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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연출가▶

루마니아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루마니아가 배출한 연극인들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를 누비며 왕성하게 연출 작업을 하고 있는 안드레 세르반을 위시한 현역 연출가들, 그리고 20세기 부조리 연극을 대표할 수 있는 이오네스코 등 쟁쟁한 연극인들을 배출한 나라에 대한 연극인으로서 동경이 당연히 있을 수 있다.

더욱이 1997년 우리나라에 와서 공연한 루마니아 국립극단의 <페드라>와 금년에 서울아동공연예술축제에 와서 공연한 이온 크레앙가 극단의 <파랑새>를 감동 있게 본 연극인인 나에게 루마니아는 가 보고 싶은 나라였다. 그래서 지난 11월 1일부터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에서 개최되는 연극제에 초청되었을 때, 나는 거침없이 오케이를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연극제의 연극보다는 얼마 전까지도 지독한 독재자의 손아귀에서 살던 국민들이 어떻게 변했는가 알고 싶은 호기심이 더 컸다. 왜냐하면 연극은 이제 완전히 사양길에 접어들어 어디 가서 보나 구질구질한 몰골이어서, 루마니아라고 특별한 기대를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극을 보느니 차라리 길거리의 사람들을 보는 편이 더 흥미롭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한 데는 나름대로 배경이 있다. 연극에 대한 회의가 밑바닥에 깔려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금년에 공교롭게 사회주의였던 나라들과 아직도 사회주의인 나라를 다녔기 때문이다. 거기서 느낀 나 나름대로의 소감이 마지막 여행국 루마니아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금년에 내가 방문한 15개 나라 안에는 에스토니아, 체코, 중국, 러시아, 루마니아 등 사회주의와 관련이 있는 다섯 개의 나라가 있다.

그 나라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제도 자체보다는 그 제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어둡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하다. 특히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본 사람들이 가장 심했다. 그렇게 건물들이 아름다운 도시에 저렇게 멋없는 표정의 사람들이 살 수 있을까? 하도 궁금해서 잘 아는 러시아 여인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너희가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이 모양 아니니?”

대답은 의외였다. “러시아 사람들이 본래 수줍어서 그렇다. 이 사람들, 보드카 두 잔 먹으면 걷잡을 수 없다.” 사실 내가 루마니아에서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정치가 국민을 변화시키는가? 루마니아는 아니었다. 우선 사람들이 보다 친절하고 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이태리 종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민족이었다. 역시 정치보다는 피가 진한 모양이구나.

루마니아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33세의 재능 있는 여류연출가 안드레아다. 햇볕 쬐는 국립극장 앞 야외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신나게 한 10분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때 그녀는 갑자기 내 나이를 물었다. 한국 나이로 70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랐다.

또 내가 60이 훨씬 넘어 이혼을 했다는 말에 “당신은 완전한 자유인이군요. 그 자유가 부러워요”하더니 내 손을 덥석 잡고는 거침없이 내 입에 입을 맞추었다. 나보다 자유로운 이 여인은 분명 이태리 종족이었다. 그리고 이 화끈한 여인은 그곳에서 일주일동안 본 어느 연극보다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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