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편집 영상 입소문 타며
4년 만에 음악 차트 역주행

브레이브걸스가 지난 2017년 3월 발매한 ‘롤린’(Rollin‘)이 최근 다시 음원 차트를 역주행, 1위에 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SBS 인기가요에서 1위에 오르자 감격하는 브레이브걸스 멤버들의 모습. 사진=SBS 인기가요 영상 캡쳐
브레이브걸스가 지난 2017년 3월 발매한 ‘롤린’(Rollin‘)이 최근 다시 음원 차트를 역주행, 1위에 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SBS 인기가요에서 1위에 오르자 감격하는 브레이브걸스 멤버들의 모습. 사진=SBS 인기가요 영상 캡쳐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키듯 사소하게 보이는 일들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들의 원인이 되어 엄청난 파급력을 일으키는 순간이 있다. 10년 무명의 세월과 해체의 위기에 직면했던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이하 브브걸) <롤린Rollin>의 기적적인 성공은 이런 일들이 흔치 않지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롤린> 동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000만을 넘어섰고, 음원은 멜론 등 유수의 스트리밍 차트에서 정상을 찍었다. 브브걸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거머쥐었고 각종 음악방송과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이어 러브콜을 받고 있다. 유사한 일들이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브브걸의 질주는 세계 유일 분단국의 징병제가 만들어낸 군대문화와 군인(이거나 이었던) 팬덤의 힘, 그리고 미디어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기존 콘텐츠에 새로운 요소를 더해 색다른 콘텐츠로 만드는 생비자인 유튜버의 존재가 결합된 독특하지만 의미 있는 문화 현상이다.  

나비의 날개짓은 비디터(VIDITOR)라는 유튜버가 2월 23일에 업로드한 한 편의 동영상이었다. 해당 영상은 국방TV의 <위문열차> 프로그램에 출연한 브브걸의 여러 영상을 교차 편집한 후, 재미있는 댓글 일부를 영상에 덧입힌 댓글 모음 영상이다. 어쩌면 기존 콘텐츠에 무엇인가를 첨가하여 흥미를 유발하는 일반적인 재편집 동영상과 다를 것이 없을 수도 있었지만, 이 영상은 이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지점을 갖는다. 그것은 바로 영상 속 공연 무대가 부대이며, 떼창과 춤을 추면서 열광적으로 호응하는 이들이 젊은 군인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동영상의 댓글들은 하나같이 군 시절의 브브걸의 위세와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들이다. 세계에서 일부 국가만 시행하는 징병제는 젊은이들의 자유를 일시적으로 빼앗고 폐쇄된 곳에서 위계질서에 따를 것을 강제하는 군대문화를 조성한다. 자유롭게 자라난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환경일 수밖에 없다. 젊은 군인들의 분출구인 위문 공연은 말 그대로 강제로 징집된 젊은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방문 공연이지만, 징병제에 대한 이들의 불만을 일시적으로 잠재우는 역할을 하는 기형적인 군대 문화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군인들이 흥을 발산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위문 공연이 갖는 의미는 군인들에게 각별하고, 공연에 대한 이들의 호응은 열정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에 대한 추억은 특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브레이브걸스 '롤린' 역주행은 유튜버 비디터가 올린 무대 편집 영상에서 시작됐다. 3월17일 기준 영상 조회수는 1027만회를 넘어섰다. 사진=유튜브 채널 비디터 영상 캡쳐
브레이브걸스 '롤린' 역주행은 유튜버 비디터가 올린 무대 편집 영상에서 시작됐다. 3월17일 기준 영상 조회수는 1027만회를 넘어섰다. 사진=유튜브 채널 비디터 영상 캡쳐

유튜브 속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금세 휩쓸릴 수 있는 동영상을 살려낸 것은 브브걸로 군 시절의 추억이 소환된 군인들의 팬덤의 힘이다. 비디터의 영상이 군인 팬을 각성하는 기점이 된 것이다. 이들은 동영상 콘텐츠에 자신들의 군 시절 경험한 혹은 들었던 브브걸에 대한 미담과 내무반에서 벌어졌던 노래와 관련한 에피소드들을 쏟아냈다. 유튜브에 달린 재미있고 신기한 댓글들은 또 다른 흥미를 유발하고, 많은 이들에게 영상과 댓들이 다시 공유되면서 입소문이 퍼지고 인기의 선순환이 이뤄진 것이다.

더 나아가 브브걸의 팬들은 개방과 참여, 그리고 공유라는 온라인 세계의 이점, 그리고 알고리즘의 영향력에만 기대지 않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걸그룹의 성공을 위한 전략을 적극적으로 수행 중이다. 대부분 예비군으로 이루어진 팬들은 ‘화력 집중’과 ‘총공’으로 지상파 음악방송과 스트리밍 차트에서의 정상을 이뤄냈다. 심지어 영어로 브브걸의 역주행 과정을 설명하는 댓글을 달아 해외로까지 인기 확장을 모색하는 등 능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팬덤의 강력한 결집력과 실행력은 먼 곳까지 공연을 위해 온 걸그룹에 대한 고마움과 이를 되갚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합쳐진 결과일 것이다. 다른 나라에 없는 징병제가 만들어낸 독특한 군대 문화, 그리고 그 시절에 대한 군인들의 추억이 브브걸 동영상의 폭발적인 인기를 가져온 요인이라 볼 수 있다.  

경쾌하고 따라 부르기 쉬운 후렴구, 가오리춤이나 의자춤과 같은 독특한 안무, 걸그룹 멤버들이 지닌 매력은 별다를 것이 없음에도 4년이 지나서야 시작된 질주는 무대 공연과 댓글의 절묘한 조화와 색다른 재미 요소를 찾아낸 생비자로서 유튜버의 능력에 크게 의존한다. 비디터를 비롯한 많은 유튜버들은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여 자막이나 CG의 삽입과 편집을 쉽게 하면서 기존 콘텐츠에 색다름을 가미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든다. 과거의 콘텐츠가 융합콘텐츠로 재탄생하는 것이며, 이때 유튜버들은 새로운 관점이나 흥미 요소를 더한다. 비디터가 재가공한 브브걸의 <롤린> 영상은 원래 브브걸이 보여줬던 섹시한 컨셉을 벗겨내고 귀여움과 경쾌함을 입었다. 브브걸의 뮤직비디오와 다른 무대 공연 영상에서 허리와 힙을 강조하던 의자춤과 가오리춤의 섹시함과, 멤버들의 몸을 아래에서 위로 훑는 카메라 시선은 비디터의 영상에서 삭제되었다. 오히려 밝은 미소와 귀여운 안무로 탈바꿈됐다. 섹시함을 벗고 귀여움을 장착하면서 비디터의 영상은 군인 팬덤을 넘어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동영상이자 댓글을 통한 놀이문화로 저변이 확대됐다. 브브걸의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성공은 새로운 매력 요소를 발견하고 부가해,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로 재가공한 유튜버의 노력이 일반인들에게 호응을 받은 결과인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k-팝의 세계에서 아이돌의 성공, 그것도 오랫동안 무명이었던 걸그룹의 성공은 확률이 극히 낮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여러 가지 요인들의 결합이 이룩해낸 이들의 역주행은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회 일반의 기대를 충족하면서, 여러 가지로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는 또 하나의 성공신화로 남을 것이다. 

필자: 김은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이화여대 언론학박사이며,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과젠더에 관심을 두고 다수의 영상문화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필자: 김은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이화여대 언론학박사이며,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과젠더에 관심을 두고 다수의 영상문화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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