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인권침해 예방수칙 만드는 학생들
성소수자·비건 학우들 목소리 전하고
학교 주변 채식지도 만들어 배포도
국회에선 대학 인권센터 의무화 추진

여성신문/Freepik

코로나 1년, 그간 대학가는 각종 디지털 성폭력으로 몸살을 겪었다. 지난해 한국외대 모 교수가 온라인 강의 중 음란물을 화면에 노출했다가 강의에서 배제됐다. 계원예대 모 교수는 비대면 강의 중 막말과 성희롱을 해 논란이 일었다. 부산 모 대학에서는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터졌다.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타)에서 악플에 시달리던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도 발생했다.

2021년 새 학기를 맞이하는 대학가 곳곳에서는 디지털 성폭력이나 인권 침해를 막고 평등한 대학 문화를 만들어나가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온라인 강의 캡처해 외모 평가·성희롱, 범죄입니다"
대학생들, 직접 인권침해 예방 수칙 만들어

경희대 총학생회에서는 지난해 ‘비대면 수업 주의사항’을 만들어 배포했다. ⓒ경희대 총학생회

경희대 총학생회는 지난해 “화상 강의에서 성희롱을 당했다”는 학생들의 불만이 빗발치자 ‘비대면 수업 주의사항’을 만들어 배포했다. 온라인 화상 강의 시 교수나 타 수강생이 나온 화면을 캡처해 온라인에 게시·유포하거나 외모 평가·비하·성희롱을 하는 일은 현행법상 범죄며, 추후 학내 규정에 따라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경고를 포함했다. 

남우석 경희대 총학생회장은 “신학기를 앞두고 학교 측을 통해 교수·강사들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그분들은 첫 수업 오리엔테이션(OT) 때 수강생들과 공유해 디지털 성폭력을 예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도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이나 화상 수업 시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다. △허락 없이 상대방 화면 캡처하지 않기 △평등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주체로서 온라인상에서 차별하지 않기 △소수자에게 혐오표현 하지 않기 등 내용이 포함됐다. 

원정 유니브페미 집행위원장은 “앞으로 학내 성폭력·위계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총학생회뿐 아니라 학교 차원의 노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대학 인권센터에 더 큰 권한을 부여하고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인권과 성평등 관련 필수 교양 과목을 개설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우리 학교 성소수자·비건을 소개합니다

계원예대 총학생회는 학생 인권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 차원에서 교내 다양한 학생들을 인터뷰한 ‘계원의 방방곡곡 인권연대기’ 6회 시리즈를 SNS에 연재하기도 했다. ⓒ계원예대 총학생회

계원예대 총학생회는 지난해 ‘학생소수자권리위원회’(권리위)를 만들었다. 학생 인권과 복지 전반을 위한 특별기구로, 총학생회 집행부원 2명~3명과 일반 학생 10명~11명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4월에는 신입생 온라인 OT에서 인권 교육을 별도로 실시했다. 학생 인권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 차원에서 학내 성소수자, 비건 등 다양한 학생들을 인터뷰한 ‘계원의 방방곡곡 인권연대기’ 6회 시리즈를 SNS에서 연재하기도 했다. 

이강선(21) 계원예대 부총학생회장은 “교수의 막말과 성희롱 재발 방지를 위해 총학생회가 사건 조사와 녹취록·대자보 작성 등 대응에 나섰다”며 “예술대학은 개인주의적인 분위기일 거라는 선입견도 있지만, 여성 비율이 높고 성소수자 학우들도 많아서 소수자 인권 사안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라고 밝혔다.

학내 채식주의자·무슬림 위해 채식 지도 배포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2020년 4월부터 학내 식이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학교 부근 채식 가능 식당과 카페 등을 정리한 ‘이문동 채식 지도’를 제작, 배포하고 있다. ⓒ한국외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캡처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2020년 4월부터 학내 식이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학교 부근 채식 가능 식당과 카페 등을 정리한 ‘이문동 채식 지도’를 제작, 배포하고 있다. ⓒ한국외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캡처

채식주의자, 무슬림 등을 고려해 캠퍼스 부근 채식 가능 식당과 카페 등 정보를 찾아 안내하는 학생들도 이다.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2020년 4월부터 학교 부근 채식 음식점 등을 정리해 ‘이문동 채식 지도’를 제작, 배포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캠퍼스 상권 내 식당 10곳, 술집 5곳, 카페 16곳을 비롯하여 총 31곳을 조사해 정리했다. 지도 사업 담당자는 “앞으로도 종교, 신념, 건강 등의 이유로 특정 식품을 먹지 못하는 학내 식이소수자 모두의 식품 선택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대학 인권센터 의무화 추진...디지털 성폭력 예방교육 강화

모든 대학에 인권센터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법적 기구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대학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법안’이 19일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했다.

인권센터는 학내 인권교육을 하고,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해 학교에 개선 또는 시정을 권고하는 기구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학내 인권보호 대상이 학생뿐 아니라 교수와 교직원 등 전 구성원으로 확대된다. 성희롱·성폭력 문제 외에도 부당 노동 강요 감시 등 인권 보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학 미투’에서도 확인되듯이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인권침해는 대학공동체에서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이 법을 통해 대학이 모든 구성원의 인권, 특히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도 비대면 시대 디지털 성폭력 증가에 걸맞은 폭력예방교육 콘텐츠를 마련하고 있다. 비대면 수업 시 화면 캡처 등 여러 대학 구성원들이 호소한 문제도 디지털 성폭력 사례로 다뤄 경각심을 높일 방침이다. 조민경 여가부 권익기반과 사무관은 “올해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 콘텐츠를 마련하고 앞으로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에서는 비대면 시대 디지털 성폭력 증가에 걸맞은 폭력예방교육 콘텐츠를 마련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