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우상호 의원 SNS, 뉴시스
사진=우상호 의원 SNS,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발생 반년 만에 “피해자”에게 공식으로 사과했다. 민주당 박영선 전 장관, 우상호 의원 두 사람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예비후보 등록 준비를 다 마치고, 남대문시장에서 나란히 어묵을 먹으며 ‘민생행보’ 같은 것도 다 흉내 낸 후에 했다. 아무리 당헌을 개정했다고 하나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요지는 그대로 남아있기에, 성추행을 성추행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이판사판의 상황이 올 때까지 질질 끌었다. 예비후보 등록 첫날인 1월 26일에야 봉인해제 하듯 남인순 의원이 운을 뗐고, 27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이낙연 당대표가 “피해자”에게 사과의 입장을 밝혔다.

박 시장의 영정 앞에 직접 헌화하며 죽음을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에게 선거를 목전에 두고 한 말뿐인 사과는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故 노무현 대통령부터 이어진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라는,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거대하고 찬란한 대업’을 위한 정무적 결정으로 받아들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심에 쐐기를 박듯, 박영선 후보는 박 시장이 두 번이나 선거캠프를 차렸던 안국빌딩에 사무실을 냈고, 우상호 후보는 “박원순 시장의 정신을 이을 적임자”를 자처하며 너 나 없이 박 시장을 계승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슬그머니 나와도 모자란 판에 시끌벅적하게 경선도 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기에 더해, 민주당이 국민의 눈치를 조금이라도 보고 있다면 자기 당 소속 시장들의 성추행 사건으로 800억이 넘는 혈세를 들여 다시 치르는 선거에, 과거 5.18 기념행사를 앞두고 광주의 한 ‘룸 가라오케’에서 여성 접대부를 불러 유흥을 즐긴 사실이 알려져 비판받아온 우상호 후보는 컷오프를 고민했어야 한다. 본질적으로 민주당은 여전히 박 시장 성추행 사건을 부정하고 있을뿐더러, 더 고질적이고 광범위한 2차 가해가 계속될 여지와 빌미를 남겨두고 있다.

민주당이 잇겠다는 박 시장의 뜻이라는 건 대체 무엇인가. 박 시장이 평생 동안 뜻을 가지고 일궜던 시민사회계는 성추행 사건을 인정하느냐 마느냐 여부로 반으로 쪼개져 동력이 약해지고 후원회원이 줄줄이 탈퇴하고 있다. 엄중한 코로나 19 시국에 시민들은 장례식도 결혼식도 최소한의 인원으로만 치르고 있는데, 민주당은 유족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5일 동안의 서울특별시장과 영결식까지 강행해 ‘시민이 시장이다’라는 박 시장 생전의 시정철학을 무시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주당이 성추행을 성추행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2차 가해를 부추겨왔기 때문에 정당한 비판을 하는 언론이 모욕 받고, 세대와 진영 갈등은 격화되었으며,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민주당이 이으려는 것은 박 시장의 뜻이 아니라 기득권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의 면피로 삼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꿈꾼 사회를 만들기 위해”도 납득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있었더라면 반칙과 특권이 그야말로 ‘강물처럼 흐르는’ 민주당의 모습을 보며 그 누구보다 큰 소리로 “부끄러운 줄 알라”고 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영과 지역을 뛰어넘어 ‘남의 편’도 끌어안는 정치를 하려다 ‘우리 편’을 잃은 적 있다. 여기서 교훈을 얻었는지 문재인 정부는 ‘우리 편’만 끔찍하게 껴안는 정치를 하고 있다. 그 반쪽짜리 지지만 믿고 분명히 발생한 성추행 사건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 것, 고통받는 피해자와 허물어지는 사회를 보고도 밥그릇 챙길 생각만 하는 것, 그래도 대충 넘어갈 수 있다고 안심하는 것. 세상은 그런 걸 ‘적폐’라고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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