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젠더사 연구회가 펴낸 <신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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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으로 죽을 것인가

'조선 여자'로 살아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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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로 가자. 나를 죽인 것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에 가서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공인 나는 미래로 나가자.”

영원한 신여성 나혜석은 이혼을 한 후 이런 시를 썼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도 죽음조차 자유로울 것 같았던 파리가 아니라 자기를 '탕녀'라 했던 조선에서, 마지막 흔적조차 아는 이 없이 생을 마감했다.

나혜석은 왜 파리에서 죽고 싶었을까? 당시 지식인 남성들은 그런 그를 두고 “서구 부르주아의 생활에 침 흘리는 탕녀”라 매도했지만, 파리는 나혜석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자유로움을 담고 있는 '세계'였을 것이다.

이미 세계를 경험하고 세계와 관계 맺기 시작했던 여자들, 그러나 그 여자들이 경험했던 세계를 용납하지 않았던 조선, 해방된 신여성으로 죽을 것인가,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조선 여자'로 살아남을 것인가, 그 선택이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면 믿어지는지.

나혜석과 김일엽, 윤심덕 같은 신여성들의 삶이 내 것인 양 여겨져 그 과감한 발언에 환호하면서도 활짝 피지 못한 삶에 가슴 시려한 지 여러 해 지났다. 그 동안 나혜석기념사업회가 만들어져 신여성들의 삶을 새롭게 조망하는 노력을 하고 있고 나혜석의 삶을 연극 무대에 올리는 작업도 있었다.

이제는 자유연애나 이혼 스캔들로 범벅이 된 탕녀 이미지로 신여성을 바라보는 유치찬란한 시각은 자취를 감추었고, 제법 많은 여성들이 신여성과 만나면서 페미니스트의 계보를 다시금 그려보는 듯해 반갑다.

식민지 조선에서 근대를 맞았던 여성들의 경험에 대한 학술적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어 그 성과가 <신여성>(청년사)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다.

한국과 일본의 학자 여덟 명이 '한일 젠더사 연구회'를 꾸려 연구 활동을 해왔던 결과물이다.

이 책은 조선 사회에서 근대 교육의 수혜를 받은 여성들의 욕망과 자기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조명했던 이전의 신여성 연구 성과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식민국과 식민지였던 한일 양국에서 세계적 추세로서 등장한'새로운 여자들'을 비교 분석하는 글들은 흥미롭다.

문옥표 교수가 밝히고 있듯 “한국의 신여성 현상과 운동의 전개 과정에 대한 일본 페미니즘의 영향 및 상호 교류에 대한 분석은 식민 지배의 문화적 함의를 규명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해방 후 한국 페미니즘의 탈식민적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과제”이고 이는 신여성이 경험한 '세계'와 그 관계 맺음의 급진성을 역사적으로 맥락화하는 데 중요한 작업이라 여겨진다.

사실 일본 유학 시절 여성해방론을 만나고, 여자 유학생들의 공동체에서 그 사상을 공감하고 발언했던 신여성들의 사유는, 세계 질서에 이제 막 편입되고 있었던 조선 사회에 발 딛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이라는 주체의 존재 양식를 문제삼았던, 여성 해방의 물결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더구나 일본을 통해 식민지적 근대를 경험한 조선 여성들의 처지에서는 히라츠카 라이초우와 <청탑> 회원 같은 일본 여성해방론자들과 만나서 받은 영향이 컸을 것이다.

우리의 식민지 경험은, 일본의 영향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학술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주저하게 만들었지만, 이 책에 실린 세밀한 연구들은 '한국여성'을 만들어내는 민족주의/식민지 담론의 권력 관계 속에서 신여성들이 욕망한 것의 경계가 어떻게 구성되어왔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들이 신여성과 젠더, 민족, 계급, 식민지성의 관계에 대해 서로 다르게 주장하는 것을 비교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다. (신여성의 삶을 좀더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최혜실 지음, 생각의나무, 2000과 <인간으로 살고 싶다 : 영원한 신여성 나혜석> 이상경 지음, 한길사, 2000도 읽어보길.)

세계와 근대를 경험하고 그것을 성찰할 지식을 가졌던 신여성 나혜석이 “나를 죽인 것은 파리이고 나를 여성으로 만든 것도 파리”라고 썼던 것은, 이미 맛본 지식의 해방감을 잊고 '현모양처'로 살라던 조선의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이 아니고 무엇이었을까.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정조를 비판하면서 자유연애를 실천하고, 어머니나 아내라는 정체성이 아니라 신성한 인간으로 살고 싶은 욕구를 드러냈던 신여성들, 세계를 경험한 그들이 '조선 여성'을 구성해내는 권력들과 어떻게 갈등하고 타협했는지는, 현재적 '여성' 계보를 탐색하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성찰이 아닐 수 없다.

정박미경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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