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한국문학의 가장 크고 따뜻한 이름으로 남다
박완서, 한국문학의 가장 크고 따뜻한 이름으로 남다
  • 이세아·최현지 기자
  • 승인 2021.01.24 10:15
  • 수정 2021-01-25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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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 타계 10주기
여성신문이 기억하는 그의 글과 삶

젊은 여성들도 애독하는 영원한 현역
여성의 삶에 언어를 입히다
지난 22일은 소설가 박완서(1931~2011) 선생이 타계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여성신문
지난 22일은 소설가 박완서(1931~2011) 선생이 타계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여성신문 자료사진

세상을 떠난 지 10년, ‘박완서’는 한국문학의 가장 크고 따뜻한 이름으로 남았다. 생전 바람대로 ‘영원한 현역 작가’가 됐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올해는 지난해보다 2배 넘는 독자들이 박완서 작가의 책을 찾고 있다.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작가, 특히 여성들이 사랑하는 작가다. 지난 10년간 그의 작품을 구매한 독자 중 여성이 72%였다. 전 세대를 통틀어 20·30세대 독자가 36%였다.

박완서 작가가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글이 독보적으로 좋기 때문”이라고 여성들은 말한다. “놀라운 관찰력과 통찰력, 예리한 비판의식을 보여줬는데 그 본질은 따뜻하고 인간적이다.”(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6·25 전쟁과 가족들의 죽음 등 질곡을 겪고도 글을 쓰셨고, 삶의 정수를 담아내셨다. 술술 읽히면서도 일상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힘이 굉장하다.”(신현림 시인)

타계10주기를 맞아 여성신문은 박완서 작가가 생전 기고한 글과 인터뷰,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문학의 영원한 거장을 기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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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은 박완서 선생이 생전에 기고한 글과 기사를 통해 10주기를 기리고자 한다. 

마흔에 데뷔해 후대 여성 작가들의 길 닦은 선배

박완서 작가는 ‘늦깎이 작가’이자, 후대 여성 작가들이 걸어갈 길을 닦은 든든한 선배였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시작하라”는 따뜻한 조언을 건네던 선배였다.

그는 1970년 마흔이 되던 해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돼 등단했다. 2007년 여성신문 ‘내 나이 마흔에는’ 기사에서는 “(마흔은) 가장 사랑스러운 나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신현림 시인은 “한때 나도 선생님처럼 나이 마흔에 데뷔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다시 글쓰기에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위대해 보였다”고 했다.

1990년대 여성주의 담론을 이끌었던 동인 집단 ‘또 하나의 문화’(또문)에서 활동했던 조한 교수는 박완서 작가가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선배”였다고 회상했다. “당대 현실을 열심히 관찰하시면서 주옥같은 글로 표현하셨다. 여성이 여성의 언어를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몸소 보여주셨고, 또문 활동에 직접 참여하진 않으셨지만 ‘여성해방의 문학’ 등의 활동을 지지하셨다. 늘 웃으며 응원해주셨고, 든든한 선배 역할을 해주셨다.”

박완서 작가는 60대 중반을 넘어선 1997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대산문학상 사상 첫 여성 수상자가 됐다. 당시 여성신문 기사에 따르면 박완서 작가의 수상소감은 다음과 같았다. “기록으로 남은 한 시대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좋으니 숨결로 가 닿아 죽은 이들의 명을 이어주고 살아남은 슬픔을 달래고 싶었습니다.”

박완서 작가가 생전에 쓰던 책상. 환하게 웃는 모습의 사진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듯하다.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박완서 작가가 생전에 쓰던 책상.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한국사회 향한 날카롭지만 따뜻한 시선...여성 억압 고발한 페미니즘 소설도

