 새로운 만화가 오고 있다

1990년대 들어 한국 순정만화는 눈부신 성장가도를 달리게 된다. 오죽하면 당시 극도로 예민한 문제였던 '일본문화 개방'에 대해 “순정만화는 걱정 없다. 작가군과 팬들이 이미 두터운 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오만한 진단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

1990년대를 아울러 순정만화 잡지는 무려 24개에 이르렀지만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서너 개에 불과하다. 특히 '제9의 예술 만화'라는 의미의 <나인>은 1997년 창간되어 2001년에 폐간됨으로써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 잡지는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성인 여성'을 주독자층으로 설정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마니아를 위한 고급 만화'라는 누명을 쓰고 판매부수 저조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나인>에서 배출된 놀라운 만화책들은 아직도 만화가게 구석에서 종종 발견되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빌려보지 말고 진작에 사보았으며 그 좋은 만화들을 아직도 보고 있을 텐데…'하는 때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어쨌거나 이 시기에 수많은 작가들이 대거 등장했고 놀라운 수작들이 발표되었다. 1990년대를 빛낸 기라성 같은 만화가들을 일일이 꼽을 수는 없겠지만 한혜연, 유시진, 천계영, 권교정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한혜연은 1993년 데뷔한 이래 명랑, 공포, 추리, 사실주의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특히 그의 <금지된 사랑>(1999, 전2권)은 동성애, 불륜 등 사회가 금지하는 사랑을 하는 네 명의 여고동창생들을 중심으로 '사랑'의 본원적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자신의 선택을 믿고 행하는 인물들을 따라가노라면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유시진은 나름대로 독특한 세계를 설정하고 그 속에 놓인 인물들의 삶에 주목한다. <마니>(1995∼1996, 전4권)는 바다 속 또 다른 세계로부터 인간이 살고 있는 지상으로 피신한 왕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결국 용왕의 딸이 육지에 와서 겪는 이야기지만, 평범한 여고생의 모습으로 학교에 다니는 그녀의 눈에 비친 인간세상은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차 있다.

특히 부모의 남아선호에 짓눌려 조금씩 죽어가는 같은 반 아이의 이야기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비슷한 시기(1997)에 데뷔한 천계영과 권교정은 저마다 열광적인 팬들을 거느리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혀 다른 그림체와 서사방식을 지닌 두 작가의 작품은 묘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성인물의 성격과 역할이다. 천계영의 <언플러그드 보이>(1997, 전2권)와 권교정의 <정말로 진짜!>(1998∼1999, 전3권)에서 여주인공은 '원단 평범' 소녀들이다.

평화로운 가정, 열심히 하면 오르는 성적, 친하게 지내는 친구 몇 명. 그런 그녀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멋진 꽃미남과 사귀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그녀들이 이 어리버리한 꽃미남들을 사춘기로 끌어올린다는 점, 즉 여성이 남성을 성장시키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더 이상 여성이 '목적어'에 위치하지 않고 '주어'의 위치에서 관계를 형성해가는 모습은, 그것이 어린 소녀들의 이야기로부터 환유된다는 점에서 한결 즐겁다. 쟤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랴?

최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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