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자의 K교육 클리닉] ‘미나리’는 나의 역사, 우리 모두의 이야기
[황은자의 K교육 클리닉] ‘미나리’는 나의 역사, 우리 모두의 이야기
  • 황은자(베로니카) H&C 교육컨설팅 대표
  • 승인 2021.03.14 21:44
  • 수정 2021-03-15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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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자의 K교육 클리닉]
평범한 모든 이의 이야기, 영화 ‘미나리’
영화 '미나리' ⓒⓒA24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미국 아칸소로 떠난 한국인 이민 가족의 삶을 그린다. ⓒA24

한국인 이민자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미나리’를 처음 본 소감은 유명세보다 너무 평범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이민사와 오버랩되었다. 내가 느낀 평범함은, 미나리가 곧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1998년 8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전격적인 결혼으로 가족을 떠나 미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남편이 유일했다. 낯선 땅에서의 신혼살림은 두렵지 않았다.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호기심 천국’에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 언제 어디서나 잘 살아가는 ‘적응의 천재’로 자부했던 나는 이번에도 자신 있었다. ‘나의 가정을 내 식대로 꾸리기’로 서원해 왔지만, 그 꿈이 태평양 건너 이국만리 샌프란시스코에서 재미교포 남편과의 결혼이야기로 시작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이민사가 시작된 23년 전 8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만난 그 쾌적한 바람을 잊을 수가 없다. 한국의 청명한 가을 같은 날씨였다. 단단한 각오로 모든 것을 새로 배워 잘 해내리라 다짐했지만 마음속 저편에서는 낯설고 어색한 이방인의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만혼의 이민생활 적응과 K-교육

미지의 땅을 개척하듯 미국에서의 생활은 새로운 세계에서 생존과 적응, 그리고 성장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만혼이었기 때문에 이웃들과 가족 생활 주기가 맞지 않았다. 신혼인 가족과 만나면 나이가 10살 이상 차이가 나거나 띠동갑이었고, 비슷한 나이의 가족과 만나면 결혼생활 연수가 달라 공통된 경험을 찾기가 어려웠다. 남편의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완전 이방인이어서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그들의 경험의 역사를 배우는 입장이었다. 성당에 나가봐도 역시 관계의 퍼즐에 끼어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관계에 끼어들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내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에 주력하고, 그 중심에서 외부와의 연계를 맺어가기로 했다. 내 세계를 스스로 이루게 되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비록 남편에게서 밥 짓기부터 배우면서 시작된 부엌살림이지만, 포기김치, 막김치, 총각김치, 동치미, 심지어 보쌈김치 등 다양한 김치를 시도하면서 나만의 김치와 나만의 ‘속성’ 잡채를 만들어 포트럭(potluck, 개별 준비 음식) 파티에 한 접시 내갈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한편, 아이들에게는 나만의 방식으로 한글, 천자문, 악기, 스포츠를 가르쳤고, 생활 전반에 걸쳐 한국의 정체성을 지닌 글로벌 리더의 비전을 가지고 교육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공유하며 상담도 해주고 있다. 그동안 나는 내 삶의 역사를 만들어냈고, 외부에서는 내 역사를 보고 함께하자고 다가왔다. 미국 사회 속에서 K-교육이 싹트기 시작했다.

'미나리'에서 한인 부부를 도우러 온 할머니 '순자' 역을 맡은 윤여정. ⓒ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속 할머니와 손자의 모습. ⓒ판씨네마

긍정 DNA로 위기극복, 주류사회에 뿌리내리기 

영화에서 모니카의 친정어머니 실수로 농장과 곳간이 불타버리는 대목은 내 집이 타는 것 같아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 막막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에게도 남편의 실직과 사업 실패로 경제적 나락에 떨어졌다가 어렵게 회복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생활의 어색함이나 불편함은 나의 긍정 DNA를 발휘해서 극복할 수 있었지만, 경제적 위기는 내 삶을  뿌리째 뒤흔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바르게 잘 성장하여 의젓한 성인이 됐다. 나 또한 도서관에서의 한국어 담당 코디네이터와 한국문화축제 주최 등 지역사회 자원봉사활동, 그리고 직장생활을 경험하면서 미국 주류사회 속의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영화 ‘미나리'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나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이야기’였다. 이민자라면 누구나 겪었을 미국살이 경험과 감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한 영화다. 돌이켜보면 이방인으로 겪었던 불안과 힘듦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소통할 때 문제가 풀리고 큰 위로가 됐던 것 같다. 

한국은 이제 아시아를 비롯해서 많은 세계인이 선호하는 글로벌 국가가 되었다. 불과 얼마 전에 이민자로서 겪었던 ‘소수자’의 아픔을 기억하면서 우리나라를 찾아온 새로운 이민자들을 좀 더 따뜻하게 품어주는 훈훈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황은자(베로니카)
황은자(베로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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