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 가옥 ‘딜쿠샤’, 전시관 됐다
3·1운동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 가옥 ‘딜쿠샤’, 전시관 됐다
  • 최현지 기자
  • 승인 2021.02.26 14:41
  • 수정 2021-02-26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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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세계에 알린 AP 통신원 앨버트 W. 테일러 가옥 복원
역사전시관 조성해 3월1일 시민 개방
한국 생활상·언론 활동 등 6개 전시실 구성
'딜쿠샤 전시관' 개관 포스터 ⓒ서울시
'딜쿠샤 전시관' 개관 포스터 ⓒ서울시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의 현장과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인물 앨버트 W.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 1875~1948)의 가옥 ‘딜쿠샤’가 역사 전시관으로 재탄생한다.

서울시는 딜쿠샤의 원형을 복원, 역사 전시관으로 조성해 오는 3월1일 시민들에게 개방한다고 25일 밝혔다. 

테일러는 일제강점기 미국 연합통신(Associated Press)의 임시특파원으로 활동했다.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세브란스 병원 침상에 숨겨져 있던 독립선언서 사본을 발견해 숨겨 뒀다가 일제의 눈을 피해 해외에 가장 먼저 타진했다. 

딜쿠샤는 테일러가 1923년 한국에 거주할 당시 종로구 행촌동에 건립한 서양식 가옥이다. 2017년 8월 국가등록문화재 제687호로 지정됐다. 딜쿠샤는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로, 테일러의 아내 메리 L. 테일러(Mary Linley Taylor)가 붙인 이름이다. 

서울시는 딜쿠샤의 원형 복원을 위해 2016년 관계기관인 기획재정부·문화재청·종로구와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2017년부터 고증 연구를 거쳐 2018년 복원 공사 착수, 지난해 12월 ‘딜쿠샤 전시관’으로 공사를 완료했다. 1942년 테일러가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돼 가옥이 방치된 지 약 80년 만에 개방된다.

전시관은 테일러 부부 거주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내부 1~2층 거실과 6개의 전시실로 구성됐다. 거실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 꾸려진 전시실에는 테일러 가족의 한국에서의 생활상과 테일러의 언론 활동 등이 조명된다.

'딜쿠샤 전시관' 전경과 거실을 재현한 모습 ⓒ서울시
'딜쿠샤 전시관' 전경과 거실을 재현한 모습 ⓒ서울시

개관식은 26일 오후 4시 딜쿠샤 앞마당에서 열린다. 이 자리에는 딜쿠샤 유물 기증자이자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인 제니퍼 L. 테일러가 참석해 함께 개관을 축하할 예정이다. 그는 “딜쿠샤를 복원해 전시관으로 개관한 서울시에 감사드린다”라며 “이번 개관으로 한국의 독립투쟁에 동참한 서양인 독립유공자가 재조명받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딜쿠샤의 복원은 단순히 가옥의 복원을 넘어서 근대 건축물의 복원이자 항일 민족정신의 복원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라며 “희망이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값지게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관은 매주 화~일요일 9시~18시까지 운영된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한 해설 관람 방식(1일 4회·1회당 관람 가능 인원 20명)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사전 관람 예약은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웹사이트(yeyak.seoul.go.kr)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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