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유권자, 성평등 서울을 원한다]
4‧7 선거 20일 앞으로
단일화‧LH사태에 쏠린 눈
성폭력 근절 대책은 뒷전
여성들 “정당보다 공약”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 투표를 서울특별시장 보권선거 홍보 조형물이 설치되어있다. ⓒ홍수형 기자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홍보 대형 현수막과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홍수형 기자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성신문이 만난 여성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를 두고 “허탈하다”고 표현했다. 젠더 이슈가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빗나가면서 여성들은 “공약을 보고 뽑고 싶어도 (후보별로) 차이가 없다”, “내 삶을 바꿀 공약을 내는 후보가 안 보인다”, “최악을 피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여성들도 많았다. “성폭력 근절 공약을 보고 선택할 것”, “지지 정당보다 정책”, “이번 선거만큼은 여성을 뽑겠다”, “사표가 되더라도 소수정당 후보를 찍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젠더 이슈 사라진 선거

“성평등 사회를 위한 뚜렷한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당 후보를 뽑겠다.”

직장인 이솔(가명·29)씨는 “젠더 이슈를 언급함에 있어 수세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후보를 뽑겠다”고 밝혔다. 이씨는 “박원순의 사망으로 치르게 된 보궐선거임에도 젠더 이슈를 전면에 앞세우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면서 “성평등 사회를 위한 뚜렷한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당, 후보자는커녕, 박원순의 그림자로 성폭력의 프레임이 씌워질까 두려워하는 행태가 몹시 실망스럽다”고 꼬집었다.

4월 7일 열리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전임 시장의 성폭력 사건으로 초래된 이른바 ‘미투 선거’다. 젠더 이슈는 후보 단일화와 LH 사태 등 이슈와 정쟁에 밀리고 토론회나 간담회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여야 후보가 내놓은 성폭력 근절 공약도 빈약하거나 구체적 실현 방안이 모호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취업준비생 유상희(24)씨는 “뽑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서 투표 기권을 “선택”했다. 유씨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이 물러난 이유가 권력형 성범죄 때문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대로 목소리 내는 후보가 없다”면서 “후보 중 그 누구를 뽑더라도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총선 이후 여당은 180석을 가져갔지만 이후 청년과 여성, 성소수자 문제 등을 소홀히 다뤘다. 감수성 없는 발언들로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주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불거진 LH 문제도 심각하다. 청년들은 노동소득으로 집 하나 장만 못 해서 거품경제인 줄 다 알면서도 ‘영끌’과 ‘빚투’를 한다”며 “공기업 LH에서 미리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땅 투자한 것은 개인적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며 이를 용인한 여당 후보를 뽑을 수 없다”고 했다. 

 

이번엔 ‘여성’에 표 주겠다

여성 후보에 투표하겠다는 여성들도 있었다. 남성 지자체장의 성폭력 사건으로 치르는 선거인만큼 남성을 뽑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업가 김영옥(51)씨는 “성추행 사건으로 재보궐 선거를 하는 만큼 이번에는 여성이 시장이 돼야 한다”면서 “그래야 앞으로 시장의 권력형 성범죄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야권 후보가 당선되면, 그간 서울시 행정이 많이 바뀌게 될 것이고 그러면 세금이 더 많이 투입되는 등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여당 후보가 돼야 서울시가 시의회 등 다른 기관과 협조적 관계도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김지혜(가명·33)씨도 “무조건 여성을 뽑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을 지지해서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여성이 성적으로 다른 사람을 착취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씨는 “기득권 남성이 이 문제에서 뼛속깊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절대 다시는 나의 표를 받을 수 없을 것”라고 덧붙였다.

직장인 유성희(28)씨는 “남성 시장의 성추행으로 치르는 선거라도 꼭 여성 시장이 돼야 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마땅한 인물이 없다. 그 밥에 그 나물 같다”고 했다. 그는 “성별보다는 성인지 감수성으로 후보를 살펴보고 젠더 문제뿐 아니라 서울 시정 전반을 잘 알고 책임감 있는 인물을 선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책 대동소이, 차별화 안돼

두 살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 이지영(가명‧37)씨는 “내 삶을 바꿀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며 “허탈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으로 이사하며 처음 서울시장 선거에 참여하는 그는 “후보들이 서부권 개발을 공약으로 내놓고 있어 주의깊게 보고 있지만 후보마다 차이점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성폭력 사건 이후 상처 받은 시정과 시 직원 관련해서 목소리를 내는 후보도 안보인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야기만 한다”고 짚었다.

이씨는 “임기 1년 남짓의 시장이어서 구체적인 공약을 내지 않는 것인지, 대선 전초전 성격이라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실망스럽다”며 “피부에 와닿는 공약이 없어 투표를 기권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지현(36)씨도 “선거의 본질과 어긋나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후보들이 젠더 이슈보다는 부동산 이슈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씨는 “후보들이 어떤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지 공약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알고 싶지만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선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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