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옥·김혜자·나문희·윤여정·김수미·박원숙·고두심·김해숙 등 종횡무진
세월·열정이 만든 내공, 엄마·할머니 넘어 주체적· 능동적 롤모델 제시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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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0여배우 전성시대다. 김영옥(84)부터 김혜자(80), 나문희(80), 윤여정(74), 박원숙(72), 김수미(72), 고두심(70), 김해숙(66) 등. 주·조연을 따질 게 없다. 어떤 역할이든 이들이 나오면 작품은 살아서 움직인다. 이들의 수십년 연기 내공은 젊은 배우들의 불안한 발연기도, 다소 엉성한 대본이나 구성도 모두 감싸 안는다.

뛰어난 실력에도 주말극 조연에 한정돼 있던 이들이 나이의 굴레를 떨치고 영화와 드라마, 예능프로그램으로 활동범위를 넓히면서 6080여배우 시대를 열고 있다. 장르 불문하고 어머니나 할머니가 아닌 주체적· 능동적 여성으로 활약하는가 하면, 조연이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장노년 여성의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한다.

김영옥 김혜자 나문희 씨 80대 현역으로 맹활약

김영옥(84)  씨는 존재 자체로 경이롭다. 1937년생. 우리 나이로 여든넷이다. 1960년 CBS성우로 데뷔, 연예인 경력 62년차인 그의 카랑카랑하고 힘찬 목소리는 지금도 여전히 TV주말극을 휘어잡고 있다. 올해 방송될 ‘지리산’까지 출연드라마는 수를 셀 수 없고, ‘놀러와’ ‘옥탑방의 문제아들’ 등 예능 프로그램도 거뜬히 소화한다.

김혜자(80) 씨와  나문희(80) 씨 역시 명불허전. 김혜자 씨는  68세 때인 2009년 영화 ‘마더’에서 아들을 위해 못할 게 없는 무서운 엄마로 국민엄마의 틀을 깨더니, ‘디어 마이 프렌즈’(2016) ‘눈이 부시게’(2019)로 자연스러운 연기의 대가임을 입증했다. 나문희 씨는  1960년 연극배우로 시작한 61년차 배우. 거침없이 하이킥‘ 등 드라마의 엄마나 할머니 전담이던 그는 70세 넘어 찍은 영화 ‘수상한 그녀’(2014)와 ‘아이캔스피크’(2017) 주연으로 흥행보증수표가 됐다. 지난해엔 ‘오! 문희’ 로 우리나이 팔십에 액션연기에 도전하는 열정을 과시했다.

영화 '미나리'로 인생 절정기를 맞은 윤여정(74) 씨는 1966년 TBC 3기 공채탤런트로 데뷔했다. 1974년 결혼으로 은퇴했다가 1987년 SBS ‘사랑과 야망’으로 복귀한 뒤 34년 간 잠시도 안쉬었다. 우리 나이 70세에 ‘계춘할망’ ‘죽여주는 여자’를 찍더니 올해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 24관왕에 올랐다. 2017~18년 tvN ‘윤식당’으로 예능프로그램에 도전한 뒤 지난 1월 초부터 외국인 대상 게스트하우스인 ‘윤스테이’ 주인장으로 활약하면서 영어 실력까지 뽐내고 있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 ⓒ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스틸컷 ⓒ판씨네마㈜

윤여정 김수미 박원숙 씨, 영화 예능 오가며 존재감 입증

동갑인 김수미(72) 씨와 박원숙(72) 씨는 영화와 드라마, 예능을 모두 접수한 경우. 전원일기(1980~2002)의 일용엄니와 ‘가문의영광4’ ‘마파도’시리즈 등 영화 주인공으로 유명해졌다. 2020년 예능프로그램인 tvN ‘수미네 반찬’에 이어 지난 2월 18일부터 ‘수미산장’에서 요리솜씨와 입담을 자랑한다.

박원숙 씨는 1970년 MBC 2기 공채 출신. MBC ‘한지붕세가족’(1986~94) 순돌 어머니역으로 알려진 그는 2017년 '중장년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1인 가구의 노후 문제를 다루는 관찰예능프로그램 ‘박원숙의 같이삽시다’(KBS1)을 맡아 시즌 3까지 이어가고 있다.

