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송다영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
일 중심 프레임 벗어나
일=돌봄으로 바뀌어야
서울시, 시설별로 13가지였던
돌봄 종사자 임금체계 단일화

송다영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 ⓒ홍수형 기자
송다영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 ⓒ홍수형 기자

 

코로나 시대의 위기는 ‘여성의 위기’다. 경기침체로 사라지는 일자리 중 상당수가 여성 집중 일자리였고, 공적 돌봄 시스템이 멈추자 여성은 ‘독박 돌봄’에 허덕여야 했다. 해외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를 ‘시세션(Shecession)’이라고 부른다. 여성(She)과 경기침체(recession)를 합친 신조어로 코로나19 고용한파의 타격이 여성에게 집중됐다는 의미다. IMF 외환위기 때 여성 실업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지 못하는 현상을 여성노동자에 대한 ‘조용한 학살’로 명명하던 때를 떠오르게 한다. 돌봄은 공동체가 생존하고 재생산하는 데 꼭 있어야 하는 ‘필수노동’이다. 코로나 위기는 ‘돌봄이 멈추면 사회가 멈춘다’는 현실을 체감하고 돌봄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계기였다. 

송다영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돌봄은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조건이자, 사회 유지의 동력이지만 정치적 의제에서 배제됐다”며 시민의 의무로서 모두 돌봄에 참여하는 ‘돌봄 민주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가 돌볼 것인가’ ‘돌봄 책임은 어떻게 평등하게 나눌 것인가’, ‘돌봄에 대한 대가는 어떻게 매길 것인가’ 같은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송 실장은 30년간 강단에서 여성·보육·돌봄 분야를 연구한 사회정책 전문가로 지난해 3월부터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려져 있던 우리 사회 돌봄 현실이 드러났다.

“코로나는 모든 사람에게 위기다. 그런데 사회적 취약계층에게는 위기가 절벽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문제다. 공교육이 비대면으로 전환하면서 경제적 환경에 따라 교육격차가 커졌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고용 격차도 커졌다. 돌봄 영역도 마찬가지다. ‘K자 양극화’가 심화되며 한 계층은 발전하는데 다른 계층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단순히 경제적 문제도 있지만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사라지면서 심리적인 문제도 커지고 있다.

-사회적 돌봄 시스템이 중단되면서 가족, 특히 여성에게 돌봄 책임이 전가됐다.

“사회가 변하는 것 같아도 돌봄은 당연히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초등학생이 집에서 비대면 교육을 받으려면 반드시 주변의 지원이 필요하다.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는  현실이다. ‘누가 돌보느냐’는 정치적 이슈지만, 논의조차 없이 당연히 여성, 엄마가 돌봄을 책임져야 한다고 여긴다. 지난해 ‘온라인 개학은 엄마 개학’이라는 제목의 언론보도들이 이런 잠재된 가부장적인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서울시가 해당 언론사에 제목 정정을 요청했을 때 대부분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며 제목을 수정하기도 했다. 코로나를 거치며 돌봄의 중요성을 확인한 만큼 이제는 누가 돌볼 것인가, 돌봄 책임은 어떻게 평등하게 나눌 것인가, 돌봄의 대가는 어떻게 매길 것인가와 같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야 한다. 바로 돌봄민주화다. 돌봄의 총량을 따져보면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성별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가와 가족, 사회가 함께 공정하게 돌봄의 책임과 권리를 나눠 갖자는 얘기다.”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코로나 팬데믹과 자녀 돌봄의 변화’ 보고서. 사진=한국노동연구원 ‘노동리뷰’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코로나 팬데믹과 자녀 돌봄의 변화’ 보고서. 사진=한국노동연구원 ‘노동리뷰’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노동연구원 ‘노동리뷰’ 11월호에 실은 ‘코로나 팬데믹과 자녀 돌봄의 변화’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이후 전업주부의 자녀 돌봄 시간은 12시간38분으로 코로나19 이전(평균 9시간6분)보다 3시간30분 늘어났다고 밝혔다. 맞벌이 부부 중 여성의 무급 자녀 돌봄 시간도 코로나19 이전 5시간3분보다 1시간 44분보다 늘어난 6시간47분이었다. 맞벌이 부부 중 남성은 코로나19 이전 3시간 9분에서 3시간 54분으로 45분 늘었고, 홑벌이 남성의 경우 3시간1분에서 3시간30분으로 29분 늘어나는 데 그쳤다. 

송다영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 ⓒ홍수형 기자
송다영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 ⓒ홍수형 기자

 

-돌봄의 공공성을 높이면 돌봄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돌봄은 최소화해도 된다고 생각해왔다. 육아휴직을 하려는 남성에게 앞에선 ‘당신 최고야’라고 치켜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일은 중요한 것으로 여기면서,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돌봄은 누군가가, 특히 여성이 대신 해줄 것으로 생각하는 ‘일 중심’ 프레임이다. 그동안 국가는 이렇게 얘기했다. ‘당신은 일하라. 낳기만 하면 사회가 키워주겠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선거 구호에 사람들이 열광하자, 한쪽에선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돈은 어디서 나느냐’고 말했다. 전형적인 일 중심 프레임이다. 일을 삶의 중심에 두고 돌봄은 주변부에 두면서 돌봄을 마치 일이 잘 돌아가는데 장애 요소쯤으로 생각한다. 가정에서 돌봄을 책임지던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고 당연히 커리어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일과 돌봄이 각각 하나의 삶의 축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프레임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고 일을 하려면 반드시 돌봄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면 아이, 부모를 돌보고 반려동물과 자기자신과 타인도 돌봐야 한다. 우리는 노동 없이는 살아도 돌봄 없인 못 산다. 일과 돌봄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각각 50대 50으로 삶을 구성한다.”

-돌봄 제공자 처우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돌봄 종사자 처우 개선은 좋은 돌봄의 기본이다(caring for carers). 돌봄 종사자 처우가 정규성과 항상성을 갖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돌봄을 민간에 맡기다 보니 처우가 열악했다. 돌봄 종사자 처우 개선은 공공 부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시설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복지시설에 단일임금체계를 적용했다. 시설 간 임금 격차를 줄여 종사자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그동안은 시설별로 13가지 서로 다른 임금체계가 적용돼 왔다. 완벽하진 않지만 기준 이상을 맞추기 위해 애를 쓰고 있고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례 개정을 통해 제도를 명문화 했기에 단일임금체계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제도가 중요하다. 물론 제도만으로는 충분치 않지만 제도가 없으면 변화도 더딜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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