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웹툰으로 본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
무장투쟁 펼친 남자현·현계옥 열사
유관순과 옥고 치렀던 김향화·권애라 열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모델 윤희순 의사
웹툰으로 만나는 여성 독립운동가 8인까지

유관순 열사만 기리던 3·1절은 옛날얘기다.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에 맞섰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영화, 드라마, 웹툰 등 여성 독립운동가를 다룬 콘텐츠 5편을 통해 그 시절 ‘싸우는 여성들’의 삶과 이야기를 만나보자.

‘암살’의 전지현과 ‘밀정’의 한지민...무장투쟁 펼친 남자현·현계옥 열사

영화 '암살'의 스틸컷(왼쪽)과 '밀정' 스틸컷.  ⓒ(주)쇼박스, 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영화 '암살'의 스틸컷(왼쪽)과 '밀정' 스틸컷. ⓒ(주)쇼박스, 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여성 독립운동가 하면 영화 ‘암살’(2015)과 ‘밀정’(2016)을 빼놓을 수 없다.

배우 전지현이 열연한 ‘암살’ 속 저격수 ‘안옥윤’은 3.1운동에 참여하고 조선 총독의 암살을 기도하는 등 독립운동을 펼친 남자현 열사(1872~1933)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그는 3.1운동을 계기로 일본에 맞서기 위해 자녀들을 데리고 남만주 지역으로 망명해 무장 활동을 시작했다. 남만주 일대의 대표적인 항일무장단체인 서로군정서에서 권총을 들었던 남자현 열사는 ‘날아다니는 여성 장군’이라는 뜻의 ‘여비장(女飛將)’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맹활약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0대 후반이었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이 활약한 '안옥윤'의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은 남자현 열사(오른쪽)다. ⓒ(주)쇼박스, 국가보훈처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이 활약한 '안옥윤'의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은 남자현 열사(오른쪽)다. ⓒ(주)쇼박스, 국가보훈처

1925년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 제거를 목표로, 1933년 61세의 고령에도 무토 노부요시 전권대사 암살을 목표로 두 번 경성으로 떠났으나 동지의 발각이나 배신으로 인해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결국 독립의 날을 보지 못한 채 1933년 숨을 거두었다. 독립에 대한 열망을 담아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는 등 그의 항일 정신은 끝까지 투철했다. 1962년 여성 독립운동가 중 최고 훈격인 건국헌장 대통령장의 수훈자가 됐다. 

한편 영화 ‘밀정’의 노련한 밀정 ‘연계순’(배우 한지민)은 의열단원 최초의 여성 단원인 현계옥 열사(1897~?)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당대 최고의 기생 중 한 사람이던 그는 1919년 어느 날 경성을 떠나 상하이로 가 의열단원이 된다. 단장 김원봉으로부터 폭탄 제조술을 배우고 저격 훈련을 받으며 비밀공작원으로 활동하기 위해 준비했다. 

영화 '밀정'에서 배우 한지민이 연기한 연계순 역의 모델이 된 현계옥 열사(오른쪽). ⓒ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위키피디아
영화 '밀정'에서 배우 한지민이 연기한 연계순 역의 모델이 된 현계옥 열사(오른쪽). ⓒ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위키피디아

특히 현계옥 열사는 외국어 능력이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만주와 상하이를 오가며 폭탄을 운반하는 일을 자주 담당했다. 변장술에도 능해서 남성으로 위장해 폭탄 운반 임무를 완수해낸 업적이 당대 신문에도 기고됐다. 그러나 시베리아로 망명해 모스크바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행적이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지금까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영화 ‘항거’ 속 유관순과 여성들...김향화·권애라 열사

영화 '항거'(2019) 포스터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항거'(2019) 포스터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는 여성 독립운동가 여럿을 주축으로 한 영화다. 유관순 열사를 포함해 실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여럿 등장한다. 3.1 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이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이후 1년의 세월을 담은 영화에는 수원에서 기생 30여 명을 데리고 만세운동을 주도한 기생 김향화(김새벽),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김예은), 다방 직원이었던 이옥이(정하담) 등이 등장한다. 

영화 '항거'에서 배우 김새벽이 연기한 인물 '김향화' 열사(오른쪽).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조선미인보감
영화 '항거'에서 배우 김새벽이 연기한 인물 김향화 열사(오른쪽).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조선미인보감

배우 김새벽이 연기한 김향화 열사는 1919년 3월 29일, 수원 지역 만세 운동에 앞장선 수원 권번 일패기생이었다. 일제가 강요한 치욕스러운 위생 검사를 받으러 자혜의원으로 가던 기생들은 그를 선두로 일제에 항거해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당시 스물셋의 나이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고, 실제로 유관순 열사와 함께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항거'에서 배우 김예은이 연기한 권애라 독립운동가(오른쪽).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선거관리위원회
'항거'에서 배우 김예은이 연기한 권애라 열사(오른쪽).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선거관리위원회

