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흐말바프 필름하우스의 새로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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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자가 된 날> 마르지예 메쉬키니 감독, 2000,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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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를 방문한 마흐말바프 가족▶

여자아이가 영화를 만든다구? 부모가 잘나가는 영화계 인사인가 보지?

이란의 여성감독 사미라 마흐말바프(1980년생)의 경우는 꼭 그렇지도 않다. 물론 아버지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유명한 영화감독이긴 하다. 그렇지만 아빠는 빈민가 출신으로 젊은 시절을 감옥에서 보내느라 대학 문턱에도 못 가본 사람이다. 그럼 엄마가 유명 여배우? 새엄마 마르지예 메쉬키니도 영화감독이긴 하다. 그렇지만 엄마는 딸이 감독한 영화들의 조감독이며 딸과 영화학교 동창생이다.

1996년, 열여섯 살 사미라가 학교를 때려치우고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선언하자 아버지 모흐센은 영화학교를 만든다. 첫해의 학생은 엄마와 삼형제를 비롯해 겨우 여덟 명. 이들은 교장 아버지의 정치범 경력에 걸맞게 국가지원금도 받지 않고, 집 팔고 차 팔고 은행빚을 져가며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다섯 식구는 모두 영화감독이 되었다.

장난 같은 이 이야기는 이란의 마흐말바프 영화학교의 실화다. 큰딸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첫번째 연출작 <사과>(1998)가 로카르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면서 이 학교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사미라의 <칠판>(2000)과 <오후 5시>(2003)가 연거푸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엄마 마르지예 메쉬키니의 <내가 여자가 된 날>(2000)도 베니스영화제 3개 부문 수상작이다. 막내딸 하나(1988년생)의 <광기의 즐거움>(2003)마저 올해 베니스영화제와 부산영화제 초청작이다. 아버지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함께 이란 영화의 양대 산맥이다.

여인들 삶의 한 순간

마흐말바프 영화학교 출신들의 영화, 혹은 마흐말바프 가족의 영화들이 10월 31일 개봉한다. 마르지예 메쉬키니의 <내가 여자가 된 날>을 선두로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칠판>,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사랑의 시간>(1990)이 2주 간격으로 연이어 상영된다(씨네큐브 광화문, 02-2002-7770∼1).

이중 첫 번째 상영작은 엄마 마르지예 메쉬키니의 <내가 여자가 된 날>이다. 이 영화는 각 세대를 대표하는 세 여인들의 삶의 한 순간을 포착한다. 여자가 되어야 할 정오가 오기 전에 짝꿍 남자애와 막대사탕을 나누어먹는 꼬마, 남편과 친정식구들의 온갖 공갈 협박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고 자신의 길을 달려나가는 중년, 남편의 죽음 덕에 비로소 자기 마음대로 온갖 살림살이를 사 모으는 노인. 세 사람은 바닷가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를 만끽한다.

그러나 자유의 시간은 잠시뿐, 카메라는 등을 돌리고 떠나가는 그들을 지켜보거나 그들에게서 멀어져 간다. 그토록 자유롭던 세 사람은 차도르를 뒤집어쓴 계집애로, 친정 오빠들한테 끌려가는 아줌마로, 죽음처럼 먼 바다로 떠나는 할멈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꾸었던 온갖 살림들을 싣고 새파란 바다 위를 떠가는 할머니와 차도르를 대충 걸치고 이를 바라보는 꼬마의 모습은 환상적이면서도 희망차다.

두 번째 상영작은 큰딸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칸 수상작 <칠판>. 이 영화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다. 주인공은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글을 가르치는 선생들이다. 이들은 칠판을 둘러메고 마을을 찾아다니며 “글 배우세요∼, 구구단 가르쳐드려요∼”라고 외친다. 그들은 떠돌이 장사치이자 근엄한 스승이며 친구이자 가족이 된다. 이 '칠판 선생'들은 글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면 유일한 장사 밑천인 칠판을 부숴 부목으로 삼는 것도, 결혼과 이혼도 서슴지 않는다.

칠판을 통해 바라본 세계

<칠판>은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지대에서 촬영되었고 대부분 비전문 배우들이 출연했다. 총탄과 화학무기가 난무하는 가운데, 교사와 학생(국경을 넘으려는 난민, 밀수품을 나르는 소년들) 사이에서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소통은 조금씩 '되어간다'. 그러나 이 과정 속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글-지식 도구의 거래가 성사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인 마음의 벽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국경을 넘은 과부가 결혼지참금 겸 이혼위자료로 받은 칠판을 등에 메고 멀어져가는 장면이다. 칠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떠돌이 교사가 글씨를 가르치느라 적어놓은 글이다.

마흐말바프 일가의 영화 만들기는 새로운 영화, 미래의 영화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들은 한편의 영화가 제작되는 데에 모두가 달려든다. <내가 여자가 된 날>의 감독은 엄마지만 아버지가 시나리오를 썼고 큰딸은 스크립터, 아들이 편집을 맡았다. 다른 모든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효율적인 분업과 협동을 통해 영화를 만들고, 영화 만들기를 통해 세상을 배워나간다.

새로운 영화, 미래의 영화

여기서 아버지 모흐센의 역할은 기존의 가부장과 거리가 있다. 비록 그가 선배 감독이자 영화 스승이지만 이들 영화의 제작자는 '마흐말바프 필름 하우스'다. 큰딸 사미라 감독의 어떤 인터뷰에 의하면 “아버지는 내가 감독한 작품의 중요한 스태프다. 그는 언제나 나의 결정을 존중한다.”

더 이상 영화는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영화는 거대자본과 가부장적 조직 없이도 생산 가능한 예술매체가 되었다. 최근 디지털 영화가 독립영화의 미래로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자본과 인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여성이나 어린이 같은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아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마흐말바프 필름 하우스의 감독들이야말로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최예정 기자shoooo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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