고두심(70)  씨와 김해숙(66) 씨는 각기 MBC 5기와 7기 공채 출신으로 드라마와 영화 모두에서 맹활약 중이다. 고두심 씨는 1976년 ‘정화’에서 김만덕을 연기했고 ‘전원일기’(1980-2002년)로 국민엄마라는 애칭을 얻었다. 드라마 ‘계룡선녀전’(2018, tvN) ‘동백꽃 필 무렵’(2019 KBS2). 영화 '엑시트'(2019) 등 쉼 없이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는 그는 2020년 영화 ‘빛나는 순간’에서 주연인 제주 최고의 해녀 진옥 역을 맡아 열연했다.

김해숙 씨는 천의 얼굴로 순박한 어머니부터 뒤틀린 어머니(MBC '하얀 거짓말‘)까지 두루 소화하는가 하면, 영화 ‘도둑들’(2012) ‘암살’(2015)에서 드라마 속 어머니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선보였다. 그는 2020년에도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TV조선 ‘스타트업’ 등 여러 드라마에 출연, 60대 여배우의 열정을 불살랐다.

이들 외에도 박정수(68) 씨는  2019년 할리우드 도전기를 담은 ‘할리우드에서 아침' (tvN)으로 리얼리티 예능에 도전하고, 예수정(66) 씨는  지난해 8월 개봉한 '69세'에서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도 ‘그 나이에 무슨’  소리를 듣는 주인공 효정 역을 맡아 나이든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리얼하게 드러냈다.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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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수명 83세, '디어 마이 프렌즈'로 장노년 배우 주인공 시대 개막 

40대만 돼도 뒷방신세가 되던 여배우들이 장노년에도 이처럼 맹활약할 수 있는 요인은 여러 가지로 풀이된다. 수명 연장도 그 중 한 가지. 2010년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이 80세(여성 83.6세, 남성 76.8세)를 넘으면서 가요계에선 5060 가수들이 부른 ‘내 나이가 어때서’(오승근, 2012), ‘백세인생’(이애란, 2015), 아모르파티(김연자, 2013)가 잇따라 대박을 쳤다.

방송계도 달라졌다. 2013년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당시 6070 남자배우를 내세운 tvN ‘꽃보다 할배’가 히트하면서 시즌을 이어가더니 2016년 김영옥· 김혜자 ·박원숙· 윤여정· 고두심 등 6070 여성배우를 앞세운 ‘디어 마이 프렌즈’(tvN)가 등장했다. 이들 장노년 배우들이 주연, 고현정 조인성이 조연이었다. 나이 든 여자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 돌연변이같은 드라마는 8%가 넘는 시청률을 얻으며 한국방송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 6070 으로 시작한 흐름은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6080시대로 이어졌다.

채널의 다양화가 불러온 새로운 장르와 내용 발굴, 시청자 및 영화관객의 연령 다양화도 6080배우 시대를 불러온 요인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상이 부각되면서 전세대의 경험을 아우르는 장노년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이게 됐다는 해석도 있다.

출생의 비밀과 가족 간 아귀같은 다툼, 복수와 배신이 아닌 보통사람들의 애환과 삶의 여정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나이든 배우들의 설 자리를 확대했다고 본다. 방송계에서 일하는 김모(39)씨는 “장노년 배우들의 능력과 가능성 힘을 몰랐거나 일부러 배제한 건 아니었던 듯해요. 그저 그들을 전면배치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던 것같아요.”

6080시대는 뭔가 뜨면 천편일률적으로 모방하는 데서 벗어나 독자적인 콘텐츠, 과거에 다루지 않았던 주제나 소재에 주목할 때 블루오션이 열린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2019년 한국인의 평균기대수명은 83.3세. 남성도 80세를 넘었다. 김형석 교수는 ‘100세를 살아보니’에서 인생 황금기는 75세 전후고, 노력하면 80대 후반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6080여배우들의 활약이 나이의 압력으로 힘들어 하는 이 땅의 장노년 여성에게  삶의 의욕과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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