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W초대석] 만능 연예인 윤복희 씨
데뷔 70주년 기념 공연 ‘하모니’, 18일부터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1관서
다섯살 때 첫 무대, ‘피터팬’ ‘빠담빠담빠담’ 등 뮤지컬만 80편 훨씬 넘어
1960년대 미니스커트 돌풍, ‘웃는 얼굴 다정해도’ ‘여러분’ 등 명곡 수두룩
성대도 쉬지 않고 훈련해야 튼튼, 즉석에서 ‘찔레꽃’ ‘왜 돌아보오’ 불러

윤복희 배우 ⓒ홍수형 기자
윤복희 배우 ⓒ홍수형 기자

전설이다. 다섯살 꼬마로 뮤지컬 크리스마스 선물에 출연한 이래 70년째 현역이다. 쉬엄쉬엄 하거나 공백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지난해 코로나19 덕에 생전 처음 열 달 쉬었다고 했다. <데뷔 70주년 기념 뮤지컬 하모니’> 연습에 한창인 가수 겸 배우 윤복희 씨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그는 그동안 가요·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종횡무진했다. 본업을 묻자 연예인'이라는 답이 돌아 왔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연습하던 차림 그대로 하는 인터뷰. 그에겐 지명도와 나이가 만들기 쉬운, 사람을 슬쩍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없었다. 뭐든 스스럼 없이 솔직하게 답하고 노래하고 웃었다.

“‘하모니2017년에 처음 시작했어요. 미국에 있는데 최무열 대표가 전화로 연락해서 같이하자면서 내가 부를 노래라며  찔레꽃'을 들려 줬어요.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했지요.” ‘한 소절만'이라는 청에 그는 즉석에서 반주도 없이 두 소절을 불렀다. 절절했다. 노래가 아니라 감동으로 다가왔다. 70년 현역의 내공이다.

윤복희 배우 ⓒ홍수형 기자
윤복희 배우 ⓒ홍수형 기자

콘서트보다 교감할 수 있는 뮤지컬이 좋아, ‘하모니는 머리에 쥐나 포기할 뻔

콘서트보다 뮤지컬이 좋아요. 콘서트는 혼자 하지만 뮤지컬은 같이 하잖아요. 주고 받는 동안 서로 교감이 생겨요. ‘하모니공연 내내 출연해야 하는데다 내가 해본 적 없는 합창을 해야 해서 힘들었어요. 처음엔 머리에서 쥐가 나서 그만둘까 싶었는데 오기가 나서 도전했어요. 그래서인지 유독 애정이 가는 작품이에요. 2017년 초연부터 지방 공연까지 모두 함께했어요.”

하모니에서 맡은 역은 남편과 내연녀를 살해한 죄로 사형을 선고 받은 전 음대 교수로 합창단을 이끌고 가는 김문옥. 코로나19가 물러가면 원작의 배경인 청주교도소에서 공연하고, 미국과 동남아 등 해외로 무대를 넓히고 싶다고. ‘여성수감자 합창단이라는 소재 자체가 독특한데다 곡과 앙상블도 뛰어난 만큼 K-뮤지컬의 새 길을 열 수 있다고 믿는다.

건강 비결? 없어요. 환갑 지나니 나잇살은 좀 생겼는데 목은 괜찮아요. 지난해 쉬어서 그런지 연습 시작할 때 소리가 잘 안 나와서 아니' 싶었는데 조금 지나니 괜찮더라구요. 성대 근육도 꾸준히 사용하고 훈련해야 제 기능을 하나 봐요.”

윤복희 씨의 삶은 문자 그대로 대서사시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충청남도 보령에서 2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윤부길)는 쇼단 단장, 어머니는 안무가였다. 가수 겸 작곡가로 활약하던 윤항기 목사가 오빠다. 다섯살 때 아버지가 만든 뮤지컬 크리스마스 선물'로 데뷔했고, 9살 때부터 미군부대에서 팝송을 불렀다.

