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이 선물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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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는 자물쇠가 달린 서랍이 있고, 열쇠로 서랍을 열면 상자들이 있다. 상자 속에는 또 다른 상자가 있고 그 속에는 보물이 들어 있다. 종이학이 든 작은 병, 한 짝만 남은 머리방울, 뽑기로 생긴 플라스틱 반지 등. 어른이 되어 열어본 보물 상자란 시시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예닐곱 살에는 더 시시한 것도 상자 속에 넣곤 했다. 그 시시한 것을 포장지로 싸서 좋아하던 친구에게 선물하던 그 설레임…. 그런데 내 보물 1호가 뭐였지? 당신도 생각해 보시기를. 나는 얼른 기억나지 않는데, 벌써 기억난 사람은 어쩜 그림책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악동이> 얘기하는 거 아냐? 아니다. 하긴 주인공이 이희재의 악독한 캐릭터, 우리가 사랑한 그 녀석과 꽤나 닮긴 했다. 표지를 보자. 빡빡머리 녀석이 공룡을 끌고 어디선가 돌아오고 있다. 한쪽 눈이 팅팅 부은 채 코피를 흘리며, 비장한 분위기마저 풍긴다. 어디 갔다 오는 거지? 저 공룡이 그럼 티노?

그렇다. 책장을 열면 녀석은 불쑥 “안녕, 내 이름은 영수야. 그리고 얘는 내 보물 1호 티노야”라며 삐뚤빼뚤한 글씨로 소개를 한다. 조금 당혹스럽지만, 동화책에서는 왕왕 있는 일이 아니던가? 영수는 '악동이'와 전혀 다르다. 훨씬 어리고 아직 단순하다. 왼쪽 페이지, '그림이'를 떠올리기만 해도 볼이 빨개지는 영수. 오른쪽 페이지, 영수가 상상하는 '그림이'의 모습. 그림이는 까만 단발머리에 몹시 큰 분홍 리본을 맸다.

“얜 우리반 그림이야. 나는 그림이를 무척 좋아해. 그런데 그림이는…. 어떻게 하면 그림이가 날 좋아할까?”

영수는 역시 비극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왜, 엄마들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할까?

“엄마, 친구한테 어떤 선물을 하면 그 친구가 날 좋아해요?”

역시 어려운 질문이다.

“음… 영수가 가장 좋아하는 걸 주면 되지.”

영수는 그 말을 믿고 티노를 그림이에게 선물한다. 물론 영수는 쓰라림을 겪은 후, 보물을 선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역시 아이들 질문에 대답하는 건 어렵고도 책임감을 요하는 일이다. 내가 만일 영수 엄마라면, 음….

글도 적고 문장도 쉽다. 출판사가 권장하는 연령은 2, 3세. 이성에게 호기심이 생긴, 글을 갓 배운 아이들이 흥미로워할 듯하다. 다만 매끈하고 화려한 삽화가 아니라, 또래가 낙서한 듯한 그림을 좋아할지는 자못 궁금하다. 다 색칠하기 귀찮다는 듯, 엄마 파마머리는 검정색 크레파스 선으로 마구 굴려 놓았고, 아예 연필 선으로만 그리고 만 데도 있다. 아이와 아버지의 합작품쯤으로 생각했더니 그림 그리고 글쓴 이는 웬걸,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한 이다. 이름은 김'영수'. 김영수는 아마 보물상자에 자기 보물뿐 아니라 친구들의 시시콜콜한 보물까지도 담아놓은 사람일 것이다. 보물이 선물이 되기까지, 내 보물에 대한 희생 못지않게 너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단 걸, 쓰라린 순간을 겪고 스스로 깨우친 이일 것이다. 그리고 보물 상자에 쓰라림 같은 것도 담아 놓고 꺼내 보는 사람일 것이다.

김영수 글·그림/ 비룡소/ 2003

김은선 객원기자 barya@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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