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2월 6일 현대 비구니교육의 요람 ‘봉녕사 비구니승가대학’을 건립한 묘엄스님의 영결식. ⓒ여성신문·뉴시스
지난 2011년 12월 6일 현대 비구니교육의 요람 ‘봉녕사 비구니승가대학’을 건립한 묘엄스님의 영결식. ⓒ여성신문·뉴시스

 

올해는 불교가 탄생한 지 2565년이 되는 해다. 일부 불교 경전에서는 ‘여성들이 출가하면 불법(佛法)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혹은 ‘만일 여성들이 출가하지 않는다면 불법이 오백년은 더 존속할 것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불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전파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니, 얼마나 여성 출가를 반대했으면 이런 말까지 나왔을까 싶다. 당시 인도사회에서 여자라면 결혼해서 아들을 낳는 것만이 존재를 인정받는 길이었고, 그나마 남편이 먼저 사망하면 남편을 화장하던 불에 뛰어들어 함께 죽어야만 했다. 그런 사회에서, 여자가 결혼도 하지 않고 집을 나와 걸식을 하면서 나무 아래에 앉아서 명상 수행을 하는 모습은 당시 사람들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양모가 여성 출가를 간청하자
부처가 지키라고 한 ‘팔경계’

불교 교단이 형성되던 초기에는 삼귀의(부처님, 그의 가르침, 승단에 귀의함)와 오계(다섯 가지 계율)를 지킬 것을 부처님 앞에서 다짐하면 출가가 허락됐다. 하지만 교단이 점차 확대되면서 계율이 늘어나자, 남성 출가자는 구족계를 수지해야 비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비구승단이 성립된 후 부처님의 양모였던 마하파자파티가 여성 출가를 간청했는데, 부처님은 이를 세 번이나 거절하셨다. 이 난망한 이슈를 고민하시다가, 결국 부처님은 여덟 가지 계율(팔경계·八敬戒)을 수지케 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비구니승단이 성립됐다.

하지만 이 팔경계가 오늘날 교단 내 주요 젠더 이슈가 되고 있다. 그 항목들이 비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조하면서 오늘날까지 비구니(여성 출가자)를 규율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100세 비구니라 할지라도 방금 계를 받은 비구를 공경하고 받들어 섬겨야 한다거나, 반드시 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거나, 비구니는 비구를 비판하면 안 된다는 항목도 있다. 비구와 비구니는 교육과정, 수행방식, 그리고 포교활동도 차이가 없는데, 단지 비구니라서 비구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그동안 가르쳐왔던 인간평등사상에도 맞지 않다.

그런데 왜 부처님께서 이러한 계율을 제정하셨을까? 이는 당시 여성 출가를 반대하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했다거나, 숲에서의 생활이 동물 공격이나 성범죄 위험 때문에 비구승가 옆에서 보호를 받기 위함이라거나, 최초의 팔경계의 항목들이 후대에 가부장적으로 오염되거나 잘못 전해지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2500여년 전과 비교할 때 오늘날 비구니들의 수행 환경은 너무나도 변했기 때문에, 대만불교에서는 팔경계 폐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불교는 여전히 팔경계를 고수하기에, 그 결과 “감히 비구니가…”라며 출가자들 사이에서도 비구니 차별은 당연시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팔경계 따라 비구와 비구니 관계
동료 아닌 주종 관계로 변질

모든 이원성의 세계에서 남과 여, 어른과 아이, 비구와 비구니가 나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관계가 주종관계로 변질됐다면 이는 재고해야 한다. 팔경계로 인해 비구니는 종단의 지도자가 될 수 없으며, 비구의 잘못을 지적할 수 없으며, 비구의 부당한 처벌이라도 순응할 것을 강요당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높은 교육 수준과 적극적인 활동으로 대학교수나 단체 대표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비구니스님들 조차도 팔경계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한다.

일부 진보적인 비구스님들은 팔경계가 오늘날의 교단 현실에 맞지 않다거나 계율 정신을 무시한 잘못된 적용이므로, 이를 사문화해야 함을 주장하면서 비구니스님이나 재가불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팔경계를 재해석해야 한다는 동일한 주장을 한 비구니스님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교단의 질서를 어지럽혔다거나 비구승가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승가대학 교수 자격이 취소되거나, 계율을 위반한 위험인물로 낙인찍혀 비구니승가에서조차 배제되기도 했다.

부처님께서는 법계의 성품이 본래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다고 가르치셨다. 작금의 시대는 치안이 잘 돼있으며, 건물이 없는 숲이 아닌 사찰에서 수행을 한다. 오직 교법에 의지해 사성제와 팔정도를 가슴에 새기고 온전한 향상심으로 수행만 하며 살아가기에도 부족한 찰나지간이다. 죽음을 맞이한 어느 순간 어찌해야 홀연히 청정한 의식만을 유지한 채 한 생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과제들을 해결하기에도 벅찬 시간들이다. 그러니 팔경계가 붓다의 법맥을 이어나가는데 장애가 된다면 과감하게 재정립하거나, 출가자 스스로 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전체 출가자는 매년 100명을 턱걸이 한다. 게다가 여성 출가자의 수는 남성 출가자에 비하여 감소의 폭이 큰 것으로 집계된다. 현대사회는 1인 1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이며,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단체 활동이 금지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수행문화의 풍토마저도 변화가 요청되는 때이다. 2500년전에 재정된 계율이 오늘날에 이르러 불평등을 야기한다면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또한 탈종교화 현상이 가속화되는 이 시점에 제도권 안에서 개정안들을 흔쾌히 받아들여서 출가 수행자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동시에, 다음 세대에 진실한 법을 전승할 준비가 돼야 할 것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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