윤복희 배우 ⓒ홍수형 기자
윤복희 배우 ⓒ홍수형 기자

10대 때 루이 암스트롱에 발탁돼, ‘피터팬' 20년, '왜 돌아보오' 작사 작곡도

자신의 노래를 기막히게 부르는 어린 소녀에게 반한 당대의 가수 루이 암스트롱의 초청으로 도미, 10대에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세계 무대에 섰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활동하던 중 1967년 초 귀국해 첫음반 웃는 얼굴 다정해도'로 온국민의 귀를 사로잡았다. 귀국 당시 입었다고 난리가 났던 미니스커트 사진은 나중에 찍은 신세계백화점 광고 화보 중 하나였다고. 어쨌거나 그는 한국에 미니스커트 돌풍을 불러온 장본인이었다.

두 번의 결혼은 짧게 끝났지만 가수이자 배우로서의 삶은 더 길어졌다. 1979여러분으로 제13회 서울국제가요제 대상, 81년엔 나는 당신을로 하와이국제가요제 대상을 받았다. 가수로 활동하는 한편, 76년부터 40년 이상 빠담빠담빠담’, ‘피터팬’ ‘마리아마리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사운드오브뮤직’ ‘레미제라블90편 가까운 뮤지컬 무대를 누볐다.

“‘1979년 '피터팬'을 시작할 때  행복했어요. 20년동안 했더니 페이스북 친구 대부분이 피터팬관객이에요가요든 뮤지컬이든 가사에 의미를 많이 두는 편이에요. 어느 곡이나 다 좋아하지만 마리아마리아'의 소경 역이 부르는 본다는 것은'하모니에 나오는 찔레꽃’  등에 마음이 끌려요.”

트롯은 부르기 어렵다고 했다. “말이 쉽지 뽕짝은 힘들어요. 꺾기도 쉽지 않구요내가 가요보다 뮤지컬과 가스펠에 열중하니 주위에서 그러지 말고 트롯을 불러 보라는 거에요. 하도 조르길래 만든 곡이 1984년에 내놓은 왜 돌아보오'에요. ‘여러분은 내가 영어로 먼저 가사를 지은 뒤 오빠가 작곡하고 번역했어요.”

윤복희 배우 ⓒ홍수형 기자
윤복희 배우 ⓒ홍수형 기자

너무 이른 결혼은 후회, 나를 인정해주고 필요로 하는 이들 위해 혼신 기울여

열심히 산 만큼 아쉬운 일은 거의 없지만 너무 일찍 결혼했던 건 후회한다고 했다아무 것도 모르고 결혼했었다는 것. 그래서 그런지 서른셋 이후로 결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혼자가 편했어요. 집에 가면 신발을 휙 벗어던질 수도 있고. 연애는 했지요. 사귀다 헤어져도 친구로 남았구요. 14살 때부터 지금껏 친구인 사람도 있어요. 내가 편한가 봐요. 스키나 수영을 함께 하고 얘기도 나눌 수 있으니까요.”

나이에 아랑곳없이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연기면 연기까지 죄다 잘하는 만능 연예인 윤복희 씨. 그는 70년 현역의 비결로 나를 캐스팅해주고, 무대 위의 나를 보러 와주는 관객이 있어서라고 털어 놓는다. “나를 인정해주고 필요로 하는 사람만큼 소중한 이들이 없잖아요. 그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어요. 그랬더니 내편이 생기더라구요. 언제나 나를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내 편이요.”

그가 씩씩한 현역일 수 있는 비결의 또 한가지는 건강이다. “김치찌개와 떡국을 좋아해요. 여태껏 체해 본 적이 없어요. 스트레스도 안 받는 편이에요. 다섯 살 때부터 어른사회에 뛰어 들었는데 무슨 일인들 안보고 안 겪었겠어요. 일찍이 종교에 귀의한 영향도 있겠구요. 골치 아픈 일이 있어도 부딪쳐야 하는 건가 보다, 어차피 동반해야 하는 일인가 보다 생각해요.”

언젠가 제주도 바닷가에 살아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 문제가 생기면 자신부터 돌아본다는 달관적 태도, 주연 아닌 조연이니 오래 할 수 있다는 편한 마음가짐. 만능 연예인 윤복희 씨의 데뷔 80주년 기념 공연'을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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