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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를 데리고 은행을 갔을 때 일이다. 은행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소리지르기에 바빴다. " 시끄러워, 만지지마, 뛰지마, 거기 가면 안돼." 십여 분 은행에 머무르는 동안 아이한테 한나절 할 잔소리를 몽땅 하고 나온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그 은행 직원은 시끄럽다고, 경비를 연신 불러대고, 따끔하게 혼내켜야 한다며 직접 나온 직원도 있었다.

한가하고 조용한 은행풍경 탓이려니 생각하며 돌아서 나오는데, 불쑥 올라오는 울화통.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공시설에 놀이방이라도 하나 설치해두면 오죽 좋을까. 널찍한 공간에 아무도 앉지 않는 커다란 탁자를 놔두느니, 보다 실용적인 공간으로 사용하면 좋겠다 싶었다. 워낙 은행이라는 곳이 소액소비자를 위한 곳은 아니려니 생각해도 여간 씁쓸한 노릇이 아니다.

요즘 놀이방 딸린 식당도 늘고 있고, 작은 개인병원이어도 아이들 놀 곳은 가능하면 만들어놓는 시대가 되고 있으니, 그만하면 아줌마들 편치 않느냐 말할 수 있겠지만, 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가 느껴진다. 애 키우는 아줌마들이 할인매장에서 주구장창 소비만 하며 사는 것도 아니고, 은행도 가고 동사무소도 가고 영화도 보러 가야 하고 갈 곳은 많지만, 그 어디에도 아이와 엄마를 위한 공간의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장애인의 이동권 시위가 얼마 전에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전경과 맞서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그네들에게서 받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뜨거운 것이 내 가슴을 채웠는데, 그네들의 용기에 대한 박수도 있었지만, 일종의 동병상련의 감정이 일어난 것이 사실이다. 애를 데리고 대중교통이라도 이용할라치면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버스나 지하철이나 계단턱은 왜 그리 높을까. 지하철은 더하다.

올려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지나치게 높고 많은 계단은 애를 안고 다니기도 벅찰뿐더러 유모차의 버거움은 말해서 뭣하리.

그래서 난, 아줌마들의 자유로운 이동권 보장을 우리 사회에 호소하고 싶다. 대중교통을 전면 수정·보완해야 하고, 정부기관이나 은행, 기타 공공시설에는 의무적으로 놀이방 설치를 해야 한다.

덩치 큰 의자와 탁자가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화분 몇 개가 주인처럼 들어서 있는 널찍하게 비어 있는 공간들은 정부의 권위나 자본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상징으로 이용된다. 권력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그 공간에 두어 평정도 그 곳을 찾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을 마련하는 것은 소비자의 욕구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 아이는 사회가 키워야 한다는 육아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으로 가능해진다.

아이키우기를 우리 사회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은 육아의 주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사회는 아이키우기가 전적으로 기혼여성, 즉 아줌마에게 위임되어 있다. 부당하고 비합리적이다. 생물학적으로 여성 혼자 아이만들기가 되는 것도 아니고 보면, 아이는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 사랑받고 양육되는 것이 당연하다.

좋은 아빠 되기 모임들도 있고, 실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참여하는 아빠들은 비주체로 소외된 기존의 남성 육아 시스템에서 벗어나 직접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보고 같이 즐기고 생활하면서 새로운 가족문화 형성의 훌륭한 모델이 되고 있다. 아빠들이 육아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때 아이에게도 좋은 기대효과가 나타난다는 설명도 있으므로, 남성의 육아참여는 고무적인 일이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에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는 그저 부모에게서 하루 세끼 밥만 얻어먹으면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사랑뿐 아니라 다양한 이웃들과 자유로이 소통하고 사랑을 나누면서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때문에 육아의 주체는 어머니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니다.

아이와 관계맺는 모든 어른들이 육아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더 넓게는 우리 사회 모두가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에 양육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아이는 함께 키우는 것이다. 아이는 집에서 아줌마가 키워야 한다는 어긋난 상식은 이제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자.

아빠가 됐든 엄마가 됐든, 아니면 아이를 돌봐주기로 한 사람이 그 누구가 됐든, 아이가 세상을 자유롭게 활보 할 수 있도록 버스나 지하철 계단도 낮추고 가다가 힘들면 쉴 수 있는 공간도 많이 만들고, 어른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에는 저희들끼리 놀 수 있는 저희들만의 공간을 내어주자. 우리 사회가 아이 하나하나의 성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장애인의 이동권이나 아이들의 이동권, 아줌마들의 이동권은 그래서 한 맥락에 잡힌다. 아이 키우기가 아줌마로 한정된 틀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가 육아의 주체가 된다면, 남편도 바뀌고 세상도 바뀌고, 아줌마들의 세상 밖으로 나들이가 한결 수월해지면 좋겠다. 어미로 살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아이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들, 가지 못하는 곳들이 없어지기 바란다. 자, 나가자! 자유롭게, 더 자유롭게 세상 밖으로!!!

조유성원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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