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휴가 보내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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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마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무얼 하고 있는지? 아이가 “안녕히 주무세요”하고 밤인사를 할 때는? 지금 혹시 “텔레비전 보지 뭐 해”라고 대답하고 있는 건 아닌지? 휴일날에도 가족 모두가 소파에 누워 리모콘을 눌러대면서도, 텔레비전을 얼마나 혹사시키고 있으며 텔레비전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면, <크록텔레 가족>의 텔레비전 이야기에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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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록텔레 가족>의 작가 파트리샤 베르비는 튀니지 출신으로 세 아이의 엄마다. 지금 사는 곳은 프랑스라는데, 그곳 아이들도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봐서 문제인 건 마찬가지인 듯. 작가는 매우 유머러스한 발상으로 이 문제를 풀어본다. “과로에 지친 텔레비전을 휴가 보내자”는 것이다.

머리에 뿔이 달린, 마치 사슴이나 순록처럼 생긴 '크록텔레 가족'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텔레비전을 켜 놓는다. 아침 먹을 시간도 없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텔레비전은 첫 페이지에 등장하자마자 소리를 꽥 지른다.

“이제 제발 그만해! 나는 정말 지쳤다구!!” 그럼에도 그날 밤 '아빠'는 잠이 오지 않아 몇 시간이나 축구경기를 본다. 잔기침에 가래침까지 뱉던 텔레비전은 그만 기절해버린다. 거 참, 남의 집일이 아니다. 크록텔레 가족은 그제서야 텔레비전에게 선심을 쓴다. 딱 일주일간 별장으로 휴가를 보내준 것이다. 작가의 유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텔레비전 없는 집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지? 작가와 삽화가는 반복되는 문장과 그림으로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야자나무 아래 텔레비전이 즐겁게 지내는 페이지를 넘기면, 양 페이지에 모두 네 개의 소파와 액자가 그려져 있다. 소파에는 엄마, 아빠, 할아버지, 아이가 각기 다른 자세로 무료하게 뒹굴고 있다. 물론 다들 한손에는 아주 간절하게 리모콘을 쥐고서. 소파 오른쪽 벽에 걸린 액자는 말풍선 역할을 한다.

“월요일, 모두 지루해요.”

“화요일, 모두 지루해요.”

수요일, 목요일…. 다음 페이지로 넘기면, 차에서 내려 텔레비전에게 손을 흔드는 크록텔레 가족과 도망치고 있는 텔레비전이 보인다.

“안 돼, 이건 악몽이야. 벌써라니!!!”

웃음이 절로 나오면서도 왠지 씁쓸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클로디아 비엘린스키의 삽화는 페이지의 시각적 구성이나 색채가 화려하고 자극적이다. 텔레비전만큼 자극적일 수야 없겠지만 이쯤이면 화려한 그림책이나 만화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눈을 끌기에도 충분할 듯. 문장도 단순해 초등학교 1, 2학년이면 무난히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아이와 같이 읽기 위해선 결단이 필요하다. 텔레비전에게 휴가를 주고, 4일은커녕 하루만에 휴가를 반납시키지 않고도, 다른 재미있는 일을 찾아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

“사람들은 너희들이 텔레비전밖에 모른다고 말할 거야. 나말고도 재밌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텔레비전의 이런 일갈에 뜨끔했다면, 말 못 하는 텔레비전의 고충을 알아줄 사람은 역시 엄마뿐이다. 결단을 내렸다면, 텔레비전은 오랜만에 거실에서도 휴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파트리샤 베르비 글/ 클로디아 비엘린스키 그림/ 양진희 옮김/ 교학사

김은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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