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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① 아이들에게 어떤 만화를 읽히나

추억의 만화가게

③ 내게 힘을 주는 만화

④ 새로운 만화가 오고 있다

“설마 여태까지 한번도 만화 안 읽어봤어요?”

당신이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은 받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지루하고, 폐쇄적이고 불쌍해 보인다는 뜻이다. 그것은 “여태까지 한 번도 좋아하는 사람과 손잡아보지 못했어요?”라는 질문과 같다. 왜냐하면 만화책을 읽는다는 것은 아주 아름답고도 행복하고도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무리 부정할지라도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만화와 접한 적이 있다. 만화란 '그림과 글이 결합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이므로 선거 포스터도 '일종의' 만화다. 커다란 얼굴 위에 “진짜로 열심히 할게요, 칵칵 밀어주세요”와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당신은 포스터들을 보고 어떤 놈을 찍을까 고민한다. 그것들, 글과 그림이 한꺼번에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만화가 아니니 무효라고 우기더라도, 오늘 아침 당신은 심심한 지하철에서 옆자리 아저씨의 스포츠신문 만화를 훔쳐보았다. 무엇보다도 그 옛날 동네 만화방에서 책받침 조각 쿠폰을 받아 읽던 순정만화들, 풍선껌에 끼워 팔던 진짜로 껌딱지만한 만화책들….

이제 당신은 순순히 “한때는 만화에 미친 적이 있었노라”고 고백한다. 멀리 가지도 말고 이십 년 전으로 날아가보자.

1980년대 만화광이던 당신은 주로 일본 만화들이나 적어도 일본만화를 베낀 해적판에 '씌여' 있었다. 당시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캔디캔디>와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올훼스의 창>과 <유리가면> 등이 있겠다.

당신은 이 만화들 덕분에 허무맹랑하면서도 다양한 각종 상식들을 접하게 되었다.

안소니 때문에 낙마하면 무조건 죽는 줄 알았고(캔디), 오스칼 덕분에 프랑스 혁명의 불길에 휩싸였으며(베르사이유), 교실 창문을 내다보며 유리우스 같은 운명적 사랑에 빠지길 기도했고(올훼스), 자기가 틀림없는 오유경 같은 천재소녀라고 믿어마지 않았다(유리가면).

그러나 당신은 이 만화들에 숨은 사회전복의 징후를 알아챘는가? 오스칼이 자신이 여성임을 자각하고 사랑을 받아들이는 순간은 혁명의 도가니 속에서였으며 유리우스의 연인 크라우스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다가 정학당한다.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이유…>와 <올훼스…>은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의 영향을 적잖이 받은 작품이다.

우회해서 표현한 것이기는 하나 현재의 사회제도를 뒤엎고 모두가 평등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인물들은 이후 한국 순정만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대한 소개는 다음 호로 넘긴다.

근래 위에 언급한 작품들이 애장판 형태로 새로이 번역 출판되고 있다. 2001년에 <베르사이유…>와 <올훼스…>가 외전을 포함하여 각각 12권, 19권으로 출간되었고(대원), 이가라시 유미코의 <캔디…>도 5권으로 나와 있다(하이북스).

미우치 스즈에의 <유리가면>은 1976년부터 일본에서 연재를 시작했으나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고로 오늘도 고달픈 연기수련을 계속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지난해부터 사전 두께의 애장판이 14권까지 나와 있다(대원).

최예정 기자shoooo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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