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취임 70일 맞은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여성학 박사1호’ 여성 전문가
일본군‘위안부’는 전쟁범죄…
아카이브·자료센터 활성화로
올바른 역사적 사실 알릴 것
여성정책은 지속가능한 발전
​​​​​​​이루기 위한 기반이자 견인차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홍수형 기자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정책이 우리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소통하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이 사진 촬영을 위해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 ⓒ홍수형 기자

“여성가족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달라.”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의 취임 후 70일은 이러한 목소리에 대한 응답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권력형 성폭력,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에서 여가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 속에 지난해 12월 29일 여가부 수장을 맡은 정 장관에게 거는 여성들의 기대는 컸다. 국내 여성학 박사 1호인 정 장관은 여성정책 자문위원과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비서관을 지낸 여성·가족 분야 전문가로, 정 장관은 3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정책이 우리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소통하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여성정책이 여성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오해와 편견을 깨려면 할 일이 많았다.

“지난 20년 동안 여가부는 업무 내용에 따라 부처 규모가 커지거나 줄었지만 성평등 사회 구현이라는 기본 가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가부 조직의 위상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성평등 주무부처로서 성별영향분석평가 등 성주류화를 위한 툴을 마련했고 국무총리 주재 양성평등위원회와 8개 부처 양성평등정책 전담부서 운영을 통해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려고 합니다.”

약자 곁에 서는 것이 여가부 역할

정 장관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박원순·오거돈 사건’을 “권력에 의한 성범죄 사건”으로 명명했고 ‘피해 호소인’ 호칭 논란에는 “피해자로 부르는 것이 옳다”고 답했다. 피해자 곁에 선 정 장관의 행보에 오랜만에 여가부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건강가정기본법 의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를 가치중립적 용어로 바꾸고 다양해진 가족 유형별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 개정도 추진한다.

“일각에선 “가족을 해체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갈등을 만든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은 이미 달라진 세상을 법이 뒤따라가는 것이에요. 당연히 가야할 사회변화이기에 여가부가 다양한 목소리도 끌어안고 선도적으로 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성평등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여가부의 과제이자 역할이지요.”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홍수형 기자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홍수형 기자

‘위안부연구소’ 위상 문제 종합 검토

박수만 받은 것은 아니다. 최근 여가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위안부’ 피해자가 ‘자발적 매춘부’였다고 주장한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논문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다는 지적이다.

“여가부는 피해자를 지원하고 대변하는 입장에서 그동안 피해자,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전달하는 일을 계속해 왔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이미 전쟁범죄라는 것이 명확합니다.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문제는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소를 위한 절차적 문제, 제소의 실효성 등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검토해 나가겠습니다. 올해 여가부는 아카이브·자료센터를 통해 위안부 관련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할 계획입니다.”

정 장관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의 구조적 문제 해결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2018년 8월 설립된 정부 산하 첫 위안부 문제 연구기관이지만 1년 단위 위탁사업으로 연구소가 유지돼 오고 있었다. 정 장관은 “정원 조정 과정 등을 거치며 연구소가 많이 위축돼 있었지만, 그동안 증언 자료를 모으고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을 하는 등의 역할을 해 왔다”며 “연구소 독립 등 기관 위상 문제는 피해자 추모 사업 등과 함께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3월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 식당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와 만나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념사업 추진방향 등 현안과 피해자 지원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여성가족부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3월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 식당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와 만나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념사업 추진방향 등 현안과 피해자 지원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여성가족부

AA 개선 통해 민간도 여성 대표성 확대

최근 여가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계획(2018~22년)의 3개년 성과를 보면, ’19년에는 중앙부처 과장급 공무원 중 여성비율이, ’20년에는 지방자치단체 과장급 공무원 중 여성비율이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지난해 말 중앙부처 4급 이상 과장급 공무원은 전체의 22.8%가 여성이며, 지자체 5급 이상 과장급 공무원은 20.8%가 여성이다. 국립대 교수 중 여성 비율(18.1%), 초중고교 교장과 교감 중 여성 비율(44.5%)도 2018년에 견줘 소폭 상승했다.

“2000년대 초반 청와대 균형인사 비서관을 할 때도 여성 공무원 수가 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여성 고위직 비율도 해결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공공부문의 성별 균형 인사는 적극적이고 의도적이며 구체적인 정책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중·하위직에 있는 사람이 누구나 고위직으로 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피라미드 구조에서는 누군가는 떨어지는데, 여성은 남성중심적 조직 문화 속에서 성별에 대한 선입견과 일·가정 양립이라는 핸디캡까지 얻게 됩니다. 예산이나 배치 등의 관리 없이 자연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정 장관은 공공부문의 가시적 성과를 민간부문까지 확산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성별균형 포용성장 파트너십’, 가족친화기업 인증제 등을 운영하고 있으나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법만으로는 한계도 있다. 여가부는 여성이 유독 적은 업종의 여성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함께 2006년 도입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ffirmative Action·AA)’에 그동안 적용받지 않던 300인~500인 미만 기업을 포함하고, 절대평가 요소를 도입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가족친화기업 인증제 개선 작업도 시작했다. 지난해 ‘위안부’ 피해자 폄하 광고로 비난 받은 ‘유니클로(에프알엘코리아)’가 여가부로부터 가족친화 기업으로 인증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가족친화기업 인증제에 대한 개선 요구가 잇따랐다. 정 장관은 “가족친화인증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전문간 간담회를 통해 인증기준 개선안을 마련했다”며 “3월 중 부처 의견을 듣고 행정예고를 거쳐 가족친화인증위원회에서 최종 심의‧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성 건강권·재생산권 보장해야

이외에도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하다. 지난해 말 형법상 ‘낙태죄’가 사라졌으나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안전한 임신중단을 위해 필요한 과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정 장관은 “여성의 건강권이나 재생산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 입법안이나 여러 의원님들의 입법안이 국회에서 함께 심사가 예정돼있는 만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조속히 조정되어 개정되기를 바랍니다. 입법공백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들의 건강과 안전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의료 및 사회·심리적 지원체계를 체계적으로 갖춰나가야 합니다. 허가받지 않은 낙태약이 진짜 약이 아닐 수도 있고, 의사의 도움 없이 복용하면 부작용 등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최근 식약처가 임신중단 의약품인 ‘미프진’에 대한 허가·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여가부도 관련 상황을 수시로 모니터링 할 계획입니다.”

현재 여가부는 가족상담전화(1644-6621)를 통해 임신·출산·갈등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복지부도 전국 보건소(256개소)에 위기갈등 상황의 임신·출산 상담매뉴얼을 배포해 상담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정 장관은 “의료인력 양성과 지원, 불합리한 법·제도 발굴·개선 등 재생산 관련 정책 과정에서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고 포괄적으로 보호·지원받을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적극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1955년생 △서울 진명여고 △이화여대 사회학과 △이화여대 사회학 석사 △이화여대 여성학 박사 △충청북도 여성정책관(1998~2002년) △대통령비서실 균형인사비서관(2003~2006년)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비서관(2007~2008년) △서울사이버대 부총장 △한국여성학회장 △한국여성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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