배우 김예은이 연기한 권애라 열사는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2년 선배로, 1919년 2월 26일 기숙사에서 어윤희에게 독립선언서 80매를 전해주어 주요 인사에게 배포한 뒤 3월 3일 경기도 개성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일제의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한 뒤 1920년부터는 여성들의 애국 사상 고취를 위한 강연 개최를 시도했다. 1922년 1월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 인민대표회의에 한민족 여성 대표로 참가하고, 이후에는 상하이를 중심으로 중국 각지에서 항일 운동을 전개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42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관동군에 체포돼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수감됐지만, 1945년 8월 광복과 함께 석방되며 귀국했다. 1973년 별세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미스터 션샤인’ 고애신...항일 의병운동 앞장선 윤희순 의사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한 고애신(김태리 분)의 모델이 된 윤희순 의사(오른쪽). ⓒtvN, 국가보훈처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한 고애신(김태리 분)의 모델이 된 윤희순 의사(오른쪽). ⓒtvN, 국가보훈처

독립운동가들의 시초가 된 의병들의 항일 활동을 그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핵심 인물은 배우 김태리가 맡은 ‘고애신’이다. 사대부 출신으로 의병 활동에 투신한 고애신은 드라마 후반부에는 만주에서 의병을 조직해 가르치며 의병 활동의 주축이 된다.

실제 주인공은 윤희순 의사(1860~1935)다. 사대부 출신으로,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남녀가 유별해도 나라 없이는 아무 소용없다”며 의병을 자처한 인물이다. 여성 30여 명으로 구성된 의병을 조직해 의병훈련, 정보수집, 의병가 제작 등으로 의병 활동에 이바지한 최초의 여성 의병 지도자로 알려졌다. 경술국치로 국운이 기울자 만주로 이주해 조선독립단을 조직해 군사훈련을 하며 항일운동가 양성에 전력을 다했다. 국내 의병활동 15년,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운동에 25년을 바친 윤희순 의사는 맏아들 유돈상이 경찰에 체포돼 고문 끝에 순국하자 『해주 윤씨 일생록』을 남긴 후 곡기를 끊었다. 1935년 8월 1일 76세의 나이로 만주에서 타계했다.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됐다. 

권기옥부터 허은까지...웹툰으로 만나는 여성 독립운동가 8인

웹툰 콘텐츠를 통해서도 여성 독립운동가를 만나볼 수 있다. 2019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해 성남시가 문화콘텐츠 창작지원사업으로 펼친 ‘독립운동가 웹툰 프로젝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그린 『풀』로 프랑스 휴머니티 만화상을 수상한 김금숙 작가를 비롯한 40여 명의 중견·신진작가가 참여해 독립운동가 33인의 삶을 만화로 담아냈다. 여성 독립운동가 권기옥, 김마리아, 김알렉산드라, 안경신, 윤희순, 정정화, 황애덕, 허은 등 총 8명도 포함됐다. 다음웹툰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 http://webtoon.daum.net/event/view/5225)

'독립운동가 웹툰 프로젝트'에서 조명된 여성 독립운동가 8인. 왼쪽 위부터 차례로 권기옥, 김마리아, 김알렉산드라, 안경신, 윤희순, 정정화, 황애덕, 허은 열사. ⓒ다음웹툰
'독립운동가 웹툰 프로젝트'에서 조명된 여성 독립운동가 8인. 왼쪽 위부터 차례로 권기옥, 김마리아, 김알렉산드라, 안경신, 윤희순, 정정화, 황애덕, 허은 열사. ⓒ다음웹툰

이중 권기옥 열사(1901~1988)는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인물이다. 숭의여학교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해 군자금 모금에 동참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또 1917년 미국인 아트 스미스의 평양 곡예비행을 구경한 뒤로 비행사의 꿈을 키웠고, 1925년 중국 윈난 항공학교를 졸업하며 비행 자격을 취득한 후 중국 공군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활약했다. 권기옥 열사는 광복 후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공군 창설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임정의 안주인’이라 불렸던 독립운동가 정정화 선생(1846~1922)은 독립운동에 참여한 시아버지 김가진과 남편 김의환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해 26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책임지는 가운데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목숨을 걸고 여러 차례 압록강을 건너 국내에 잠입하기도 했다. 

회고록 '장강일기'(가운데)를 남긴 정정화 열사(왼쪽), 정 열사의 이야기를 토대로 제작된 연극 '달의 목소리' 포스터(오른쪽).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알라딘 도서정보, 극단 독립극장
회고록 『장강일기』(가운데)를 남긴 정정화 열사(왼쪽), 정 열사의 이야기를 토대로 제작된 연극 '달의 목소리' 포스터(오른쪽).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알라딘 도서정보, 극단 독립극장

정정화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2019년 연극 ‘달의 목소리’에서도 조명된 바 있다. 정정화 열사는 회고록 『장강일기』를 남기기도 했는데, 배우 원영애는 1998년 이 기록을 읽은 뒤 연극으로 정정화를 알리는 데 투신해오고 있다. 

이 밖에도 영화 ‘박열’에서 배우 최희서가 열연한 가네코 후미코(1903~1926)가 있다. 조선의 독립운동에 참여한 일본인 여성으로 2018년 독립유공자로 포상됐다.

3.1운동을 비롯한 대일항쟁의 역사에는 여성 선열의 족적이 남지 않은 곳이 없다.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조명되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앞으로 어떤 콘텐츠를 통해 다뤄질지 관심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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