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공약 뜯어보니]
시장 성폭력이 촉발한 선거
진상규명·성폭력근절 공약 뒷전
‘젠더 선거’ 구호는 공허
‘성평등 서울’ 실현 위한 공약
후보자의 선택 아닌 필수 요건

서울시장 보궐선거 주요 출마자들. ⓒ여성신문
서울시장 보궐선거 주요 출마자들. ⓒ여성신문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전임시장의 성폭력으로 치르는 선거라는 점에서 ‘성평등’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그러나 출마자들이 앞 다퉈 내놓은 공약에는 ‘성평등 서울’을 실현할 구체적 공약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두 달도 남지 않는 선거에서 여야 불문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꺼내든 카드는 주택공급 이다. 집값 폭등에 대한 반감 여론을 부동산 공약으로 반전시키겠다는 취지다. 쏟아지는 주택공급과 현금성 복지 지원 공약 속에서 정작 중요한 성평등 관련 공약은 뒷전이다. 출사표를 낸 후보들이 왜 이번 보궐선거가 열리는지조차 잊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주요 후보 가운데 아직 성평등 공약을 발표하지 않거나 공약은 냈지만 적극적인 이행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보궐선거 출마자들은 전임시장 성폭력 사건의 근본적 원인을 되짚고 성범죄 혐의로 끝난 시정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구체적인 비전을 유권자들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력형 성범죄 재발 방지에 초점
“인권위 판단 존중” “박원순 계승”

보궐선거의 원인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문제인 만큼 ‘젠더 선거’로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선거가 다가올수록 젠더 선거 구호는 공허해지고 있다.

여야 예비후보들은 내놓은 성평등 관련 공약 가운데 공통적인 것은 성폭력 예방과 재발 방지공약이다. 다만 야당 소속 예비후보들이 여성단체를 찾고 정책간담회를 통해 ‘여성 공약’이라는 제목으로 청사진을 적극 공개하는 반면, 여당 예비후보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만 공약을 알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영선 예비후보는 일요시사 인터뷰에서 “위력에 의한 성비위에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적용하겠다”고 밝혔고, 같은 당 우상호 예비후보도 주간동아 인터뷰에서 “양성평등위원회가 성범죄에 관해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고 ‘성범죄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예비후보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단과 간담회를 가진 뒤 서울시청 앞에서 여성 공약을 발표했다. 성폭력 근절 공약으로는 ‘고위공직자 전담 성범죄 신고센터’ 설치, ‘성범죄자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실시, 서울시·시 산하기관 성범죄자 신상공개를 약속했다. 같은 당 오신환 예비후보는 박원순 사건 관련 진상규명위원회 설치, 외부기간과 성비위 사건 위탁 조사를 제시했다. 조은희 예비후보는 서초구가 시행 중인 ‘미투직통센터’를 확대 설치해 성범죄를 근절하겠다고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예비후보도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정책간담회를 열어 여성 공약을 발표했다. 서울시인권센터 설치,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을 제시했다.

‘박원순 전 시장 성희롱 맞다’는 국가인권위원회 발표에 대해서는 여야 예비후보들은 “인권위 판단을 존중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박원순 사건’에 침묵했던 여권 후보들은 인권위 발표 이후에야 입장을 냈다. 박영선 후보는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상처받은 분에게 사과해야 할 방법이 있으면 할 수 있는 만큼 다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상호 후보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인권위 결과를 존중하고 재발 방지 권고 조치를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 후보는 페이스북에 유족을 위로하며 “박원순이 롤 모델”이라고 밝혀 2차 가해 논란이 일었다.

‘여성 안전’ 공약 넘어
성평등 실현 공약 나와야

출마자들이 내놓는 성평등 관련 공약은 대부분 ‘여성 안전’에 집중돼 있다. 나경원 후보는 서울 여성안전주택 인증제, 여성 주거안심환경 세이프 우먼(Safe Women)을 내놨고 오세훈 후보는 여성 1인 가구 안전을 위한 구역별 경비원 지원, CCTV 확대 설치, 자치경잘체와 연계한 전담경찰체 도입 등을 제시했다. 안철수 후보는 인공지능형 폐쇄회로(CC)TV 확대 및 신상 공개 성범죄자 위치 근접 알림 기능 갖춘 SOS 앱 도입 등을 강조했다.

여당 후보들은 여성 고위직 발탁을 약속했다. 우상호 후보는 서울시 간부급 인사에 여성 인사를 발탁하겠다고 말했고, 박영선 후보는 자산 2조원 이상 주권상장법인의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별로 구성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야당 후보들도 여성 고위직 진출에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나경원 후보는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성 시장이 되면 여성 고위직은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고 했고, 조은희 후보도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유권자들이 성평등 관련 공약보다 부동산 정책에 더 관심을 갖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평등 공약이 묻힌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 여성단체 활동가는 “과거에는 선거 관련 여론조사에 성평등 관련 항목이 없었으나 이번 선거에선 목록에 올랐다는 점만으로도 과거 선거와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실제로 한국일보·한국리서치 여론조사(4~6일 실시)에서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해 가장 관심이 가는 이슈’에 대한 질문에 ‘부동산·주거정책’을 꼽은 응답자는 49.7%에 달했다. 이어 ‘일자리 정책’(11.0%), ‘복지 정책’(10.5%), ‘코로나19에 대한 대응’(10.1%) 등으로 조사됐다. ‘기후·환경 정책’ 3.5%, ‘교육 정책’ 3.1%, ‘교통 정책’ 1.7% 순이었다. ‘권력형 성폭력 방지 방안’을 선택한 답변자는 4.7%였다. 응답자 성별을 보면 남성 3.4%, 여성 6.0%로 여성이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관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서울이 글로벌 차원에서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서 새로운 비전을 갖추려면 신임 시장은 변화에 발맞춘 전환적인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이 성평등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듯 새로운 리더십은 성평등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슨 부통령은 선거 기간 “정책 이슈 중 젠더에 집중하고, 주요 정책 결정에서 젠더적 시각을 견지하겠다”고 약속하고, 취임하자마자 젠더정책위원회를 설치해 “미국을 성평등 국가로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출마자들은 정치공학적 표계산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리더십으로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며 “성평등 비전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제시하는지가 출마자가 대전환 시대의 서울을 이끌 리더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왜 이번 보궐선거를 치르는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문제는 바로 잡히고 있는지,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떤 환경이 필요한지 살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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