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넘고 질문 건너 월출산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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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살 민선이가 혼자 여기저기 헤매고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열아홉 살 때 대입수능시험을 치른 날부터다. 무명의 희곡 작가 민선이는 요즘 각 기관의 창작 희곡 공모전에 자신의 작품을 들이밀고 있다. 내년 한 해 동안 세계 여행을 할 계획인데, 당선금을 여행 자금으로 삼겠다는 깜찍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민선이가 '맛있는 혼자 여행 우여곡절'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편집자주>

스물한 살, 천황사

어디서 자나? 잘 곳이 제일 문제다. 1999년 여름 오후 6시쯤, 나는 영암 월출산 아래서 고민하고 있다. 여관에서 혼자 자는 건 썩 내키지 않고 돈도 없다. '절'에서 자기로 맘을 먹었다. 월출산 어귀에 '천황사'란 절이 있다. 천황사…. 높은 석탑에 으리으리한 대웅전이 상상된다.

따라 한참을 왔건만 절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양봉장이 있다. 서른 개쯤 되는 벌통과 작은 움막이 보인다. 일단 움막으로 갔다. 할아버지 한 분이 문을 열고 내다본다. “천황사가 어디예요?” “여기여.” 잠시 아찔했다. 이 작은 양봉장이 천황사? 설마…. 여긴 절 뒤채쯤 되겠지. “할아버지, 대웅전은 어디예요?” “여기여, 왜?” “스님은 안 계세요?” “내가 주지여.”

이 할아버지, 늙은 주지 스님은 줄곧 기침을 하고 방바닥에는 코 푼 휴지가 굴러다니고 있다. 천황사는 달랑 방 하나 있는 작은 절이다. 내가 여기서 자고 가려면 할배 주지와 동침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래도 설마 해서 “스님, 제가… 혼자 여행하고 있는데… 절에서 잘 수 있을까 싶어서 왔는데….” “나이는 몇이나 먹었어?” “스물 하나요.” 스님은 고개를 들어 나를 살핀다. “요즘은 여관에서 하룻밤 자는 데 얼마나 하나? 절에 돈이 통 안 들어와서….” 설마 이 찌그러진 절에 하룻밤 재워 주면서 돈을 받겠다는 건가? “한 만 원 하면 자나? 절에 돈이 안 들어와서….” 스님은 시주함을 내 앞으로 놓는다. 살짝 화가 난다. “내려가서 여관 알아보겠습니다.” 나는 급하게 인사하고 나왔다.

한참 가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맨발로 쫓아왔다. “학생, 학생! 왜 그냥 가? 산 어귀 낙원장에 가봐, 팔천 원에 해준대. 받아.” 스님이 천 원짜리 여덟 장을 내민다. 부끄럽다. 미안하다. 내 주머니 속에 숨어 있는 3만 원이 부끄럽고 스님을 장사치로 오해한 것이 미안하다.

할배 주지를 장사치로 오해

스님이 아직도 맨발로 땅에 서 계시길래 덥석 돈을 받았다. 나는 “다음에 꼭 갚겠습니다” 소리치고 산을 뛰쳐 내려왔다.

행운의 신령님 스님을 만나 낙원장에 왔지만 낙원장의 밤은 무섭다. 화장실과 샤워실 때문이다. 남녀 공용 화장실, 푸르스름한 비닐 포장으로 대충 가려진 샤워실. 더러운 이불은 어떤가? 얼굴을 베개에 대기가 싫다. 난 내 수건으로 베개를 감싸고 수건이 감긴 부분에만 얼굴을 댔다.

다음 날 새벽 5시, 산행을 시작했다. 길을 모른다. 다행스럽게 관광버스 타고 단체로 온 아줌마 아저씨 부대가 있다. 쫓아갔다. 그분들은 궁금한 것이 많다. 혼자 왔냐, 무슨 일 있냐, 애인은 없냐, 무슨 대학 다니냐 등등. 드디어 충고가 시작된다. 산은 위험하다, 혼자 다니다 어떤 놈이 덮치기라도 하면 어쩌냐, 혼자 돌아다니면서 부모님 속 끓이지 마라….

월출산 정상에는 여러 갈래 길에서 올라온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 또래 남자애들도 있고 어린 아들과 올라온 젊은 엄마도 있다. 아줌마 아저씨 부대는 젊은 엄마에게도 궁금한 것이 많다. “아빠는 왜 같이 안 왔냐?”가 가장 많다. 젊은 엄마는 대답 없이 살짝 웃기만 한다. 참으로 현명하다. 배워야겠다.

안개에 입술을 적시니 갈증 '싹'

월출산의 정산은 안개로 뒤덮여 있다. 나는 안개 속에 오래 앉아 있었다. 물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안개에 입술이 젖어서 갈증이 나지 않는다. 산아래 내려다보이는 여기저기를 여행하는 상상을 해본다. 어제 스님을 만난 일, 아줌마 아저씨들과 산을 오른 일, 낙원장의 화장실…. 모두 너무 오래된 일인 것만 같다. 누군가 시간을 뭉텅 잘라 가져가버린 듯하다.

경민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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