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활달하던 삼국 여성의 모습이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통해 점차 생기를 잃어간다.”

정출헌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지난달 25일 서울 원남동 수유연구실에서 열리는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강좌에서 삼국의 여성을 읽는 두 남성, 김부식과 일연의 시각에 대해 분석했다.

정교수는 “삼국의 역사를 전해주는 중요한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상이한 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했다”며 “그럼에도 모두 남성 작가라는 공통점이 삼국의 여성을 어떤 시각으로 그리고 있는지 결론이 예정된 듯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우선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의 경우 인물 배치에서부터 철저히 편향적인 여성시각을 드러낸다고 봤다. “<삼국사기> 전 10권 중 여성이 배치된 장은 8권으로 역모와 반역의 인물들을 그린 9∼10권 직전”이라며 “이 장에 소개된 인물이 모두 11명인데 똑같은 효행을 했어도 여성의 경우 뒤쪽에 배치됐다”고 설명했다.

<삼국사기> 전권에 걸쳐 소개된 52명 중 여성은 모두 3명으로 효녀 지은, 설씨녀, 도미처다.

그는 “이들은 〈삼국사기, 열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흔치 않은 여성들이다”며 “그러나 그 면면을 보면 '여성'으로서가 아닌 오로지 부모를 섬기는 딸이나 남편을 섬기는 아내로 '가족의 이름'으로서만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름 대신 효녀(孝女) 지은, 설씨 녀(女), 그리고 도미 처(妻)로 불릴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반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여성은 가족의 이름으로 불려나온 <삼국사기>의 여성에 비해 그 면면이 훨씬 다채롭다는 평이다. 강교수는 “등장하는 여성의 신분이나 담당하는 역할이 다양하고 무엇보다 독자적·주체적으로 소개된 여성도 적지 않다”고 설명한다.

정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연이 가장 공들여 그려내는 여성의 전형은 '김현감호'에 소개된 호녀(虎女)”라며 “호녀는 세 오빠와 하룻밤을 함께 보낸 낭군을 위해 기꺼이 죽은 호랑이 여인이다. 그녀는 남성세계의 유지를 위해 자발성으로 포장된 희생양에 다름 아닌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정교수는 “조선시대 열녀에 관해 공부하며 많은 의문을 가져오다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까지 오게 됐다”며 “제 자신 역시 남성으로서 여성을 바라보는 입장이지만 역사 속에서 철저히 왜곡되는 여성에 대한 연구와 스스로를 강제하기 위한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동김성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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