박완서 작가가 사랑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보여준 날카로운 사회비판 의식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다. 2006년 10월 여성신문 창간 18주년을 축하하는 글에서 그는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천민자본주의, 심각한 빈부격차,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세태를 한탄했다. 또 “그늘진 데까지 스며들 수 있는 여성들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억압받고 소외되고 항상 억울한 위치에 있던 여성들이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당당하게 제 소리를 내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룩했습니다. 정신적·육체적·경제적으로 비로소 성인이 된 여성들에게 제가 하고 싶은 덕담이 있다면 이제부터는 쟁취한 결과를 사유화하지 말고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어달라는 것입니다. (...) 그늘진 데까지 스며들 수 있는 여성적인 손길이 극빈했을 때보다 더 절실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거나 주장한 적은 없지만, 박완서 작가의 문학 여정엔 페미니즘이 오롯이, 자연스러운 체취로 배어들어 있다. 그의 작품 가운데에는 가부장제 속에서 소외된 여성의 삶에 주목한 작품들이 많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이혼한 여성 주인공이 가부장적 억압구조에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그렸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1989년부터 여성신문에 연재했던 작품이다. 박완서 선생의 맏딸 호원숙 작가에 따르면, 당시 여성신문 창간을 준비하던 고정희 시인이 박완서 작가에게 원고를 청탁하러 부산까지 찾아갔다. 남편과 아들을 잃고 깊은 슬픔에 잠긴 박완서 작가도 그 덕에 다시 글을 쓸 힘을 얻었다고 했다. 소설은 싱글맘인 주인공 차문경의 양육권 투쟁과 자아 찾기를 통해 가부장제의 유치하고 비열하고 잔혹한 실상을 낱낱이 고발했다. 출간 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003년 TV 드라마로 방영돼 인기를 얻었다.

 

박완서 작가가 1989년부터 여성신문에 연재했던 소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2003년 배우 배종옥씨 주연의 MBC 아침드라마로 방영돼 인기를 끌었다. ⓒ여성신문 자료사진
박완서 작가가 1989년부터 여성신문에 연재했던 소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2003년 배우 배종옥씨 주연의 MBC 아침드라마로 방영돼 인기를 끌었다. ⓒ여성신문 자료사진

여성신문에 들려준 작가의 목소리

2005년 ‘그래도 활자문화는 계속된다’라는 여성신문 기사에도 박완서 작가의 목소리가 실렸다. 여성 작가들(박완서, 이경자, 김혜순, 은희경, 공지영)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였다. 박완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이 살아남을까 하는 문제는 장기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문제지만, 저는 책 읽는 즐거움이 사라지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전달 방법은 다르지만 문학적인 것이야 살아남지 않겠습니까.”

담낭암으로 투병하던 박완서 작가는 2011년 1월22일 딸 넷과 사위 등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80세로 타계했다. “편안하고도 조용하게 이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여성신문은 “박완서 작가는 일생 그의 작품 세계를 통해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각과 터치로 여성 일상의 내면과 현실을 탁월하게 표현함으로써 여성문학의 한 전형을 개척해왔다”고 그의 부고를 썼다.

타계 직후, 여성신문은 생전 박완서 작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의 회고도 소개했다. ‘절반의 실패’의 이경자 작가는 “우리 문학사 중 최초로 대중 여성의 생활과 생활감정을 표현해냄으로써 여기에 존엄성을 부여했다”는 것으로 박완서 문학의 본질을 꼽았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사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언젠가 선생으로부터 ‘여성운동 하고 싶다’는 말을 스치듯 들은 적이 있다. 선생이 생각하는 여성운동 방식은 공중에 떠다니는 구호 같은 그런 종류의 운동이 아니라 여성 삶의 조건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여성학자 박혜란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이사장은 “중심을 가지고 세상에 대한 도전으로 소녀같이 눈을 반짝이던 중년의 여성, 다섯 아이가 잠든 고요한 시간에 소반을 앞에 하고 마음을 다잡고 앉아 글을 쓰곤 했던 그런 여성은 그때까지 내가 보아왔던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고 회고했다. 또 “선생님은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하시곤 했지만 세태를 파헤치고 약자인 여성의 억압 현실을 속속들이 그려내는 데 탁월했다”며 “소외계층 편에 서서 약자의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면서 또 불의에 분노하는” 작가였다고 말했다.

한국문학의 거장은 갔지만, 그의 문학은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채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문학과 동행한 박완서 작가는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든든한 힘과 용기로 되살아났다. 

2011년 1월 24일, 서울 일원동 강남삼성병원 영안실. 영정 아래 박완서 선생에게 추서된 금관문화훈장이 놓여 있다. ⓒ정대웅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1년 1월 24일, 서울 일원동 강남삼성병원 영안실. 영정 아래 박완서 선생에게 추서된 금관문화훈장이 놓여 있다. ⓒ정대웅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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