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애매하게, 모호하게 동성애 논란과 거리두는 ‘철인왕후’
[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애매하게, 모호하게 동성애 논란과 거리두는 ‘철인왕후’
  • 김은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 승인 2021.02.08 11:30
  • 수정 2021-02-14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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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철인왕후’
드라마 ‘철인왕후’  사진=tvN 제공
드라마 ‘철인왕후’는 남성의 영혼과 여성의 몸을 지닌 왕비와 왕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변주를 보여주고 있다. 이점이 시청자들에게 이것이 이성애인지, 동성애인지에 대한 혼란을 가져온다. 사진=tvN 제공

10년마다 변했다던 강산은 이제는 그 변화의 속도를 감히 예측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변화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재를 TV 드라마는 어떻게 그려내는가? 사회 변화에 너무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하면 변화에 반감을 가진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둔감하여 표현하지 못하면 구시대적이라고 또한 비난을 받는다. 그래서 TV드라마는 변화를 담되, 사회가 변하는 속도를 앞서거나 바로 반영하기보다는 ‘반걸음’ 뒤에서 쫓아가면서 나름대로 유연한 방식으로 그려내곤 한다.

개인 미디어가 지배적인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TV드라마는 가족 시청과 불특정 시청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사회 변화상을 반영하는데 조심스럽다. 하지만 변화의 모습들을 꾸준히 담아내기도 한다. 동성애를 그리는 것 역시 그러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방영 초기에 역사왜곡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는 <철인왕후>(tvN)가 동성애를 다루는 방식은 TV드라마가 변화하는 가치관과 갈등적인 주제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동성애를 담은 드라마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최근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tvN)까지 간헐적이긴 하나 꾸준히 방영되어왔다. 현재 방영 중인 <철인왕후>는 시공간이 뒤섞인 타임슬립과 영혼 체인지가 결합된 코믹한 사극이다. 대한민국 청와대 요리사 출신인 장봉환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그의 영혼이 조선시대 철종의 왕비인 철인왕후의 몸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드라마이다.

<철인왕후>는 동성애를 다루지만 ‘진짜’ 동성애를 그린다기엔 애매한 지점들이 있다. 오히려 드라마는 <커피프린스>(2007, MBC) 혹은 <미남이시네요>(2009, SBS), <성균관스캔들>(2010, KBS2)류의 ‘유사’ 동성애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앞서 열거한 드라마들은 남장 여성을 진짜 남자로 착각한 남자 주인공들의 동성에 대한 사랑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미 시청자들은 전지적 시점에서 여자 주인공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서 남장을 한 ‘진짜’ 여성임을 알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설정은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인 여성과 남성의 사랑이라는 이성애주의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특정 입장과 무관하게 많은 시청자들은 동성애 감정으로 힘겨워하는 남성 주인공의 고뇌를 안심하며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철인왕후>는 앞의 드라마들처럼 본격적으로 동성애를 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남성의 영혼과 여성의 몸을 지닌 왕비와 왕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변주를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이 시청자들에게 이것이 이성애인지, 동성애인지에 대한 혼란을 가져온다. 어쩌면 이것은 시청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의 근원을 영혼(정신)과 육체(몸) 가운데 어디에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누군가에는 이성애로, 다른 이에게는 동성애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는 성정체성에 대한 모호함과 애매함을 내세우면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동성애적인 요소를 완화하고 드라마를 그냥 드라마로 만들고 있다.

드라마 ‘철인왕후’  사진=tvN 제공
드라마 ‘철인왕후’ 사진=tvN 제공

조선시대와 대한민국이라는 상이한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요소가 더해진 것도 주인공들의 사랑은 현실성이 결여된 판타지적인 낭만성이 부각되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 첨예한 대립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논란을 약화시킨다. 드라마는 동성애 드라마라기에 모호하게 보이는 면들을 동성애와 이성애의 경계에서 서서 줄타기를 하거나 혹은 경계를 넘나드는 에피소드들을 극에 녹여낸다. 중전인 김소용이 자신의 가문에 선전포고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장소용이라 하겠다는 장면은 영혼의 주인공인 장봉환의 성씨 ‘장’과 몸의 주인인 김소용의 이름인 ‘소용’을 합한 것으로, 영혼과 육체의 분리가 아닌 혼연일체를 보여주면서 동성애와 이성애의 경계를 넘어서겠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라면 먹을래’라는 말로 철종에 대한 두근거림의 감정이 영혼의 주인인 장봉환의 것인지, 아니면 몸의 주인이자 기억이 일체화되고 있는 김소용의 감정인지에 대해 테스트하려는 장면은 동성애와 이성애의 논란을 드라마의 에피소드로 활용하는 것이다. 임신으로 당혹스러운 중전이라는 설정 역시 주인공의 정체성이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영혼과 육체의 불일치에 따른 상황적인 웃음 유발과 코믹한 주·조연들의 연기는 실제로 무겁고 갈등적인 주제인 동성애를 가볍고 유쾌한 소재로 만들어버린다.

영화에 비해 대중적인 TV드라마는 표현할 수 있는 소재 자체가 한정적이며 제약도 크다. 특히 갈등을 유발하는 내용을 담은 경우 양쪽의 시청자들 모두로부터 항의를 받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어려운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영혼과 육체의 불일치를 통한 동성애의 뉘앙스를 풍기며, 애매함과 모호함, 판타지적인 낭만적 사랑으로 코믹하게 그려낸 <철인왕후>는 TV드라마가 사회 변화를 담아내는 특징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반걸음 뒤에서 사회 변화를 반영하되, 정면으로 갈등적인 주제들을 다루기보다는 논란을 피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변화들을 포섭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담지 않아 비겁할 수 있지만, 에둘러 돌아가지만 반걸음 정도 뒤에서 조심스레, 자연스레 담아내려는 방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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