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활동가 이설아씨
남편과 함께 헌법소원 제기
자녀에게 엄마 성 물려주려면
​​​​​​​별도 협의서 작성 요구 받아

김설아 ⓒ홍수형 기자
부성 우선주의 원칙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한 이설아씨. ⓒ홍수형 기자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민법 제781조 제1항은 ‘부성 우선주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자녀가 아버지의 성을 우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어머니의 성을 물려주려면 자녀를 낳기 전일 가능성이 높은 ‘혼인신고 당시’에만 선택할 수 있고, 협의서도 따로 제출해야 한다. 여성을 합법적으로 차별하는 규정이라는 지적이 일었지만 ‘호주제’ 폐지 이후에도 16년째 법은 바뀌지 않고 있다.

“구시대적인 가족 제도에 종점이 찍힐 때가 왔습니다. 저희 부부는 오늘 수많은 소수자들을 괴롭혀온 정상가족 프레임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내기 위해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합니다.”

이 낡은 가족제도에 균열을 내려는 여성이 있다. 이설아(27)씨는 지난 3월 18일 남편 장동현(30)씨와 함께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를 찾았다. 민법 제781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아빠의 성을 따르는 것을 우선하는 민법 제781조 제1항이 ‘혼인과 가족생활은 양성평등을 기초로 성립·유지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 36조 1항이 보장하는 기본권과 인격권,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고 봤다. 게다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성을 혼인신고 때 정하도록 하고, 이를 번복하려면 소송을 불사해야 하는 점, 엄마 성을 따를 때만 ‘별도 체크’하게 하고 협의서를 내게 하는 것도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헌법소원 심판 청구는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 있는 일이다. 변호사도 반드시 선임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도 만만찮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결심했고 기자회견을 자청해 소식을 알리려고 노력 중이다. “직접 겪은 불합리한 문제를 스스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더 빨리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자신의 이러한 노력을 “정치”라고 표현했다.

현재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장경태 의원이 민법 제781조의 부성 우선주의 원칙을 폐지하는 민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차별 없이 성·본 쓰기를 위한 민법 및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놨다. 여성가족부도 부모가 협의해 자녀의 성을 결정하는 방안 등이 담긴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다음달 국무회의에서 심의·확정할 계획이다. 

이설아·장동현씨 부부가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아이가 아버지 성을 우선 따르도록 한 민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설아·장동현씨 부부 제공
이설아·장동현씨 부부가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민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이설아·장동현씨 부부 제공

불합리한 일상 바꾸는 ‘정치’

이씨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문제를 알리고 개선하기 위해 뛰는 활동가다. 바른미래당 청년정치학교에서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경기도당 대학생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지난해에는 뜻이 맞는 동료들과 비영리단체 ‘세계시민선언’을 세우고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주연배우가 홍콩 규탄 발언을 하고, 엔딩 크레디트를 통해 위구르족 탄압에 연루된 중국 단체에 감사를 표하자 영화 ‘뮬란’ 보이콧 운동을 했고,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서 미얀마 쿠데타 규탄 퍼포먼스를 펼쳤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위한 집회도 열었다. 국가폭력 피해를 입거나 인권 침해를 겪은 약자 곁에 서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일, 이것이 활동가 이씨의 일이다. 그는 국회 밖에서도 시민 누구나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일상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문제를 목소리를 내고 정치권에 개선을 요구하며 바로 잡는 일이 바로 정치”라는 설명이다.

이씨가 처음 세상의 부당함에 목소리를 낸 것은 2017년 모교인 단국대에서 벌어진 ‘성희롱 현수막’ 사건 때다. 당시 성희롱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학생회관에 내건 학생자치기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학교는 가해 학생을 감싸려 들었다. 결국 징계 대신 당사자의 자진 사퇴로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이씨는 “권력의 차이”에 대해 실감하게 됐다. 

혼인신고서 4항에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질문에 ‘예’라고 표시해야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다.
혼인신고서 4항에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질문에 ‘예’라고 표시해야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다.

결혼식 대신 시민결합식

직장을 다니는 남편과는 지난해 독서모임에서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내 아이에게는 내 성을 물려주고 싶다”고 생각해온 이씨는 남편과 대화를 나누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결혼을 진행했다.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결혼식은 오는 5월30일 ‘시민결합식’ 영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저희는 운 좋게 여성과 남성 두 사람이 만나 혼인신고를 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결혼 형태들도 있잖아요. 결혼을 시민결합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다양한 결혼의 형태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해 결혼식 대신 시민결합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2일 혼인신고를 하러 구청에 갔다가 뜻밖의 상황을 맞았다. 혼인신고서에 자녀에게 엄마 성을 주려면 혼인신고서 4번에 있는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했습니까’라는 질문에 ‘예’라고 체크한 뒤 별도 협의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하라는 대로 하고 집에 와서 찾아보니 아이에게 아빠 성을 줄 때와 달리 엄마 성을 주려고 할 때 별도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현재 법률 개정 움직임도 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저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헌법소원 심판 청구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씨는 “헌법소원은 법 개정 발효 이후 90일 안에 제기해야 하지만, 민법 해당 조항은 21년 전인 2005년 개정됐다”며 “그래도 혼인신고를 하면서 법의 불합리함을 알게 됐기 때문에 혼인신고일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했다.

그는 가족을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같이 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헌재가 전향적으로 이번 청구를 받아들여 부성 우선주의 뿐 아니라 정상가족 프레임에 균열을 내는 움직임으로 이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구시대적인 가족 제도에 종점이 찍힐 때가 왔습니다. 저희 부부는 오늘 수많은 소수자들을 괴롭혀온 정상가족 프레임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내기 위해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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