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 교사

올해 7년째 학습지 교사를 하고 있는 김모씨. 만일 다른 직장에서 7년째 일을 했다면 퇴직금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을 테지만 '특수고용직'에 속하는 직장에서 퇴직금은 사치일 뿐이다.

꼬박꼬박 5일을 출근해 하루 평균 스무 가구의 집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토요일이면 회원 늘리기 홍보작업인 '보급활동'을 하는 김씨는 “퇴직금도 없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초라함이 고개를 들 때마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말한다.

오전 9시, 회사에 출근하는 그의 발걸음이 무겁다. 전날 20명의 아이들을 가르쳤어야 했는데 몸이 좋지 않아 미처 다 방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25명의 아이들과 만나야 한다.

오전 10시, 사무실. 그는 교재정리를 하고 있다. 30명이 되는 아이들의 교재를 일일이 정리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40분 후 전체 조회에서 김씨는 공지사항과 함께 회원을 늘리라는 상사의 독촉을 듣는다. 또 11시 40분부터 낮 12시10분까지는 전날 회원들에게서 받은 회비를 납부하고 서류를 정리한다.

그리고 12시 30분까지 20분 동안의 짧은 점심. 오후 수업이 일단 시작되면 저녁을 거르기 일쑤기 때문에 점심은 꼭 챙겨먹어야 한다. 보통 수업을 마치는 시간은 밤 10시 30분께. 밤늦은 식사를 하기 싫어 저녁밥을 거른 지가 몇 년째다.

평소에도 8시간 넘게 수업을 하다 보면 일상생활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후유증을 겪는다. 오늘은 교재뿐 아니라 선물까지 들고 돌아다니느라 몸이 더욱 피곤하다.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을 들 수 있는 손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다. 평균 10㎏이 넘는 가방을 날마다 들고 다니는 학습지 교사들에게는 관절염, 어깨 근육통이 직업병이다.

학습지 교사는 공중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아야 한다. 여기저기 자주 돌아다니기 때문에 화장실의 위치를 파악해 두지 않으면 생리적인 현상 때문에 고초를 겪기 쉽다.

10시가 넘도록 일을 해도 초과수당이 없는 학습지 교사. 결혼한 여성이 얼마나 직장을 잡기 힘든지를 잘 아는 그로서는 학습지 교사가 근로자로 인정되는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보험설계사

“보험설계사는 가족이 사망해서 장례식을 치르고 있어도 '마감인데 한 건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는 전화를 받습니다.”

보험사는 매주 두 번 계약 마감을 하고 월말에 실적을 결산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근무하는 보험모집인들은 매일 조회를 하고 회사에 들어오는 시간도 정해진 시각에 맞춰야 한다. 어디를 방문하고 수금은 얼마나 했는지 수시로 팀장에게 보고하고 일지를 작성한다.

최근 5년 동안 다닌 보험회사를 그만둔 강모씨는 “왜 우리가 노동자가 아닙니까. 날마다 회사에 나와 조회하고 퇴근 전에 관리자에게 그날 일정을 점검받으며 일하는데 다른 직장과 뭐가 달라서 차별받아야 하는 겁니까”라고 반문한다.

'보험아줌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혼여성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보험설계사라는 직종 역시 특수고용직이다. 일하다 다치거나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쓰러져도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한다.

또한 보험설계사가 해고를 당하거나 퇴사하면 보험회사측은 설계사가 축적한 수당을 한푼도 지급하지 않는다. 물론 퇴직금도 없다. 부당한 처사를 당해도 회사의 지시대로 일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설계사에 따라서 한 달 지급액이 몇 백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설계사들은 이런 수당 시스템이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게 되는 족쇄라고 말한다.

특히 설계사들은 보험계약 후 계약자에게 13회 이상 수금을 받아야 기본급이 나오기 때문에 계약자들이 중간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더라도 그 몫을 고스란히 설계사들이 채워 넣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신의 돈을 투자해 월급을 받아야 하는 현실은 오히려 감수할 수 있다는 말을 꺼낸다. 새로운 보험설계사를 데려오는'증원'을 하지 않았을 때 받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돈을 내는 것은 오히려 낫다는 것이다.

한 설계사는 “소장 등 회사측이 팀장들에게 실적 향상을 강요하고 신입 보험설계사를 확보하지 않으면 해고를 종용하는 것이 관행이 됐다”면서 “이런 강요에 못이겨 주위 사람들에게 회사에 나와 신입 설계사인 것처럼 인사만 한 번 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도 자주 보는 일이다”라고 털어놨다.

경기보조원

'경기보조원 일을 하면서 산업재해를 당하기 쉽다'는 말이 정설로 통한다는 것이 골프 경기보조원들의 하소연. 이들은 특수고용직으로 경기장에서 다치거나 병을 얻는 일이 많지만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고객의 실수로 다칠 경우 손님의 배려로 치료비를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경기보조원들이 직접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며 “치료받느라 일을 못하면 보상을 받지 못하고 후유증과 재발로 고통받아도 보호 대책이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골프장에서 일했던 한 경기보조원은 이용객이 끌고 가는 전동차에 발가락이 끼어 탈골됐지만 6개월간 치료를 받아도 완쾌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일을 계속할 수 없는 상태로 퇴사했다.

골프 경기보조원은 20kg이 넘는 가방을 옮기는 일을 하기 때문에 무릎연골 등 관절계통의 질병을 앓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부분의 골프회사들이 경기보조가 서비스 직종이라는 이유로 안경 착용을 금지시키기 때문에 렌즈를 착용한 사람들이 많다. 하루종일 햇볕이 강한 곳에서 일하면서 안구건조증 등 각종 각막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다.

경기보조원들은 근로자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도 안타깝지만 성희롱 예방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에 더욱 화가 난다고 호소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성희롱 예방교육 대상에서 제외될 뿐 아니라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상의 성희롱 관련 조항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희롱 사실을 제기할라치면 이용객에게 불친절하다는 항의를 받기 일쑤”라면서 “말썽이 생기면 회사에서 해고를 종용하기 때문에 성희롱을 제기한 불이익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주)88관광개발 측의 직장폐쇄는 경기보조원들의 고용불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88CC 경기보조원들은 2001년 7월 경기보조원노조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단체협약 갱신을 거부해 오던 회사가 지난 15일부터 '조합원에 한해 직장폐쇄'를 단행, 110명의 경기보조원들이 일터를 잃은 상태다.

노조원들은 당시 단체협약의 내용이 ▲노동조합 활동 보장 ▲성희롱 예방 및 가해자에 대한 조치 ▲안경 착용 허용과 생리·출산휴가 보장 등 처우개선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고 말한다.

나신아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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