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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스톰>, 1997, 리안.▶

스와핑을 다룬 대표적인 영화로는 <와호장룡>을 만든 대만 출신의 미국 감독 리안의 1997년작 <아이스 스톰(The Ice Storm)>을 꼽을 수 있다. 이 영화는 워터케이트 사건이 일어나던 1973년 겨울, 코네티컷의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고 있다. 겉으로는 지극히 행복해 보이는 이 마을 중산층들의 삶의 이면에 무엇이 존재하는가가 얼음처럼 냉정한 시선 속에서 펼쳐진다.

<아이스 스톰>은 밤기차를 타고 학교가 있는 뉴욕(강남)에서 코네티컷(분당 혹은 일산)의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해서 끝난다. 기차는 얼어붙은 철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가까스로 멈춘다. 그곳에는 '정지'라는 빨간 표지판이 서있다. 영화 속의 모든 인물들은 마치 철로의 끝과 같은 막바지에서 어른거리고 있다.

이 영화에서 스와핑은 캘리포니아에서 도입한 최신 유행 게임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재우고 자동차 열쇠로 파트너를 정하는 '키 파티'에 참석한다. 그 사이, 아이들은 서로 옷을 벗고 침대에 눕거나 약물 복용으로 맛이 가거나 혹은 죽어버린다.

<아이스 스톰>에서의 스와핑은 어른들의 타락으로 인해 아이들이 파멸하게 된다는 '죄의 대물림' 장치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부모들은 서로서로 바람을 피웠고, 이혼을 하지 않으려고 우울증과 도벽에 빠졌고, 식구들끼리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나눈 지 오래다. 그러면서도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협박조로 성교육을 하며 헛된 권위를 내세운다. 스와핑은 오히려, 거짓되지만 우아한 사교계를 유지시키고 이미 파탄난 부부 사이를 슬쩍 감추려는 시도로 작동한다.

한국 영화 중에서 스와핑을 다룬 영화는 2001년 작 <클럽 버터플라이>(씨네락 제작, 김재수 감독)로, 웬만한 비디오 대여점에선 구할 수도 없고 주위에 이 영화 봤다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저주받은 걸작인 것은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저주받아 마땅한 졸작이다.

<클럽 버터플라이>는 시나리오가 상을 받았다는 데도(1999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대상) 갈등구조는 텔레비전 드라마 수준을 넘지 못하고, 스와핑을 다루었다는 데도 전혀 에로틱하지 않다. 특히 후자는 참으로 이 영화의 악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사 장면이 죽도록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 살들과 살들의 충돌만으로 에로티즘을 느낄 요량이라면 차라리 케이블TV 성인채널을 권하는 바다. 쇼트도 유사하다. 출시된 비디오의 러닝타임은 98분이라지만 체감시간은 2시간 40분 가량이다.

스와핑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한마디로 싱겁다. 주인공 부부의 갈등이 스와핑으로 해소되는 게 아니라 스와핑에 이르기 위해 온갖 난관에 봉착한다. 무엇보다도 부하직원으로부터 강간당한 이후 남편과의 잠자리 혹은 스와핑으로부터 치유를 바라는 아내는 설득력이 없다.

다만 주인공 부부에게 스와핑을 권하던 세련된 부부가 실은 허위 속에서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나중에 알고보니 이 커플의 남편은 주인공 아내와 관계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을 스와핑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스와핑에 다가가면 갈수록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흥미롭다.

최예정 기자shoooo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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