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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얼굴로 합성된 체 게바라.

지난 9월 말 쿠바의 하바나에서 열린 국제연극제에 다녀왔다.

하바나는 15세기 이래로 카리브 해의 중심항구로서 이른바 유럽과 중남미를 연결하는'허브' 항구다. 하바나의 거리는 시간을 알 수 없는 복잡한 역사들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낡은 건물과 새로운 건물이 뒤섞여 있다. 자동차도 50년은 족히 넘었을 것 같은 구형자동차에서부터 최신 마티즈나 산타페까지 뒤섞여 다닌다. 관광객용이기는 하지만 마차도 제법 눈에 띈다. 신(新)하바나에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 이후 세워진 정부청사들이 늘어서 있다.

인종과 문화도 혼성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였다. 식민지 정복자였던 스페인은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의 문화를 말살하고 유럽의 문화를 주류문화로 이식했다. 노예로 붙잡혀온 흑인들은 아프리카 민속문화를 가져왔고, 미국의 관광지였던 미국 대중음악의 뿌리 또한 든든하게 자리잡았다.

이러한 혼성은 소위 사회주의 혁명으로도 바꿀 수 없었을 것이고 자연히 여러 가지 문화적 요소들을 공존시키는 문화정책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흔히 쿠바를 '세계문화박물관'이라 부른다.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은 이후 쿠바가 중남미지역의 문화적 중심 역할을 하도록 한 것 같다. 이 일은 주로 쿠바 혁명의 여전사였던 아이데 산타마리아가 세운 아메리카 문화원(Casa de Las Americas)에서 하고 있었다. 이곳의 문학, 미술, 연극, 대중예술(영화 제외), 철학 영역의 비평 결과가 지금까지도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라틴아메리카의 유명한 지식인들은 대개 여기 문학상 심사위원을 하기 위해 하바나를 방문한 적이 있고, 그럼으로써 그 수상작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출판·보급된다고 한다.

쿠바 혁명 영웅 체 게바라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체의 모습은 하바나 거리 여기저기에서 만날 수 있다. 아메리카문화원의 전시실에서,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는 그의 옛 집무실에서, 공공건물의 벽화에서, 그리고 기념품 가게의 티셔츠, 모자에서…. 심지어는 체의 얼굴이 담긴 쿠바 동전을 따로 모아 관광객들에 판매하는 길거리 장사꾼도 있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품화인지, 아니면 상품화를 통해서 '혁명의 순결성'을 더욱 널리 전파하려는 것 잘 모르겠다. 지정학적으로 쿠바와 비슷한 우리의 위치에서 동북아중심국가를 지향하려면 문화적으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많이 생각해보게 하는 여행이었다.

박인배 극단 '현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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