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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오시이 마모루, 일본, 애니메이션,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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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워쇼스키 형제, 미국, 영화, 199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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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권교정, 한국, 만화 2000)

드디어 <매트릭스3: 레볼루션>이 개봉했다. 전세계 동시개봉이라는 요란한 이벤트의 기운도 시들었고 이제는 좋다 싫다는 소리만이 와글거린다. 특히 여주인공 트리니티의 역할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그토록 쿨 하던 트리니티가 여기서는 네오 꽁무니만 쫓아다니다가 죽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실제로 <매트릭스>(1999)에서 트리니티는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즈)가 명함을 내밀기도 전에 등장해서 영화의 분위기를 잡아버렸다. 게다가 말 한 마디로 죽었던 네오를 멀쩡하게, 아니 업그레이드시켜 살려내기까지 한 바 있다.

그녀는 왜 벗고 다니나?

그러고 보니 트리니티를 비롯한 SF 속의 여성인물들은 이상하다. 그녀들은 모두 몸매가 쫙 드러나는 의상을 입는다. 온난화 때문에 미래의 지구는 더워지나? 남성인물들이 여전히 긴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아 그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핵전쟁 등의 이유로 햇빛도 안 비치는 우중충한 날씨다.

게다가 SF 속의 여성들은 언제나 자신의 몸을 기계 장치화하고 있다. 그녀 자체가 기계이거나(<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3>) 신체의 일부가 기계이거나(<공각기동대> <최종병기 그녀>) 자기 몸무게보다 훨씬 무거워 보이는 '총'을 들고 달려가거나(<에일리언>, <터미네이터2>) 적어도 컴퓨터 앞에 헤드셋이라도 뒤집어쓰고 앉아있다.

말하자면 SF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몸 때문에 대단히 에로틱해진다. SF의 에로틱한 신체는 출산과 육아가 통제됨으로써 가능해진다. SF 소설의 고전 <멋진 신세계>(A. 헉슬리, 1932)에서 인간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며 수정되는 그 순간 계급이 정해진다. 개성이나 인격 등이 아무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신세계에서 여성들은 육감적인 의상에 완벽한 피임(기계)장치를 몸에 지니고 다니며 성은 오직 쾌락을 위한 도구이다. 오히려 그녀 자체가 '섹스 머신'이 된다.

총을 든 여인

대상으로서 섹스 머신은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영화 <에일리언>(1979)에 이르러 변화하게 된다. 여전사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거대한 총을 들고 남근모양의 외계 괴물에 홀로 대항한 것이다.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존 SF 여성의 에로틱 이미지와 결합한다.

오버로울형 작업복을 입고 화염방사기를 발사하던 리플리는 '조끼런닝'을 입고 온몸이 땀으로 덮인 <터미네이터2>(1991)의 사라 코너(린다 헤밀턴)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실제로 <에4>(1997)에서 리플리는 <터2>의 사라 코너와 흡사하다). 이제 그녀들은 맨살을 드러낸 채 기계장치의 힘을 빌어 괴물로부터 아들을 구해내기에 바쁘다.

'에로틱한 여전사'는 이후 SF의 지배적 여성 이미지가 된다. 이러한 와중에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오시이 마모루 감독, 1995)는 이상한 여전사를 탄생시킨다. '소령'이라 불리는 구사나기는 뇌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기계로 된 사이보그다. 그녀는 기존의 어떤 SF 여성들보다 날렵하고 화려한 움직임을 구사해낸다. 이 때문에 그녀가 악당(기계)을 물리치는 모습은 마치 춤같다.

한편으로 그녀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그대로 베껴갔듯이) 액체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공급받으며 투명인간이 되기 위해 옷을 벗어던진다. 그녀의 벗은 몸은 영화 내내 관객을 뒤덮는다. 단단한 가슴과 완벽한 근육, 골격은 참으로 에로틱하지만 그녀는 성기가 '없다'. 성기를 밋밋한 살로 표현하는 이런 트릭은 각종 검열(국가기관의, 부모들의)을 피하기 위해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오랫동안 사용해 온 익숙한 장치임에도 이 영화에서는 상당히 이상해 보인다. 새삼스럽게 그녀가 '불임여성'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매트릭스3>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기존의 SF 여성 이미지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그녀들은 출산하지 않고 에로틱하며 화려한 액션을 구사하는 여전사들이다. <매3>에 등장하는 중요한 여성으로는 트리니티와 오라클, 지, 나이오베 등이다. 이 중 트리니티는 한참을 떠들다가 죽어버리고 예언자 오라클은 스미스에 흡수되며 지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그나마 나이오베가 네오를 동료로서 신임한 덕에 함선 운전의 귀재임이 밝혀진다. 어차피 <매트릭스> 시리즈의 모든 인물들이 그렇지만 그녀들 역시 네오를 위해 인고와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을 희생하게 하는 동인이 '사랑'이라는 점이다. 사랑이 그들을 비주체적 존재로 규정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SF의 변방, SF순정만화를 주목해보자. 동북아 만화의 특징인 순정만화(일본에선 소녀만화)는 여성에 의해 기획, 생산되고 수용되는 독특한 장르로 '남자만화'와 마찬가지로 SF, 공포물, 학원물, 스포츠물 등 다양한 하위장르를 거느리고 있다. 이 중에 SF 순정만화는 시미즈 레이코를 비롯하여 나름대로 확고한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사랑하면 안 되나요

우리나라에서는 강경옥, 황미나, 신일숙 등 중견작가들이 오랫동안 SF순정물을 창작해왔다. 이 중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은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2000, 대원)와 <새빨간 거짓말>(2003, 시공사)이다.

권교정의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에서 디오티마는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지혜로운 여성으로 횔더린의 소설 <휘페리온>에도 나온다. <…디오티마>에서 주인공은 윤회를 거듭하면서도 전생의 기억을 잊지 않는 '진화하는 영혼'이다. 그녀는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살아보았기 때문에 두 성의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두가지 특질을 여성적으로 통합하고 장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시영의 <새빨간 거짓말>은 세편의 SF 중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작품이다.

당신은 어떤 미래에 살고 싶은가?

외계인이 쳐들어오고 출산이 통제되며 사이보그와 공생하는 미래사회에서도 인물들에게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지구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을 성취하는 것은 주인공 여성의 노력에 의해서다.

SF 속의 여성은 섹스 머신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왔다. 미래는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미래를 예상하는 것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성이 상상하는 미래는 어떤 것인가? 당신은 어떤 미래에 살고 싶은가?

최예정 기자shoooong@womennews.co.kr

SF란?

Science fiction의 약자로 흔히 공상과학물로 번역된다. 현재의 과학기술을 토대로 미래사회를 상상하는 장르다. SF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소설에서 탄생했으며, 1920년대 이후에는 대중화되어 영화, 연극, 만화 등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잡았다.

SF가 판타지와 다른 점은 마법, 도술 대신 기계장치와 과학기술에 의해 현실에선 불가능한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외계인은 인류보다 나은 과학기술을 가진 존재로 설정되기 때문에 작품은 SF다. 초능력도 언젠가는 과학기술로 해명될 것으로 여기기에 SF의 영역이다. 그래서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는 판타지가 되고 <매트릭스>와 <터미네이터>는 SF가 된다.

SF란 현재로부터 미래를 상상한 결과물이다. 그것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욕망의 산물이며 동시에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이렇게 되고 말꺼야'라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의 원작소설을 쓴 필립 K. 딕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 주목받는다. 그의 작품은 현실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에 위대하다.

최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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