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 발행인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이민 열풍이나 낮은 출산율의 원인이 치솟는 집값과 교육문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집값이 치솟는 원인도 다름 아닌 교육문제 때문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판교 신도시에 학원단지를 육성하겠다고 했다가 취소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서울시가 '길음동 뉴타운 교육단지 조성계획'을 발표하면서 '자립형 사립고와 대규모 사설학원 단지를 조성해 강남과 맞먹는 교육특구를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가 말하는 교육특구는 사실상 입시특구이다. 자립형 사립고나 특목고가 입시명문 학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정책 제안자도 알고 있다.

결국 비평준화를 도입하겠다는 발상인 셈이다. 이런 부동산 투기 대책에 편승해서 평준화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평준화 때문에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학교교육은 망가지고 부동산 투기바람도 불고 있다는 내용의 사설을 주요 신문들이 태연히 싣고 있다.

그렇다면 비평준화 시절에는 사교육이 없었단 말인가? 비평준화, 다시 말해 '서열화'가 부활한다면 중학생들까지 입시교육 열풍에 휩쓸려 더 심각한 사교육 바람이 불 것이 뻔하다. 지금도 비평준화 지역인 중소도시에서는 고등학교 입시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흔히 평준화를 비판하는 이들은 평준화가 학력을 떨어뜨리고 국가경쟁력을 낮춘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을 한번 정직하게 바라보자. 시험을 보고 나면 다 잊어버려도 좋을 부스러기 지식들을 머리 속에 집어넣도록 강요하는 지금의 입시교육에서 우등생은 과연 어떤 경쟁력이 있는가. 경쟁력을 높이는 길은 아이들이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갈 수 있게 도와주는 데 있지 모든 아이들을 선착순 달리기에 내몰아 일렬로 세우는 데 있지 않다. 정말 알고 싶어 밤잠을 잊고 파고들 때 경쟁력이란 것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인 학자들이나 기술자는 우리 아이들이 미적분 문제를 푸느라 끙끙거리는 시간에 한가롭게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서구 아이들을 압도하는 우리 아이들이 정작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좋아하지도 않는 공부를 억지로 해야 하는 사회에서 세계적인 학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교육의 기초부터 다시 놓지 않는다면 이 사회의 총체적 부실은 막기 어려울 것이다. 그 기초는 비평준화, 다시 말해 서열화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화, 특성화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중고등학교들의 특성화, 다양화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대학 서열화를 깨고 우리 사회의 학력·학벌 이데올로기를 부수어야 한다. 학력이 아닌 실력, 학벌이 아닌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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