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쯤, 학교폭력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학교폭력에 관한 인터뷰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청중으로부터 한국에는 학교폭력을 처벌하는 법이 없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한동안 학교폭력의 법제화에 관한 토론이 이어졌다. 나는 조금 실망했는데, 토론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이 법제화로 학교폭력을 일정 정도(혹은 상당 부분) 제어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한국 측 패널 한 분이 예전보다 학교폭력이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걸 어떻게 아시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괜스레 무안하게 만들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분이 설득력 있는 근거를 대지 못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란 지옥, 상처로 얼룩진 곳”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나르 드프랑스(Bernard Defrance)는 오랫동안 학교폭력 문제를 연구해왔는데 저명인사들을 인터뷰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철학자 미셸 세르(Michel Serres)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린 시절, 형과 나에게는 쉬는 시간이 언제나 약육강식의 법칙을 생각나게 하는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이 어쩌면 내 일생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다섯 살부터 열 살까지 하나의 전쟁 내지는 폭력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또한 유대계 알제리 출신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학생이었을 때 매우 불행했습니다. … 나는 내가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이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죠. … 유치원에서부터 학교란 일종의 지옥이었고 상처로 얼룩진 곳이었습니다. … 내 일생을 몸담은 이 학교라는 기관에 대해 나는 아직도 매우 과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세르와 데리다는 모두 1930년생. 이들이 경험한 학교는 2차 세계대전 시기의 학교다.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이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에서 학교에 다닌 사람도 세르와 데리다의 증언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쉽게 감정 이입할 수 있다. 과연 80년 전 학교에 비해 현재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더 줄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80년이나 흘렀음에도 학교폭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말해야 옳지 않을까?

학교폭력에 관한 법제는 당연히 필요하고, 관련법이 있는 지금이 옛날보다 더 낫다는 것도 맞다. 그러나 법제화로 학교폭력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어림도 없다. 살인율이 높은 나라에서는 살인이 죄가 아니라서 살인이 많은 것이 아니다. 살인율을 통제하려면 빈곤율이나 정치적 혼란 같은 사회 구조적 요인을 들여다봐야 한다. 학교폭력 문제에서도 학교 제도를 연구하지 않으면 효과적인 해결책을 얻기 힘들다.

학교 제도의 어떤 특성이 학교폭력을 유발하는 것일까. 교육사회학의 연구 성과에 근거해 몇 가지 중요한 지적을 할 수 있다. 첫째, 학교는 학급이라는 의사(擬似) 공동체로 조직되어 있다. 학교는 공유하는 것이 거의 없고 인연도 없는 아이들을 수명이 1년 남짓한 가짜 공동체 안에 모아 놓는다. 둘째, 인간관계가 유동적이지 않다. 가짜 공동체는 경계가 명확해서 구성원이 빠져나가거나 새 구성원이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다.

‘사이좋게’ 지낼 것 명령받아

셋째, 유대가 운명지어져 있다. 아이들은 학급이 구성된 순간부터 모두와 ‘사이좋게’ 지낼 것을 명령받는다. 넷째,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질서가 지배한다. 학급 밖의 질서를 학급 안으로 들여오는 것은 금기다. 그래서 시민 사회의 정의가 교실 안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다섯째, 의무다. 학교 이외의 방식으로 학습하는 것은 법률적, 사회문화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학교 밖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아이들은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학교폭력은 외부자가 쉽게 관찰할 수 없다. 부단히 노력해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 반에는 학교폭력 같은 나쁜 짓 하는 친구는 없지?”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듣고 상담을 포기했다는 증언을 들은 적이 있다. 함부로 학교폭력이 줄었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금구(禁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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