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말은 칼보다 깊은 상처를 낼 수 있고, 천냥 빚도 갚을 수 있다고 했다. 정치인의 말은 더욱 중요하다. 젠더 마이크에서는 정치인의 말 한마디를 소개하고 젠더적 관점에서 비평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으로 열린 '2021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으로 열린 '2021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젠더마이크 1 “박원순 시장 사건, 안타깝다…안타깝다…안타깝다…안타깝다”

“우선 박원순 시장 사건은 여러모로 안타깝다. 우선 피해자의 피해사실에 대해서도 대단히 안타깝고, 그리고 또 그 이후에 여러 논란의 과정에서 이른바 2차 피해가 주장되는 그런 상황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박원순 시장이 또 왜 그런 행동을 했으며,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하는 부분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전 서울시장 사건에 대한 첫 공식입장을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최근 법원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를 인정한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안타깝다”는 말만 4번 반복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 또한 없었다. 또한 ‘2차 피해가 주장되는 그런 상황’이라는 표현도 2차 피해 사실을 완전히 인정한 것이 아닌 모호한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박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가 법원에서 인정됐다. 지난 14일 동료 공무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적직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된 가운데 재판 과정에서 법원은 박 전 시장의 추행을 인정했다. 피고인 ㄱ씨 측은 법정에서 범행 당일 피해자 ㄴ씨를 추행한 사실은 대체로 인정했지만, ㄴ씨의 정신적 상해는 박 전 시장의 지속적인 성추행이 원인이라며 항변해왔다. 재판부도 “피해자가 박원순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은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박 전 시장의 추행을 인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으로 열린 '2021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으로 열린 '2021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젠더마이크 2 “당헌은 고정불변일 수 없다”

“제가 당 대표 시절 만들어졌던 당헌에는 단체장의 귀책 사유로 궐위가 될 경우 재보선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당헌은 우리 헌법이 고정불변이 아니고, 국민의 뜻에 의해서 언제든지 헌법이 개정될 수 있듯, 당헌도 고정불변일 수는 없다. 제가 대표 시절에 만들어진 당헌이라고 그것이 신성시될 수는 없다. 당헌은 종이 문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당원들의 전체의사가 당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주당의 당원들이 당헌을 개정하고, 또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민주당의 선택, 그리고 민주당 당원들의 선택에 대해서 존중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공천 방침에 대해서 당헌은 고정불변이 아니라며 당과 당원들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 단체장 귀책 사유로 공석이 될 경우 재보선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고 당헌을 만들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까지 성추행 의혹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자 민주당은 당헌당규를 바꾸며 재보선 후보를 냈다. 이날 문 대통령은 “당헌은 고정불변이 아니다”라며 “제 대표 시절 만들어진 당헌이라고 해서 신성시될 수는 없다. 결국 당원들의 전체 의사가 당헌”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지난 19일 논평을 통해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발언에 대해 비판했다. 네트워크는 “문 대통령 특유의 정치적 언술은 여러 번 문제가 됐는데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재현됐다”며 “문 대통령은 박원순 사건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서는 박 전 시장의 혐의는 인정했으나 민주당 당헌 개정에 대한 질문에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원의 뜻으로 포장됐지만 민주당 지도부의 결정이었던 당헌개정을 존중하는 문 대통령의 이중적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문 대통령이 진심으로 서울시위력성폭력 피해자의 피해를 안타까워했다면 과거 자신이 주도한 민주당 당헌의 정신을 훼손한 소속 정당에 대해서 유감을 표하고, 보궐선거에 나가기 위해 박영선 장관이 사임을 표하면 반려하겠다고 대답해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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