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등의 시선] 후쿠시마를 바라보는 세 시선
[나일등의 시선] 후쿠시마를 바라보는 세 시선
  • 나일등 사회학자
  • 승인 2021.01.29 07:00
  • 수정 2021-02-01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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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Fukushima 50’ 한 장면. ⓒ ‘Fukushima 50’
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영화 ‘Fukushima 50’ 한 장면. ⓒ ‘Fukushima 50’

 

2020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장편 영화가 한 편 개봉했다. 제목은 ‘Fukushima 50(후쿠시마 50)’. 사고 당시 현장에서 수습을 맡았던 도쿄전력 직원 50여명(실제로 50명만 투입된 것은 아니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연초에 개봉했으나 코로나 탓에 상영이 어려워져 한시적으로 온라인 배급을 하다 지난 연말 비디오로 발매됐다. 배급 과정은 순탄치 않았으나 관객 반응은 나쁘지 않은 듯하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영상물
희곡·과학·반성 등 테마 다양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영상물은 매우 다양하다. 나는 편의상 그것들의 테마를 희곡, 과학, 반성으로 분류하는데 물론 배타적 망라적 구분은 아니지만 대개 이 중 어느 하나로 분류할 수 있다. 작품이 수요를 반영한다는 가정이 옳다면 후쿠시마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이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구체적 작품을 들어 시선의 내용을 설명해 보자.

‘후쿠시마 50’은 물론 희곡으로 분류된다. 영화는 냉각 기능을 잃어버린 원자로의 폭발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직원들을 그리고 있는데, 최후의 보루, 결사, 기적과 같은 선전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인 이들 덕분에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른바 ‘국뽕’ 영화라고 비판할 수 있으나(실제로 일본 평론가들은 그런 이유로 매우 낮은 점수를 주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상처 입은 이들에게는 감성적으로 달래주는 영화도 필요한 면이 있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아마도 한국에서 개봉하기는 어려울 테지만 사고 당시 내부 상황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다. 극화돼 있기는 하지만 보도를 통해 알려진 내용과 영화의 묘사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 특히 도쿄전력 본사 측이 모호한 수사(修辭)로 결단을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 간 나오토 당시 총리가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현장에 직접 개입하는 모습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2012년 영국 다큐멘터리 ‘Children of the Tsunami’.  ⓒ ‘Children of the Tsunami’
2012년 영국 다큐멘터리 ‘Children of the Tsunami’. ⓒ ‘Children of the Tsunami’

 

어린이가 말하는 사고 이후의 삶
“엄마, 나 아기 낳을 수 있어?”

이탈리아에서 2015년에 제작한 다큐멘터리 ‘Fukushima: A Nuclear Story(후쿠시마, 핵 이야기)’는 사고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할만하다. 30여 년간 일본에서 생활하며 취재 활동을 해 온 저널리스트 마테오 갈리아르디(Matteo Gagliardi)가 연출한 작품으로 사고 경위를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이 작품을 과학 테마로 분류하는 이유는 자연과학적 설명과 함께 사회과학적으로도 유용한 1차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사고 발생 직후 후쿠시마 원전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그 과정에서 목격한 것을 상세히 보고하고 있다. 당시에는 접근에 성공하지 못했으나 끈질긴 노력 끝에 수년 뒤 사고 현장을 견학하는 모습도 나온다. 간 총리와의 개인적 친분을 이용해 인터뷰를 실시, 당시 그가 보인 행동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일본 사회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 혹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당시의 일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 완성도 높은 기록물이 도움이 될 것이다.

댄 리드(Dan Reed)가 연출한 2012년 영국 다큐멘터리 ‘Children of the Tsunami(쓰나미의 아이들)’는 인류와 원자력의 관계를 고찰하기 위해 필요한 반성 재료를 제공한다. 이 작품은 아이들의 인터뷰에 집중하고 다른 요소는 과감하게 배제함으로써 원전 사고가 미치는 영향의 크기를 부각하는 세련된 수법을 채택하고 있다.

지진, 쓰나미, 죽음, 원전 사고, 방사능, 피난 생활의 현실을 어린이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고통스럽다. 제염 작업을 보면서 일상을 보내는 남자아이는 어른이 되면 중기 운전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초등학생 여자아이는 방사선 연구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왜냐하면 방사선을 막을 수 있는 약이나 스프레이를 만들어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고 싶으니까요.” 어른이 되면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는 한 아이는 엄마에게 이렇게 묻는다. “엄마, 나 아기 낳을 수 있어? 몇 명 낳을 수 있어?” 핵이 저지르는 죄악의 크기는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 

*필자 나일등 :&nbsp;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br>『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필자 나일등 :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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